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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 |||
1. 친일인명사전 발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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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가 출범한 지 18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본격적인 조사 연구에 착수한 지 8년 만에, 친일문제연구총서 중 인명편인 친일인명사전 1차분 3권이 발간되었다. 연구소는 11월 8일 백범 김구선생 묘소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헌정식을 가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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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준비위원회 발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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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우리 근현대사를 조망하고 바람직한 동북아의 미래상을 제시하기 위한 ‘진실과미래, 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준비위원회’가 4월 25일 구성됐다. 위원회는 일본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내년 한 해 일제의 강제병합과 과거사청산을 되돌아보는 각종 기획사업을 추진한 뒤 동북아 역사문화운동 연대기구로 전환할 예정이다. 현재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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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중근의사 의거 순국 100년 기념사업 추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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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독립운동단체 시민사회단체 학술단체는 3월 26일 ‘안중근의사 의거·순국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자료집 발간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의거일인 10월 26일부터 순국일인 2010년 3월 26일까지를 특별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안 의사의 삶과 사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현재 연구소가 공동 사무국을 맡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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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각종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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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수구단체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친일인명사전 가처분신청, 외통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 등 올해만 6건의 소송을 진행해 모두 승소했다. 이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연구소의 현안과 관련한 각종 소송에 대비하기 위한 고문변호사단의 활약 덕분이었다. 내년에도 수구세력들의 소송이 예상되는 만큼 고문변호사단의 활약이 더욱 기대가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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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국제심포지엄 개최, 한일교류 활성화 | |||
연구소는 올해 두 차례의 한일공동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6월 5일 기독교회관에서 <식민지기 재일조선인사회의 형성과 단체활동의 전개>, 12월 4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한일 양국의 문서공개로 본 1965년 한일협정과 청구권문제>가 열렸으며 그밖에도 야스쿠니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시민사회 워크숍, 재한군인군속재판보고회 등 다수의 국제 교류협력행사가 진행됐다. 2009년은 한일 나아가 동북아 시민사회의 연대가 한 단계 진전된 시기로 기록될 전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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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베리아 억류자 귀환 60주년 기념 자료전시회-야스쿠니신사 기획전시 성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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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주관으로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15일까지 <시베리아 억류자 귀환 60주년 기념식-자료전시회>, 11월 4일부터 15일까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공동기획전 <침략신사, 야스쿠니>를 국회도서관에서 개최했다. 한국사회에서 전혀 다루지 않았던 두 주제를 쉽게 풀어낸 이번 전시회를 통해 시베리아 억류자 피해사실과 야스쿠니문제를 대중에게 환기시키는 의미 깊은 전시였다. 그 외에도 임시정부수립 90주년 특별전시에 전시기획에 참여했으며, 부산 중구청에서 3.1절 ‘항일과 친일전’과 8.15 광복절 기념 ‘조정래의 아리랑’전시회를 개최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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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림기록문화상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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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7월 22일 서울역사박물관 내 ‘콩두’ VIP홀에서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이 제정한 제5회 ‘한림기록문화상’을 수상했다. 한림기록문화상은 1999년도 제정되어 우리나라의 기록관리 및 기록문화 진흥에 현저한 공헌을 한 개인 또는 단체에 격년마다 수여하는 상으로 국내 기록학계에서 공신력을 인정받은 권위 있는 상이다. 심사는 기록의 양, 기록의 내용, 역사적 가치, 사회적 공헌도를 기준으로 하였고, 심사결과 우리 연구소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자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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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활동 종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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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반민규명위)가 11월 30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4년 반의 활동을 종료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친일청산 작업이라면, 반민규명위의 활동은 1949년 반민특위 와해로 중단된 국가차원의 친일진상규명 작업을 잇는다는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다만 한시적인 시간과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의 태생적인 한계 등으로 친일의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한 측면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 등 수구 족벌언론의 근거 없는 공격은 여전하다. 결국 완전한 친일청산은 다시 국민들의 몫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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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연구소 충주연수원 단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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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와 월악산 자락한 위치한 연구소 충주연수원은 오랫동안 폐교로 방치되어 있었으나 지난 3년 동안 회원들의 손길을 거쳐 아담한 연수원으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드디어 전국에서 모인 150여 회원들과 함께 여름수련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수원에서 독립운동가 돕기 김장행사를 열면서 차츰 회원들에게도 친숙한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내년에는 더 많은 회원들의 방문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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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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