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 이 작업에 속도를 붙여주었다. 이 사전은 그 동안 성장한 이 나라 민주화운동의 현주소와 자기성찰적 역사인식의 성숙도를 확인시켜 준다.
해방 후 친일행위자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했다. 그들은 해방 정국의 분단 상황에 편승해 권력을 유지했다.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선열들이 광복 조국에서 찬밥 신세가 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가치관의 혼란과 도덕적 불감증, 자조적인 역사인식이 팽배하게 된 것은 당연했다.
치부의 고백, 과거와 당당한 대면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주제에, 정의가 승리한다거나 ‘세계사는 세계심판’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친일인명사전’으로 그 소임을 다했다고는 보지 않지만, 이 책으로라도 역사허무주의를 만연시킨 해방 후 세대의 부끄러움을 용서받았으면 한다.
우리는 이웃의 한국사 왜곡과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면서도 그와 표리관계에 있는 우리 속의 친일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양심에 거리끼는 소치가 아닐 수 없다. 내 속의 오욕의 역사는 고백하지 못하면서 이웃을 향해 내 역사의 올바른 인식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민족적 약점을 스스로 고백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사전은 역설적으로 이웃에 한국사의 정당한 이해를 요구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동안 부일협력의 수치스러운 역사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누구도 그 뚜껑 열기를 꺼려 했다. 내세운 명분은 공동체의 화합과 미래지향을 위해서였다. 역사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우리는 그 용기마저 두려워했다. 부일협력의 역사를 60여년간 묻어 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여 더 엄밀한 고증을 거칠 수 있었다. 이 사전이 민족공동체를 참회의 분위기로 이끌 수 있다면, 영광의 역사 못지않게 민족적 용기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은 나름대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철저하게 문헌 고증에 입각하여 자료로 말하게 하고 주관적 평가는 배제했다. 편찬에 관여한 150여명의 학자들은 수집한 3000여종의 문헌자료에서 250만건의 인물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 중에서 대상자 5000건을 추출하여 20여개 전문분과의 수십차례 심의와 편찬위원회의 50여차례 면밀한 검토를 거쳤다. 객관적 고증과 주관적 판단 배제가 신뢰성을 높였다는 뜻이다.
사전 출판으로 법적 이의신청이 뒤따를 것이다. 고인이 되었을 당사자들의 불명예도 그렇거니와 연고자들이 감당해야 할 상처 또한 그 못지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편찬자들은 이 사전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 세심하게 유념했다. 편찬자들은 나라 잃은 시대에 생존했다는 것 자체가 국망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면서, 이 사전 등재 연고자들에게 깊은 위로를 먼저 전하고 있다. 사전을 통해 얻을 대승적 자부심이 선대의 허물로 입은 상처를 상쇄하고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연좌제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국사의 금기 영역을 최초로 공개하여 퇴행적 역사인식에 경종을 준 이 사전이 민족사의 해묵은 응어리를 풀고 상생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연고자들은 선대의 과거로부터 자신을 객관화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우리 사회는 연좌제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점과 관련, 일찍이 사전 편찬을 주창했던 임종국이 부친의 부끄러운 과거를 남보다 먼저 고백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경향신문, 0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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