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의 역사, 보관할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문화연대 “다시보는 근.현대 역사의 현장” 답사기1
사진으로 보는 일제 착취와 수탈의 도시, 김제
처음 가는 답사는 다 그런가보다. 가기 전에는 망설여 지기만 하고, 일단 가고 나면 진짜 오길 잘했다는 그 느낌. 지난 9월 8-9일 문화연대가 진행한 “다시보는 근.현대 역사의 현장” 답사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시골길가의 어느 골목에 들어서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와 건물이 서 있다. 그런 역사를 가진 건물을 보는 눈의 즐거움. 그 생소함을 접하는 뇌파의 진동. 그리고 착취와 수탈의 역사가 만들어 낸 근대 도시의 형성과 건축물의 형태, 공간의 자리매김을 알고 나서 쏟아지는 역사의 현장감이 어우러진다.

▲ 아름다운 저수지 안에 제국주의 수탈의 한이 서려 있는 능제저수지
근.현대사 현장답사 첫째 날, 김제 답사 길에 본 근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 착취와 수탈의 잔재들이었다. 제국주의가 불러온 민중 고통의 현장. 화려하지도 않고 시간의 희소성도 없으며, 친일의 잔재들일 뿐인 이런 건축물과 공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진 몇 장만 남기고 청산해야 할 것인가? 고통의 현장을 등록 문화재로 보존하고 착취와 수탈이 가져온 역사의 재현을 경계하며 곱씹어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과 마주하면서 각 공간의 느낌을 살리는 답사 일정이었다.
답사의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생소함을 만난다는 것이고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고 그것들을 마음껏 눈과 귀와 사진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답사 과정에 만난 담쟁이에 뒤덮인 舊 백구농협이나, 허름한 먼지 속에 스며드는 빛이 역사의 현장임을 보여주는 도정공장, 아담한 양옥 스타일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舊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 누군가 살고 있는 일본식 주택 유인호 가옥 등은 결코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그런 공간들이다.
게다가 이 조그만 공간들은 김제라는 공간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어떤 건물은 대로변에, 어떤 건물은 골목길 안에, 어떤 건물은 주인이 사용하고 있는 그런 공간들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런 건물들 앞에는 변변한 제국주의 야만의 역사에 대한 기록조차도 없다. 역사는 그렇게 잊혀져가는 중이었다.

▲ 구(舊) 백구농협
친일파들은 일제가 한국의 근대화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김제를 찾으면 그들의 얘기가 그럴싸하다. 제국이 민중을 착취하고 수탈할 때 전북 김제의 만경평야는 쌀이 넘쳐흘렀고 돈이 넘쳐흘렀다고 한다. 현재 전체 7000만평, 한해 생산량 170여만 가마,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의 2.5%가 김제 들녘에서 나온다. 조선의 곡창지대 김제는 식민지 침탈에 나선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도록 만들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는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근처에 항구를 만들고, 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도정공장 등을 건설하고 금융시설과 치안시설을 만든다. 도시는 활기차다. 제국주의자들과 제국의 마름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중은 굶주려야 했고 죽어가야 했다. 일제에 빌붙은 사람들은 갑부가 되었고 가난한 이들은 굶주렸다. 이것이 김제라는 공간이 일제 강점기 발전하게 된 배경이다. 대다수 민중에 대한 착취와 극소수의 제국주의자들의 배를 불리는 공간으로서의 김제 말이다.
쌀 수탈을 중심으로 도시는 계획되다

▲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문화재 전문위원)은 구 백구농협 앞에서 “이곳을 철거하지 않고 어떤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냐”고 답사자들에게 물었다.

▲ 구 백구농협 내부
김제에 서린 제국주의의 뚜렷한 그림자가 보인다. 쌀 수탈을 둘러싼 도시계획과 공간의 구획이 펼쳐진다. 당연히 엄청난 돈이 모였다고 한다. 그래서 답사 코스중 가장 먼저 도착한 백구면 월봉리에 위치한 구(舊) 백구농협은 일제강점기에 금융조합 건물로 건립된 곳이다. 구 백구농협 주변에는 부용역이 위치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쌀을 생산했으면 주변에 논으로 둘러싸인 곳에 역과 금융조합 건물이 자리를 잡았을까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초가집 사이에 우뚝 선 서양식과 일본식이 절충된 이 건물은 당시에 얼마나 위풍당당 했을까?

▲ 월봉도정공장 내부

▲ 월봉도정공장
구 백구농협 30미터 거리에는 ‘월봉도정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쌀이 넘치도록 생산 되는 곳이니 당연히 도정공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도정공장과 구 백구농협은 곧 철거 될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답사를 인솔한 황평우 문화재 위원은 이곳을 철거하지 않고 어떤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냐고 답사자들에게 묻는다. 제국주의의 수탈을 기억하기 위해서 말이다.

▲ 유인호 가옥 – 2층으로 솟아오른 일본식 가옥은 주변의 초가집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월봉리를 떠나 김제 시내 신풍동에 위치한 유인호 가옥으로 향했다. 그저 도로변에 대충 담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집이다. 하지만 건물 옆으로 돌아가 유심히 살펴보면 일본풍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가 알겠는가? 그런 집이 일제 침략의 역사가 담겨 있으리라고는……. 가옥은 그저 독특한 구조의 집이라 약간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마당 안에 들어섰다.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집은 지금은 주변의 아파트에 비해 초라하지만 1928년 처음 건립되었을 때는 제국의 상징을 드러내며 자리 잡았을 것이다. 특히 2층으로 높이 올라간 일본식 지붕의 위압감은 민중에 대한 억압의 상징처럼 보였다.

▲ 유인호 가옥은 김제역 관사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대규모 2층 일식 주택이다.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김제 시장은 제국주의 시대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황평우 문화제위원은 “수탈이 시작되고 일본인들이 드나들면서 김제 시장은 전라북도에서도 큰 축에 속하는 시장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반드시 북경반점 건물을 찾아보셔야 합니다.”

▲ 김제시장에 남아 있는 일제시대 건물

▲ 김제시장은 일본인들이 드나들면서 대규모 시장으로 바뀌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장을 둘러보자 곳곳에 일제 강점기의 형태를 띤 건물들이 보인다. 그리고 간신히 찾은 북경반점 건물.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일본식의 조그만 2층 건물에 커다랗게 박힌 북경반점 간판은 답사의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김제 시장을 벗어나 도착한 곳은 능제저수지다. 황평우 문화제위원은 “능제저수지는 가슴 아픈 현장”이라며 “아름다운 저수지 안에 한이 서려 있다”고 설명했다. 보다 많은 쌀을 수탈하기 위해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한 저수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구릉지에 물을 가두는 재래지에 1930년 6월 담수호로 확장하여 만경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도록 했다. 지금은 연잎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저수지 지만 80여 년 전에는 착취의 저수지였던 것이다. 지금은 이곳 저수지를 외래종 물고기 베스가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일제의 모습을 담은 건물과 공간은 제국이 물러간 곳에 허름하게 서있지만 역사의 아픔을 전달해 준다.

▲ 아름다운 능제저수지

▲ “걸어도 걸어도 모두 하시모토의 땅”이라던 논은 지평선을 만들고 있을 정도다
만경평야의 끝없는 논을 지나쳤다. 끝없이 펼쳐진 논의 지평선 아래서 제국의 침략자들은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말을 타고 달려가도 결국 내 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넓은 땅의 쌀을 약탈했다. 그런 땅을 버스로 지나치며 도착한 곳이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위치한 구(舊) 하시모토농장 사무실이다. 답사 수첩에는 “1906년 하시모토는 군산에 들어왔으며 1911년 동진강 일대의 개간지를 불하받아 개간에 착수하여 이듬해 공사를 완공하였다. 이어서 죽산으로 거주지를 이전하였으며 1916년 5월부터 농장 경영을 시작하였다. 1931년 3월 죽산리 농장을 변경하여 자본금 50만원의 법인의 주식회사 교본농장으로 개칭하고 사장으로 취임하였고 소작인은 550여명에 달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이곳 농장 사무소는 그 농장을 관리하던 건물이었다.

▲ 하시모토농장사무실
제국주의의 역사, 보관할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일본인 대지주들은 이렇게 조선에 들어와 쌀과 돈을 긁어모았다. 그리고 돈이 모이기 시작하자 물류가 필요하고 안정적인 치안이 필요했다. 배고픈 민중이 두려웠던 것이다. 도시는 그렇게 계획되었다. 그러나 그 쌀과 돈이 넘치는 도시에 살고 있는 민중은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쌀을 독점당하고 보리와 수수로 연명하고 굶주려야 했다. 답사는 그 야만의 제국주의를 보여준다.
이번 답사의 의미는 착취와 수탈이 만들어 낸 근.현대의 생활공간들을 archive(보관)할 것인가 memorial(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보인다.
황평우 문화제 전문위원은 “근현대사의 역사적 부동산과 동산들을 그저 아카이브(archive/ 보관)하는 것이 아닌 역사를 어떻게 메모리얼(memorial/ 기억)할 것인지 돌아보는 자리였으면 합니다. 치욕의 역사도 역사입니다. 삼전도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삼전도 비를 보존하듯이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어떻게 지배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라고 말했다.
답사는 김제의 거리 곳곳에 평범하게 서있던 행정건물, 연꽃 무성한 저수지, 특이한 형태의 주거지, 넓은 평야 등 이런 곳이 어떤 역사를 담고 있고 어떻게 공간을 만들고 도시가 계획되었는지를 찾아보는 자리였다. 결코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그런 공간에의 초대이며 흥미로우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재발견이다.
– 피플파워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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