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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경남서부지회 회원들이 유치진 재조명 심포지엄이 열린 30일 오후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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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윤성효 |
“2008년이면 한국 신극이 뿌리 내린지 100년이 되는 해다. 신극 100년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동랑 유치진이다. 그의 연극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심포지엄 취지문)
“죽은 친일망령을 누가 다시 불러 오는가. 미국 의회는 일본정부에게 사과 촉구하는데, 한국 통영시는 위안부 할머니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가.”(민족문제연구소 경남서부지회)
대표적 친일파 유치진(호 동랑, 1905~1974)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열리자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항의시위를 벌여 관심을 모았다. 심포지엄은 30일 오후 통영 남망산 기슭에 있는 통영시민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열렸다.
‘2007 통영 전국 소극장 축제’를 열고 있는 극단 ‘벅수골’이 한국문화예술회원회와 통영시, 한국연극협회 등의 후원을 받아 심포지엄을 연 것. 이날 심포지엄의 주제는 ‘한국 신극 100년사에 미친 동랑의 영향’이란 주제로, 통영 출신인 유치진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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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의장 통영시장(왼쪽)이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나눠주는 유인물을 받아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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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행사장 안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다 주최측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밖으로 나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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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남망산 흉상 철거되었는데 다시 기념사업이냐”
심포지엄이 열린다는 소식을 안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10여명이 달려왔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과 경남서부지회 회원들이 현수막과 유인물을 들고 나타났다.
이들은 유치진의 친일행적을 담은 유인물을 행사 참석자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으며, 통영시를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행사장 입구에 들고 서 있기도 했다.
유치진의 친일 행적은 오래 전부터 통영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남망산 기슭에는 1990년 통영문화재단에서 세운 유치진의 흉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친일행적이 밝혀지면서 1995년 자진 철거되었다. 문화부는 1991년 ‘4월의 문화인물’로 유치진을 선정했다가 시민단체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 취소되기도 했다.
1948년 김구 선생의 지시로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승학 선생이 작성한 ‘친일파 263인’ 명단과 1992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파 99인>에도 유치진은 포함되어 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2005년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을 발표하면서 유치진을 포함시켰다.
유치진의 친일행적은 뚜렷하다. 대표적으로 <북진대>와 <대추나무> 등이 꼽히고 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학계에서도 유치진의 친일행적은 너무나 뚜렷하기에 이의가 없다”면서 “흉상이 저절로 철거되었는데 이번에 심포지엄을 갖는 것은 다시 유치진을 기리기 위한 차원으로 보여 반대하러 왔다”고 말했다.
통영지역 문인인 최정규씨는 “흉상을 건립했다가 1995년 철거했다. 그것 자체가 인정했다는 것 아니었느냐. 그런데 새삼스럽게 다시 기념사업을 한다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행사장인 통영시민문화회관 소극장 안으로 들어가 방청석을 돌며 유인물을 나눠주기도 했으며, 주최측에서 ‘방해가 된다’며 바깥으로 밀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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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남망산 기슭에는 1990년 설치된 유치진의 흉상이 있었는데 친일행적이 밝혀지면서 1995년 자진철거되었고, 지금은 빈 터만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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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윤성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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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포지엄 참석자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나눠준 유인물을 읽어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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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업적은 친일행위 커버한다”
이날 심포지엄은 토론에 앞서 개회식이 열렸다. 장창석 ‘벅수골’ 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박계배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은 “최근 지역 일각에서 동랑 선생과 관련해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만, 심포지엄을 통해 객관적이고 분명한 평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의장 통영시장은 “예술인을 기리는데 있어 고향에서는 항상 문제가 생긴다. 미당 서정주도 그랬다. 그런저런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토론을 통해 가치를 재정립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은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의 사회로 열렸다.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는 ‘예술인의 삶과 작품-민족과 이념과 예술 사이에서’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그는 유럽 등 외국의 사례를 소개한 뒤, “그 엄청난 수난의 시기, 그 무서운 ‘형옥’의 시절에 그 당시 ‘조선인’은 누구나 같은 사슬에 묶여서 살아갔다”고 말했다.
김 명예교수는 “그런 것, 저런 것 생각할 때 이념 따로, 심지어 민족 따로 예술과 문학을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를 새삼 가다듬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덧붙였다.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는 ‘동랑 유치진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유 명예교수는 “동랑은 연극의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머무른 것이 아니라 연극은 물론이고 한국현대문화 전반에 걸쳐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유치진이 일제 말엽의 친일행위로 인해 지난해에 탄생 100주년기념행사도 치르지 못했다. 그가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 1941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 4년여 동안 어용극을 주로 한 현대극장을 이끌고 일본군국주의가 추구하던 목표에 맞춰 희곡을 썼으며, 국민연극을 주창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유 명예교수는 “이는 총독부의 강요에 따른 것이었고 올바른 정보가 차단되어 있을 당시 문약한 그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한 것과 해방 직후 몇 년 간 참회의 시간도 가졌던 것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 한국연극사에 남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광범위한 업적은 그의 친일행위를 커버하고도 남는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이상우 영남대 교수(유치진의 역사극-민족담론과 식민담론의 양가성), 송선호 성균관대 겸임교수(유치진의 연극운동에서 계몽성과 대중성의 문제)가 발제를 했으며, 이상일 성균관대 명예교수와 윤대성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강수성 극작가, 김미혜 한양대 교수, 민병욱 부산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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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포지엄에 참석한 유민영 명예교수(오른쪽)와 진의장 통영시장이 객석에 앉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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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포지엄은 “한국 신극 100년사에 미친 동랑의 영향”이란 주제로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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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판 ‘하여가’를 듣는 것 같다”
이날 주요 발제 내용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유인물을 통해 비판했다.
김열규 교수의 발제에 대해, 연구소는 “마치 21세기판 ‘하여가’를 듣는 것 같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친일이든 항일이든 작품만 좋으면 그만이지'”라며 “모름지기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쓰였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작품이 아닌 것”이라고 밝혔다.
유민영 교수의 발제에 대해, 연구소는 “완전 억측과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했고, 동시에 고등학교에서 논술수업을 들어야 할 정도로 수준 이하이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제에 저항한 것인가. 특급 친일매국노도 창씨개명하지 않은 예가 수두룩하다. 창씨개명 여부는 친일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길 바란다”고 밝혔다.<오마이뉴스, 0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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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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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윤성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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