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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망언은 계속된다-부산일보(0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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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망언은 계속된다


 
“일본의 36년간 한국통치는 한국인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다”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 관헌이 사람을 납치해 데려간 강제성은 없었다. 그런 것을 증명할 증언도 없다.” “나는 일부 부모들이 딸을 팔았던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군이 관여했다는 뜻은 아니다” “창씨 개명은 조선인이 희망했다” “운좋게도,정말 운좋게도 한국전이 발발했고 그 덕분에 일본 경제 재건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는 일본의 주요 정치인 혹은 관료들의 최근 발언이다.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아 정계에 입문한 뒤 총리가 된 이도 있고,조선인 1만여명을 강제로 끌고 간 뒤 탄광에서 노역을 시켰던 이의 손자도 있다. 이들은 전쟁에 패한 뒤 수 십 년 동안 끊임없이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1938년부터 본격화된 강제징용은 약 210만여명의 젊은이를 전쟁터로, 탄광으로, 군수공장으로, 비행장 공사장으로, 위안소로 끌고 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10여시간을 칠흑같이 어두운 막장에서, 제철소에서, 군수공장에서, 비행장 공사장에서 굶주림과 중노동, 고문, 학대에 시달리며 지옥같은 노예생활을 강요당해야 했다. 일부 여성은 군인들의 성노리개로 전락했다. 호박과 무 한 조각이 반찬이었고 끓인 바닷물이 국이었다. 혹한기에도 담요 한 장으로 잠을 자야 했고 배가 너무 고파 돼지 죽통을 훔쳐야 했다. 혹여 지옥과 같은 생활을 견디지 못해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히면 감독관들은 동료들 앞에서 이들을 때려 죽이거나 굶주린 개를 풀어 물려 죽게 했다. 또 천장에 매달아 놓고 장작불을 피워 천천히 태워 죽인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숨진 이들은 야산에 생매장됐다. 지금도 연고없는 묘들이 탄광 주변에서 수시로 발견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강제로 동원하지 않았다”고 뇌까린다면 이를 망언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뒤 해방이 되자 많은 한국인들이 귀국하기 위해 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1만2천여명이 탄 배는 누군가에 의해 침몰됐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 9년 뒤인 1954년 10월 일본은 고철에 대한 원자재난을 겪게 되자 침몰된 배를 전격적으로 인양해 고철로 팔아버렸다. 이때 수습된 유골이 몇 차례에 걸쳐 합장과 분골을 통해 일부는 도쿄 시내의 유텐지에,또 일부는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

세월은 흐른다. 그 속에서 강제징용 1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차별과 통한을 뒤로 하고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세상에 없다고해서 강제징용의 진실이 영원히 숨겨진다고 믿는 것은 지극히 순진한 생각이다.

강제징용은 단지 정치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에 관한 문제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에 대한 인식은 역사 왜곡이라는 차원을 넘어 인간 존엄과 가치 실현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이상에 대한 위선적 태도다.

일본의 계속되는 망언은 중단돼야 한다. 피해 당사국의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긴 세월동안 묻혀져 있던 진상들도 밝혀져야 한다.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고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도 중단돼야 한다. 진정으로 평화를 바란다면 말이다.

 –  사진가·사진작업실 새날그리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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