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만에 세운 민족정기
친일파 9명 재산환수,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에 쓰기로
일제에게 뺏긴 국가 주권을 되찾은지 62년만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재산을 나라에 귀속했다. 재산의 양은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중대하다.
이번에 국가에 귀속되는 시가 63억원 가량의 친일재산은 독립유공자들을 위한 지원금 등에 쓰일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27조는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돕고 독립정신을 계승해 민족정기를 높이는 사업을 위해 국가에 귀속된 친일재산을 기금으로 쓰도록 하고 있다. 30조는 기금의 용도를 독립 유공자와 그 유족의 예우를 위한 지원금, 독립운동 관련 기념 사업으로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친일 후손들 일본 이민 많아 =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위원장 김창국)는 1904년 러·일 전쟁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매국 조약에 연루된 자나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자 등 452명의 친일 행위자 중 350명의 가계도를 작성했다.
위원회는 2일 제18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환수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1차로 선정된 친일 반민족 행위자 9명의 명의로 돼 있거나 그 후손들이 상속·증여받은 땅 154필지 25만4906㎡(공시지가 36억원, 추정시가 63억원)를 국가에 귀속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재산환수 작업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다.
위원회에 따르면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완용은 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정미칠조약에 기여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10만원(현재 가치 20억원)을 받는다. 1910년 한·일 합병 때는 백작 작위와 함께 15만원(현재가치 30억원)을 은사금으로 받는다.
이완용은 이 돈으로 전북 군산 김제 부안 일대의 논을 사들여 일제 초창기에 그가 소유한 땅만 여의도 면적의 1.9배인 1309필지 1573만㎡에 이른다.
1925년 이완용은 현금재산만해도 최소 300만원(현재가치 600억원)을 보유했다.
이완용은 이 재산을 후손에게 상속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가계도를 일별해볼 때 이들 중 다수가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갔고 특히 일본 이민자가 많았다”며 “국내 거주자의 경우 이른바 상대적으로 중산층 이상이 사는 지역에 대부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친일재산 환수 계기로 민족정기 회복 기대 = 반면 이역만리를 떠돌며 독립운동을 하던 유공자들은 후손을 돌보지 못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2004년 최초로 실시한 독립유공자 유족 생활실태에 대한 설문조사 (225명 대상) 결과 이들 중 다수는 저학력 무직의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독립유공자 후손 중 직업 없이 연명하는 유족이 58%에 이르고 농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유족이 19%를 차지하는 등 조사대상의 절반을 상회하는 숫자가 이 사회의 빈민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학력은 무학 30명(한학 5명 포함), 초등학교 졸업 48명, 중졸 31명, 고졸 85명, 대졸 31명으로, 독립유공자 유족들의 학력수준은 중졸 이하가 48%를 차지했다. 고졸은 37%, 대졸이 13% 정도로 약 절반 정도의 유족들이 고등학교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학력에 저임금 직업군에 속한 이들의 생활수준도 낮았다. 설문조사 결과 자신의 생활수준이 상층부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225명 중 단 1명 뿐 이었으며,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하고 있는 유족들은 40%에 해당하는 90명, 빈민층으로 생각하는 유족들은 52%에 해당하는 133명이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항일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속설이 바뀌지 않는 한 민족정기가 바로 서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환수를 계기로 정의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사회적 신뢰가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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