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4일 배재대 학술지원센터에서 연구소와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한국정신대연구소,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공동 개최한 ‘강제성이란 무엇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한일공동세미나가 열렸다. 대회장이 비좁을 정도로 내빈들과 시민들이 많이 참석해 주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아주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번 세미나는 최근 일본의 아베 수상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망언, 특히 일본군 위안부의 연행과정에서 강제성을 부인하는 것을 해부,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으려고 기획되었다. 미국에서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혼다결의안 통과를 위한 여론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시기라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오전에 열린 주제발표에서 첫번째 발표자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일본 주오대 교수는 “강제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시키는 것”이라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폭행을이용한 연행이 없다는 이유로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은 없었다’라고 발언했지만 이는 강제 사역(使役)의 의미를 간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위안소는 업자가 마음대로 전쟁지역, 점령지에서 못 만들기 때문에 일본군이 업자를 지정해 감독, 통제한 것이 분명하다”라며 “군이 위안소 규칙, 요금, 이용시간 등을 결정하고 업자에게 영업보고서를 제출토록 했다”고 말했다. 또한 1994년 네덜란드 정부보고서와 도쿄재판 등의 여러 사례도 소개하면서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군의 ‘강제’는 명백하고, 그 책임을 부정할수 없다”며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의 책임주체가 일본군임을 인정하고, 명확한 사죄를 해야 한다”고주장했다.
두번째 한국측 발표자인 하종문 한신대 교수는 군속으로서의 위안소업자에 대한 발표를 하면서 위안소와 위안소업자, 위안부를 일본군의 조직체계와 작전에 깊숙이 결부된 군사시설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번째 발제자인 작가 가와다 후미코(川田文子)씨는 “여성들을 위안소로 연행할 때 가해진 강제성에는강약이 있었지만 위안소에서 성노예로서 강제성은 일률적으로 심각하다”며 위안부 실체를 처음 증언한고 배봉기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배씨는 “남쪽의 섬에 가면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1944년 배를 탔다가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 위안소로 끌려가 종전까지 성노예 역할을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후미코씨에게 진술했다. 그녀는 평생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다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배씨와 만난 뒤로 ‘위안부’문제가 필생의 사업이 됐다. 배씨가숨진 뒤 여러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듣다보니 일본군의 성노예 제도가 얼마나 잔혹했는지 알게됐고, 이 같은 진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사명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오후 종합토론 시간에는 한우성, 강정숙, 김부자, 김창록, 윤미향, 신주백, 조시현 등 약정 토론자들과발표자 간에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다. 방청객의 질문에 이어 다시 발표자의 답변까지 알찬 토론이 이루어졌고 혼다결의안 관련 미국 언론 동향, 위안소 시스템, 피해자의 시각, 국제법적 책임 등이 다양한쟁점이 논의되었다.
이상의 발표와 토론으로 일본군 위안소제도를 둘러싼 동원, 위안소 내부에서의 강제 및 이송과 전후처리에까지 강제성의 의미는 명백해졌다. 이를 기반으로 어떻게 일본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얻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이다. 관련 연구자와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와 활동이 절실하게요구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