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재산 환수결정’ 대상자 9인 면면>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장재은 기자 =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2일 내린 친일재산 국가귀속 결정의 대상 토지와 임야는 25만4천906㎡이지만 대상자 9인이 실제로 일제에 의해 소유권을 인정받은 토지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이들은 1910~1918년 토지조사사업과 1916~1924년 임야조사사업 당시 3천994만6천266㎡의 땅을 소유하게 됐지만 이번에 귀속 결정이 난 토지는 전체 친일축적 재산의 0.64%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9명 가운데 두 차례 조사를 통해 토지와 임야 1천572만9천167㎡를 확보한 이완용-이병길 부자의 땅이 가장 많다.
한일합병조약 당시 내각 총리대신을 지낸 대표적인 `매국노’인 그는 정미칠조약과 한일합병의 대가로 받은 각종 하사금과 국유 미간지나 임야를 무상 대부받아 3자에게 매각해 생긴 차익으로 전북 군산과 김제, 부안 일대의 논을 집중 매입했다.
이완용 내각에서 내부대신 등을 역임하며 국권피탈을 위한 청원서를 내는 등 매국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진 송병준은 아들 송종헌과 함께 856만8천298㎡의 토지를 챙겼다.
그 역시 이완용과 마찬가지로 하사금 수령과 국유지 무상 대부를 통해 재산을 늘렸지만 1925년 죽고 난 뒤 5년 만에 대부분의 토지가 제3자에게 매각됐다.
송병준의 토지는 특별법이 시행된 2005년 12월29일 당일 후손들에 의해 처분된 것도 있지만 위원회는 추후 조사를 거쳐 이 토지를 국가에 귀속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가장 많은 토지가 국가에 귀속된 고희경은 `정미칠조약’ 당시 탁지부 대신인 고영희의 장자로 자작을 물려받은 뒤 백작으로 승작해 중추원 고문, 이왕직 왕세자부 사무관 등 관직을 맡았다.
이재극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남작 작위를 받고 이왕직장관, 신사회발기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조중응은 `정미칠조약’ 당시 법부대신, `한일합병조약’ 당시 농상공부 대신을 지낸 뒤 자작을 받아 중추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
권중현(1854∼1934)은 `을사조약’ 당시 농상공부 대신으로 매국행위를 했으며 한일합병의 공으로 자작 작위와 은사 공채를 받은 뒤 중추원 부위장ㆍ고문 등을 거쳤다.

친일파 9명 재산 첫 국가귀속
위원회는 이들을 포함해 조사 대상이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452명의 명단을 확정했다.
이 명단에는 을사조약과 정미조약, 한일합병조약 등과 관련해 매국행위를 한 14명과 수작과 습작 등 작위를 받은 125명, 제국의회의 귀족원과 중의원에 소속된 7명,중추원 소속 306명이 포함됐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6~9조에서 매국행위자와 작위 수요, 제국의회.중추원 활동가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는 이들 452명 이외에 독립운동에 참여한 자를 살상하는 등 친일 정도가 중대하다고 인정되는 사람도 조사대상에 포함할 예정이어서 재산 귀속 대상자는 조사가 진행되면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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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속 대상 재산 검토하는 조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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