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김승은 자료팀장 | ||
| ||
| ||
| ||
| ||
연구소 사무실에 들어서면 왼쪽에 보이는 기둥 위에 임종국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다. 요산재에서 집필에 몰두하시던 1980년대 중반의 모습인데, 그 형형한 눈빛이 언제나 현실을 직시하라고 우리를 독려하는 듯한 인상적인 사진이다. 회원들도 많이 아는 이 사진은 또 한 가지 중요한 노력의 결실을 증언하고 있다. | ||
| ||
| ||
▲ 임종국 선생 | ||
| ||
친일문제연구와 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연구소의 소중한 자산으로 소개된 바 있는 이 카드들은 숫자만 헤아려도 무려 1만 3천여 장에 달한다. 1만 장에 달하는 인명카드는 가나다순으로 5, 60장 혹은 8, 90장씩 묶여 있었는데, 그 묶음이 125개나 된다. 그 외에 친일논설·작품의 작가, 일제말 (전쟁협력)단체, 각종 종교·경제·사회단체, 매일신보 기사색인 카드들이 있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 손수 자료를 베껴가며 모아오신 인명카드에는 누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가 시대순으로 소상하게 정리되어 있다. 『매일신보』나 『조선총독부 관보』, 재판기록, 심지어는 면사무소 인사발령기록까지 찾아볼 정도로 철저하게 자료를 모은 후 인물별로 꼼꼼히 기록해두었던 것이다. | ||
| ||
| ||
▲ 인명카드 여러 장 내지는 보관 파일 사진03, 04 | ||
| ||
예를 들어 ‘문명기(文明琦)’ 인명카드를 들추어 보자. 모든 카드가 그렇듯이 문명기 이름이 한자로 적혀있고, 창씨명이 밝혀진 경우 창씨명 文明琦一郞을 적었다. 상단 왼쪽에 쓴 번호는 나중에 카드를 정리하는 이가 임의로 붙인 번호인데, 종이의 변색상태로 보아 번호 24-40·41이 나중에 작성된 카드로 보인다. 기록된 정보를 보아도 99-10·11번 카드에는 1930년대 후반 국방헌납 관련기사와 주요 경력이 간략하지만, 24-40·41번 카드에는 자세한 경력사항과 함께 각종 훈포상 이력, 국방헌납·전쟁협력행위 등이 날짜·출전(관보·매일신보)과 함께 기록되었다. 그리고 일제시대 연호대로 明11, 昭7로 썼던 것을 1878년, 1932년으로 바꾸어 썼다. | ||
| ||
▲ <(왼쪽)24-40.41 위아래 /(오른쪽)99-10.11 위아래 사진> | ||
※위 그림을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큰 그림을 다시 클릭하시면 창이 닫힙니다. | ||
| ||
24-40·41번 카드는 관보에 실린 관직임면사항과 신문의 각종 기사를 하나하나 찾아 기록한 것이다. 관보나 매일신보의 깨알 같은 글에서 한 줄의 인물정보를 찾아 기록한 끈기와 인내력은 카드기록의 양만으로 절대 가늠할 수 없다. 컴퓨터도 없이 눈으로 손으로 시간으로 기록한 한 장 한 장이 아닌가. 한편 99-10번 카드에는 금은광 매각대금 12만원 중 10만원을 애국기 헌납금으로 내놓은 것이라든가, 애국기 100대 기부를 결의하고 일본 이세신궁(伊世神宮)에 참배한 후 돌아와 애국기헌납운동을 선도했던 사실, 취미가 한시(漢詩)라는 등의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1935년 발간된 『조선공로자명감』을 참고한 것이다. 30여 년 전에 먼지 쌓인 대학도서관 한구석에서 찾아낸 일제가 발행한 ‘친일공로자’들에 대한 칭송이나 매일신보에서 친일파 조선인들의 기록을 한자 한자 눌러쓰면서 느꼈을 선생의 고심참담함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렇게 모아 기록한 ‘문명기’ 인명카드 정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문명기(文明琦, 文明琦一郞, 1878.6 생) 문명기에 대한 주요 경력과 친일행적은 이 4장의 카드뿐이다. 그러나 이 인명카드를 기반으로 하나하나 자료들이 모이고 쌓여 드디어 친일인명사전 집필이 시작되었다. 친일행적뿐만 아니라 논설과 작품을 써 전쟁협력을 독려한 인물들의 기사색인도 꼼꼼히 스크랩해 두셨기 때문에 연구소는 그 원고의 원본들을 충실히 찾아 모아두었고 아마도 <친일파연구총서>에 한 부분을 장식하지 않을까 싶다. 총 10권의 ‘친일파총서’를 평생 과업으로 삼았던 임종국 선생의 꿈은 이제 국민의 힘으로 만드는 <친일파연구총서>로 영글어 가고 있다. 늘 연구소 한켠에 친일인명사전편찬의 디딤돌이자 소중한 사료로 보관되어 있는 임종국 선생님의 친필카드는 오늘도 연구소 성원들에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엄중한 민족사의 과업을 일깨워주고 있다. |
주요기사
1만 3천여 장의 ‘임종국카드’가 남긴 역사의 과업
By 민족문제연구소 -
664


![img-top-introduce[1]](/wp-content/uploads/2016/02/img-top-news1.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