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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길]안익태 친일논란 다시 불 붙나…숨겨진 자료 발굴 ‘유럽시절 행적’ 재구성-쿠키뉴스(0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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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길]안익태 친일논란 다시 불 붙나… 숨겨진 자료 발굴 ‘유럽시절 행적’ 재구성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이경분/ 휴머니스트


지난해는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1906∼1965)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지만 그의 친일 행적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친일파가 만든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이에 대해 안익태기념재단은 ‘일본이 안익태 선생의 뛰어난 재능을 이용한 것 뿐’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해가 바뀌면서 논란이 다소 잠잠해진 가운데 안익태의 자료를 새롭게 발굴해 그의 삶을 재구성한 책 ‘잃어버린 시간 1938∼1944’이 출간됐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등 음악가로서 최전성기를 보냈으나 몇몇 사진을 제외하곤 공백인 유럽 시절 숨겨진 모습을 밝힌 것으로 그를 둘러싼 논란에 다시한번 불을 붙일 전망이다.

음악학자인 저자가 안익태의 삶에 궁금증을 가지게 된 계기는 독일 유학시절 접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전기. 이 책에는 나치에 협력했던 슈트라우스가 일본 천황의 위촉으로 쓴 ‘일본 축전곡’을 안익태가 빈에서 지휘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저자는 ‘망명음악, 나치음악’이란 책을 집필하면서 그동안 덮어놓았던 안익태에 대한 의문을 떠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음악인들이 독일을 떠나 미국과 영국 등지로 살 길을 찾아 망명했을 때, 오히려 나치 독일의 중심부 베를린으로 가서 음악적 성공을 꾀했던 안익태.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지난 여름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베를린 국립문서보관소, 코블렌츠 국립문서보관소, 슈트라우스 가족문서보관소등을 방문해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익태의 유럽 활동 시기의 삶과 음악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저자가 당시 안익태의 행적과 관련해 주목한 것은 당시 독일과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문화친목단체 ‘일독회(日獨會)’. 그동안 안익태는 1938년부터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됐고 제자의 재능에 감복한 스승의 후원으로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안익태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 안익태가 베를린과 빈 등지에서 지휘한 연주회는 모두 일독회가 관여한 것이며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된 것도 1943년 일독회 행사 덕분이다. 게다가 안익태는 적극적으로 나치와 일본 관료들에게 협력하고 스스로 연주회를 제안하기까지 했다. 안익태가 일본 외교관 에하라 고이치의 집에 장기간 체류한 것 등은 이를 반증한다.



이와 함께 안익태는 유럽 시절부터 애국가가 포함된 ‘코리아 판타지’를 연주했다고 밝혀 왔다. 안익태기념재단을 비롯해 안익태 연구가들은 안익태가 밝힌 내용을 토대로 그의 애국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안익태는 한번도 ‘코리아 판타지’를 연주한 적이 없으며 대신 일본 황실 음악을 토대로 작곡한 ‘에텐라쿠’를 주로 선보이는 등 일본 음악가로서의 이미지를 높이고자 했다. 안익태가 1942년 일본이 만든 괴뢰국인 만주국의 음악 대사로 활약한 사실 역시 애국자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저자는 “안익태의 문제는 전쟁이 끝난 후 사실을 은폐하고 기록을 왜곡해 은연중 애국자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라며 “결국 안익태는 나치 조력자였던 슈트라우스나 푸르트뱅글러와 달리 음악이 아닌 정치적 잣대로 평가됐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안익태에 대한 정치적 믿음이 깨지고 신화가 무너졌을 때 그는 음악가로서 살아남기 힘든 위기에 처한 것.

하지만 저자는 “안익태 연구를 기점으로 일제시대 음악가들에 대해 친일이냐 아니냐는 흑백논리 대신 심층적인 이해와 분석의 틀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음악적 성공을 위해 일제 협력자가 된 것은 단순히 안익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처한 운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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