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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로 총장 “역사는 자기반성과 갱신 통한 자기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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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이상원 기자

이건의 결단의 속셈…

 

똑바로 걸어야 한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우고, 바른 자세로 곧은길을 가야 한다.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삶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시간이 흘러,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정직하게 찍힌 발자국에 부끄럼을 느끼지 않을 테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방법이야 어찌 됐든 목적만 이루면 된다며 혈안이 되어있는 세태 속에서‘그래도 과정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 발자국이 내 지난 길을 보여주듯… 삶의 행적 역시 역사 속에 여실히 남아, 냉엄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지금 현재의 질타보다 훗날의 평가가 더 두렵다는 사람,과거의 일을 되짚어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사람, 옳다고 믿는 일에는 절대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사람, 하여 역사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신앙인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누구보다 똑바로 제 갈 길을 가는 사람…

친일 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서..타협하지 않는 절개로 대쪽 같은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윤경로 총장을 9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났다.

▶ 방학인데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 대학에서 행정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방학이 더 바빠요. 특히 요즘에는 신문지상에서도 나오지만 대학마다 등록금 조정문제로 많이 바쁩니다. 특히 사립대학교의 경우 국가에서 정부지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학생들의 등록금에 학교운영경비를 다 의존하다 보니까 더 어렵네요. 저도 자식을 셋이나 대학에 보냈는데 학부모 입장에서도 학교를 운영하는 경영자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괴로운 점이 참 많습니다.

▶ 하시는 일이 너무 많으세요. 물론 한성대 총장님이시고,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공동대표, 서울YMCA시민논단위원회 위원장, 친일 인명사전편찬위원장, 경실련통일협회 이사장, 국사편찬위원회 운영위원, 국가보훈처 공적심사위원, 이게 다 맞습니까?

– 경실련통일협회 이사장은 총장 되면서 그만두었고, 서울YMCA시민논단위원회 위원장은 임기가 끝나서 물러났습니다. 친일 인명사전편찬위원장 일은 계속 하고 있고요,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일은 상당한 자산이 되는 700만 재외동포의 후세에게 한국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한국어를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깊게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본직이 역사 선생이니까 국사편찬위원회 일과 국가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 일도 빠지지 않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2005년 3월에 한성대 총장이 되고는 학교 일에 주력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지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데 그 일을 하시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도 많으셨던 것 같아요. 친일인명사전편찬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있나요?

– 이 작업을 학계에서 시작한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어요. 정식으로 친일 인명사전편찬사업을일을 시작한 것은 2001년 말이었는데 그때 세워진 계획대로라면 올해 2007년 12월에 인명사전을 편찬하기로 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이 모임을 한 사람들이 대체로 학자들이 중심이다 보니 정치적인 고려를 못 해서 올 말이 대선인지 몰랐어요. 혹시라도 이것이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적인 문제를 야기 시킬까 봐 올해 말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하되 간행은 내년에 하려고 합니다. 1차 발표를 광복 50주년이 되는 작년 8월 29일에 했습니다.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가 되고 그것이 공포된 날이 29일이라서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지요. 그때 이미 3,092명 정도를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할 대상으로 선정을 해서 발표를 하고 일단 검증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라 혹시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의가 있으면 이의제기도 받고 수정할 것은 수정도 하고 또, 누락이 되면 면죄부를 주게 되니까 일단 공개적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그 후에 2년 동안 정리를 더 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중앙, 국내, 해외 편과 함께 분야별로 나뉘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또, 여기에 드는 전문가들의 작업량과 경비도 상당하지요.

▶ 후유증도 있었을 것 같아요.

– 처음에 제가 위원장을 맡으면서 사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 일이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항의도 받을 수 있고 소송도 제기될 수 있고 해서 여러 가지로 걱정을 했는데 평소에 역사학도로서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소신이 있었기에 아예 감수할 생각을 하고 했습니다. 물론 발표 후에 잔잔한 일들은 좀 있었지만 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의외로 이의제기가 없었어요. 한번은 해봐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는가 생각하고 지금은 차분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인명사전뿐만 아니라 과거사를 정리하는 중에는 이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느냐 서로 다 용서해야 하지 않느냐 이런 얘기도 있고 또, 보수단체 같은 데는 사전편찬이 이적행위라는 주장도 있었어요. 그리고 자손들의 여러 가지 반발들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 우선 역사적인 의미는 우리가 그동안 역사라 하면 대체로 자랑스럽고 아주 훌륭한 것들만을 가르치고 배워 왔습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약소국으로써 침략도 많이 받았지만 그런 중에도 우리의 얼을 지키고 문화를 지켰던 좋은 점들을 부각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역사라고 하는 것은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랑스러운 것도 있지만 부끄러운 것도 있다, 훌륭한 것도 있지만 허물의 역사도 있다, 그런 양면이 있는 건데 우리가 너무 한쪽만을 비춰줌으로 인해서 다른 한쪽을 잃는다면 그건 반쪽밖에 모르는 겁니다.

허물의 역사와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화 시켜서 그것을 통해 행위가 바르지 못하면 이렇게 훗날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후손들이 역사는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을 얻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또 하나는 최근에 잘 아시는 대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라든지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든지 이런 여러 문제가 있는데 과거에 우리 민족의 어려웠던 문제를 과연 일본이나, 미국이나, 중국이나, 소련이나 이런 외세의 탓으로만 돌려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들이 잘못한 것이 많이 있지요.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내재적인 잘못도 동시에 같이 봐주어야 역사를 보는 바른 균형과 바른 사관이 서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표적인 한 사건이자 역사적인 평가의 범주 중의 하나가 바로 친일 인명사전편찬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이 작업을 하는 동안에 일본의 NHK와 또 다른 방송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그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 이 작업은 일본을 탓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잘못을 우리가 고백하려고 하는 것이다. 근데 이런 것을 당신네 일본이 조금 배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교과서를 왜곡하고 그러면 되겠느냐….”

저는 일본을 비판하고 외국을 비판함과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잘못했던 것들 또한 동시에 볼 수 있어야 우리가 성숙한 사회, 선진화된 사회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젠 우리 사회가 그만한 사회가 됐다고 믿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일이 역사적으로나 현재로 보다 미래에 좀 더 성숙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한국사회를 세계화시키기 위해 한 번쯤 은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소신이 있습니다.

▶ 사실, 친일문제는 해방되면서부터 바로 해야 했는데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까 자료 찾기나 이런 것이 참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부끄러운 우리 조상의 이야기를 왜 또 끄집어내느냐는 반발도 있었을 것이고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 가장 어려운 문제는 친일의 범주를 어디까지 볼 것이며 친일의 행위와 그 대상을 어디까지로 잡고 그 시기를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는 것들이죠. 이런 것들을 가지고 토론하고 여러 번의 공청회를 하면서 한 2년 동안의 시간을 보냈고 기준을 잡아서 그 기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일단 발표하는 것으로 한 것이었죠. 우리는 범주를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한 시기부터 시작해서 1945년 8월 해방되는 거의 40년 정도의 시간을 잡았고요. 사병이나 징병으로 끌려갔다든지, 먹고살기 위해 창씨개명을 한 것은 제외하고 당시로 볼 때 관리로서는 군수이상을 한 사람들과 일본군 장교로 자원입대를 한 경우, 그리고 대부분의 고위층까지 올라간 사람들을 친일의 범주로 놓았습니다.

▶ 물론 기록은 남겨둬야 할 것 같은데 그와 더불어서 그 어려운 시절에 이름도 없는 독립군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찾아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물론입니다. 그 일을 그동안 저희 역사 학회가 해방 이후에 꾸준히 해왔어요. 저도 관계하고 있는 보훈처의 공적심사위원회에서 그런 분들의 후손들에게 보훈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일은 계속 해야 하고요.

▶ 이런 대쪽 같은 성품은 부모님으로부터의 유산인가요? 부모님이 어떤 분이셨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한창 젊은 나이에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은 적도 있다고요?

– 아버님은 농부셨고 저는 육 남매의 막내였어요. 아버님은 친구와 술을 좋아하시는 한량이셨죠. 어머님은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님 상이었어요. 막내라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셔서 많이 힘들었어요. 건강도 좋지 않아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총장까지 다 재수를 했지요….

(웃음) 그러다 고등학교 때 신장계통의 희귀병으로 6개월의 시한부를 선고받았어요. 처음엔 멍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내가 죽으면 나의 죽음에 대해서 누가 슬퍼해줄까’였어요. 그랬더니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친구 몇 사람과 가족 몇 분 이외에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러다 친구어머님의 안수로 정말 기적처럼 낳아서 병원에서도 놀라고 제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회심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제가 역사를 공부하게 된 것도 원래는 신학을 공부하려고 했다가 주위에서 신학을 하려면 학부에서 역사나 철학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역사를 선택한 것이었어요. 나중에 신학을 전공해서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했지만 역사공부 자체도 재미있었고 사실, 목회자의 길이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교수님께 진로 고민을 했더니 이 시대에 목사는 많으나 참 선생이 없다며 ‘김교신과 한국’이라는 책을 주셨어요. 함석헌 선생님과 같이 ‘성서로 본 조선의 역사’를 쓰신 김교신 선생님의 책 읽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일제 강점기에도 이렇게 사셨던 분이 있었구나…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했고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진 참 선생의 꿈을 가지게 되었죠. 제가 새 삶을 찾고 아직까지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 81년에 사학과 교수로 부임하셨고 2년 전부터 총장으로 일하고 계시는데요, 학교로부터 받은 총장 성과급을 고스란히 내놓으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오천 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요.

– 요즘은 대학마다 1년 평가를 하고 총장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우리 학교가 97년 이후에 소요가 좀 있어서 관선 임시이사회 체제였다가 작년에 정이사회 체제로 정상화가 되었어요. 7,8년 끌어오던 복잡한 구조를 정이사회체제로 했다는 것과 등록금문제를 잘 조율해서 원만하게 타결한 것 등을 높이 평가해 주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총장된 것도 감사하고 돈을 벌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또, 집사람하고 의논했더니 집사람이 월급 이외의 학교 돈을 왜 받느냐고 해서 돌려주었지요.

▶ 총장님도 총장님이지만 부인께서 상당히 훌륭하시네요. 저 같으면 안 그랬을 것 같은데…(웃음)

– 저희 집사람은 제가 사랑도 하지만 존경도 합니다…(웃음)

▶ 총장님이 생각하시는 총장상은 어떤 것 인가요?

– 저는 지금 우리 사회가 너무 물질중심의 경제위주의 가치로 가는 것과 얼마 전에도 인문학의 위기라고 해서 문제가 됐듯이 마치 대학이 취업을 위한 학원 비슷하게 가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래를 전망하면서 후학들을 키울 때 거기에는 취업의 문제보다는 그래도 인생이 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좀 더 바르게 사는 것인지 이런 것을 대학에서 가르치고 밤새 토론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은 현실이기 때문에 재정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근본 대학의 정신을 유지해 나가고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하는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학교를 경영도 하고 운영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봅니다.

▶ 지난 역사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고 앞으로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인지도 중요해요. 곧 대통령 선거인데 어떤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서 노자와 제자의 대화가 떠올라요. 제자가 묻습니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과 죽어 있다는 것이 어떻게 다릅니까?” 그랬더니 노자가 “살아있다는 것은 따뜻한 것이고 부드러운 것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것을 죽어있다는 것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사람은 죽으면 뻣뻣해지고 싸늘해지고 차가워집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사회는 목소리도 크고 많이 떠들지만 그게 다 뻣뻣하고 싸늘하고 차가운 얘기뿐입니다. 그건 죽은 소립니다. 그 사회가 정말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그 외침과 주장에 늘 따뜻함이 들어가 있어야 하고 늘 유연하게 이쪽도 생각하고 저쪽도 생각하는 부드러움, 그야말로 화해와 상생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너무 자기주의와 주장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옛날 우리가 어렵게 살던 시대보다 더 삭막해지고 인간성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진정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정말 우리가 선진화와 병행해서 정신적으로 따뜻함이 있는 그리고 부드러움이 좀 오가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도, 개인도, 사회도 늘 열린 자세로 자기반성과 자기갱신과 자기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cbs,
07.02.09>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5분에 방송된다.정리(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녹취작가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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