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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안익태, 정체성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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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욱독일 훔볼트대학 음악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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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기념재단(이사장 김형진)은  12월 5일(화)  오후 7시 30분 KBS 홀에서 작곡가 안익태(1906-1965)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를 갖는다고 발표했다. 또한 안익태기념재단은 이번 음악회를 즈음해 <안익태-그 영광과 슬픔>(김경래 지음)도 펴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연초에 뜨겁게 논란이 일었던 안익태의 친일문제에 관해 당초 안익태기념재단은 공개 학술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다고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관련 학술토론회는 없고 기념 음악회만 연다고 한다.

지난 주 19일 안익태 친일 동영상을  처음 발굴한  송병욱씨(40베를린 훔볼트대학 음악학 전공)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안익태의 친일 동영상을 공개하며 관련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송씨는 이 날 강연회에서 ‘안익태 영웅 만들기’의 원전격인 김경래씨의 책에 실린 주요 부분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  가령 안익태가  숭실학교에서 31운동에  가담했다는 근거가 없으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안익태가 손기정 등과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 흘렸다는 주장에 대해 손기정 옹은 그런 기억이 없다고 밝힌 점, 우연히 물에 빠진 슈트라우스의 손녀를 구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슈트라우스에게는 손녀가 없었다는 사실 등등. 끝으로  송씨는 유학생  신분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안익태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란 역부족이라면서 관련 학계와 정부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래>는 19일 송병욱씨가 강연회 장에서 배포한 관련 논문으로 송씨의  허락을 받아  전문을 싣는다.


 


 


 


 <아래>  


여러분은 다음의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고 계신지요.

“안익태는 31운동 주모자로서 숭실학교에서 퇴학당했다. 뉴욕 카네기 홀에서 있었다던 작곡 콩쿨 연주회에서 그는 악단 단원들의 비협조와 일본인들의 훼방으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손기정 등 육상선수들을 만나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슈트라우스를 만나게 된 것은 그가 슈트라우스의 손녀를 구해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환상곡의 애국가를 한국말로 부르게 했던 것은, 안익태의 애국심의 발로다.”

1930년, 40년대의 안익태에 관해 “그는 애국자였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아직 못 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의 안익태에 관해 “그는 (말도 못할) 친일파”라고  증언하는 분이 둘씩이나 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익태가 “세종대왕이 아악을  창작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던 <강천성악>이 실은, 일본 궁중음악의 대표인 <에텐라쿠>의 주제선율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환상곡에 시용되는 두 가지 가사 선율이 그의 <만주국>에 만주국과 일본의 영광을 찬미하는 가사를 위한 곡조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익태의 민족정체성에 관해 이처럼 밝혀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이하 첨부파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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