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여러분은 다음의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고 계신지요.
“안익태는 3 1운동 주모자로서 숭실학교에서 퇴학당했다. 뉴욕 카네기 홀에서 있었다던 작곡 콩쿨 연주회에서 그는 악단 단원들의 비협조와 일본인들의 훼방으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손기정 등 육상선수들을 만나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슈트라우스를 만나게 된 것은 그가 슈트라우스의 손녀를 구해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환상곡의 애국가를 한국말로 부르게 했던 것은, 안익태의 애국심의 발로다.”
1930년, 40년대의 안익태에 관해 “그는 애국자였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아직 못 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의 안익태에 관해 “그는 (말도 못할) 친일파”라고 증언하는 분이 둘씩이나 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익태가 “세종대왕이 아악을 창작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던 <강천성악>이 실은, 일본 궁중음악의 대표인 <에텐라쿠>의 주제선율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환상곡에 시용되는 두 가지 가사 선율이 그의 <만주국>에 만주국과 일본의 영광을 찬미하는 가사를 위한 곡조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익태의 민족정체성에 관해 이처럼 밝혀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이하 첨부파일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