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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학생독립운동 기념일-세계일보(0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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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학생독립운동 기념일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암울했던 일제 식민 시절, 청년 모임 흥사단을 이끌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이다. 독립을 향한 한국혼 살리기에 나선 선지 선열들은 줄을 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렇게 외쳤다. “힘쓸지어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람아. 희망에서 원력이 생기고 원력에서 열심이, 열심에서 사업이, 사업에서 국가가 생기나니 한국 사람아, 희망할지어다”라고.

한민족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잠든 민족혼을 깨우는 데는 외국인들도 함께했다. 그 중 ‘3·1 독립선언의 34인’이라고도 평가되는 영국 출신 스코필드 박사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세브란스 의전 교수로서 소아마비라는 불편을 무릅쓰고 3·1운동이 터지자, 일본의 탄압상을 사진으로 수없이 남겨 일제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서대문형무소의 유관순 열사를 방문해 위로하고, 총독을 찾아가 비인도성에 항의했다. 그러면서 스코필드는 “부정과 불의, 부패와 용감하게 싸우는 청년정신을 발휘하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조국독립을 향한 국내외 선각자들의 정신은 특히 청년 학생들의 피를 끓게 했음은 물론이다. 1929년 11월 3일 일요일 광주. 메이지 일왕의 생일인 ‘명치절’ 축하식 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학생독립운동은 그 상징이었다. 그 물결은 순식간에 전국과 만주·중국·일본 등지로 파급됐다. 3·1운동과 함께 독립운동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되는 이날을 기리기 위해 정부는 1953년 국가기념일인 ‘학생의 날’로 제정해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기념식을 가졌었다.

경남 마산을 시발로 한 4·19 혁명도 부정부패에 항거한 학생들의 의분의 표시였을 정도로, 학생정신이 면면히 이어져오다 유신시대에는 ‘기념일 간소화’ 명분에 밀려 사라지는 곡절도 겪었다. 1984년 부활됐으나 지방 행사로 축소됐다. 77돌인 올해부터는 정부 차원의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새롭게 승격돼 오늘 경향 각지에서 첫 행사가 열린다.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할 계기는 마련됐지만,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미래의 동량, 청년 학생들이 맘껏 꿈을 펼치도록 각 분야 선진화를 이루는 게 ‘학생의 날’ 정신일 것이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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