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60년만에 ‘미완의 과제’인 친일청산을 목표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반이 지났다. 그러나 친일청산에 대한 일각의 비난은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 하다.
친일진상규명위는 과거청산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를 알려내기 위해 지난 16일 ‘과거청산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폴란드와 독일, 오스트리아의 학자들이 초청돼 지금도 진행 중인 유럽의 과거청산에 대한 경험을 한국의 학자들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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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성기자 |
친일진상규명위는 과거청산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지난 16일 ‘과거청산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
강만길 친일진상규명위원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친일청산에 대한 사회 일각의 ‘우려(?)’를 두가지 입장으로 정리했다. 하나는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규명이 현재 한국사회발전에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모든 행위를 비판해야 한다는 논리다.
후자에는 유럽사회의 경험을 근거로 20세기 국가와 민족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인권유린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이들은 친일진상규명위의 활동이 20세기 사고였던 ‘민족지상주의’로 회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강 위원장은 전자의 경우 “과거로부터 이어져있는 기득권의 재생산 구조가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후자는 “우리의 20세기사가 가진 성격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한국사회가 20세기에 제국주의로 굴절된 역사를 경험했음에도 스스로 민족구성원 내부의 억압과 갈등구조를 밝혀내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며 “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협력자를 청산할 수 있었던 유럽의 경험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도 과거청산 저항 만만치 않아
독일은 흔히 과거청산의 모범 사례로 거론된다. 특히 일본과 함께 성공과 실패를 나타내는 대조적 사례로 꼽히곤 한다. 그런데 독일에서도 과거청산의 과정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노어베르트 프라이 예나대 현대사 교수는 “독일에서도 과거에 대해 반성하려는 의지가 항상 있어왔던 것은 아니며 특히 195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독일은 종전 직후엔 연합국에 의해 약 5천명의 범법자가 기소됐고 800명 이상이 사형판결을 받아 이들 중 3분의 1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연합국은 나치당 간부와 나치친위대 요원이면 자동적으로 체포했고 이렇게 수감된 인원이 20만명을 넘어섰다. 나치의 네트워크로 작동한 직업공무원에 대한 처벌 역시 강경해 상당한 수가 해고됐다.
그러나 1949년 아데나워 수상이 취임한 후 서독에서는 정치적으로 숙청된 대부분의 나치범죄자가 복권됐다. 나치사면법을 통해 다시 ‘합법적’으로 살 기회를 갖게 된 이들은 우익정당을 통해서 ‘과거를 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했다.
특히 1945년에 해임됐던 법관들이 거의 복직되면서 나치범죄자들을 기소하려는 움직임은 이들에 의해 수년 동안 방해를 받았다. 1950년 2천5백명에 이르던 서독사법당국의 기소 건수가 1954년 1백83건에 그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유대인학살 등 나치범죄를 공개적으로 정당화하는 극단적 인사들만이 기소됐던 것이다. 여기에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교회는 ‘복수’를 위한 승자(연합국)의 재판에 이의가 있다며 끔찍한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들조차 비호하고 나섰다.
그러나 ‘극복되지 않은 과거’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를 누를 순 없었다. 1955년엔 급진우익성향의 출판인을 교육 및 예술부장관으로 임명한 데 대한 학생과 교수의 항의시위가 일어났고 점차 나치과거와 관련된 인적, 제도적 연속성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다.
노어베르트 프라이 교수는 “동독 정권이 서독에 배포한 ‘아데나워 정권에서 일하는 히틀러의 살인재판관들’이라는 제하의 수만개 인쇄물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독에서는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는 없다’는 최종결론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이후 현대사가들과 미디어에 의해 나치범죄의 진상이 일반 대중에게 낱낱이 공개됐다. 독일은 지금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자각을 통해 ‘사회적’으로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폴란드 역시 과거청산은 현재진행형이다. 몇 달전 한 폴란드시민은 과거 ‘독일지역 외 독일민족’이란 신분을 받기 위해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유대인 희생자를 살해하는 데 자발적으로 참여한 죄로 기소돼 8년형을 받았다. 폴란드 법원은 종전 후 나치 범죄 혐의가 입증된 6천명의 독일인, 오스트리아인 및 그 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독일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레온 키에레스 브라츠와프대학 법대 교수는 “현재도 폴란드에서는 나치범죄자와 1989년까지 공산주의 시기 자행된 범죄에 대해 300건 이상의 조사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김동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은 “폴란드는 외세에 의한 침략과 분할 등에서 한국과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나치에 의한 전쟁범죄는 일제의 조선인학살 및 강제동원과 유사하고 공산주의 하에서 저질러진 학살과 인권유린에 대한 ‘정화’ 작업은 한국의 군사정권 하에서 저질러진 과거청산작업에 대응된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경험도 한국의 과거청산에 큰 시사점을 준다. 오스트리아는 탈나치화 작업의 일환으로 공무원조직에 대대적인 메스를 들이댔다. 마아틴 폴라섹 그라츠대 법대 교수는 공무원조직이 나치청산의 제1청산대상인 된 이유에 대해 “(나치의) 통치가 작동되는 것은 공직자들에 의해 보증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공직자 및 의사, 법률가 등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직업과 사회적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직업은 식민지조선의 친일파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나치협력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이들에 대해 대대적인 직업금지와 해고조치를 내리고 속죄부담금을 부과했다. 특히 사법부, 초중고 및 대학교, 언론?문화영역, 경제계의 지도적지위 등에 있는 나치협력자는 대부분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후 잠재적 선거권자들을 얻으려는 오스트리아 의회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경범’이란 명목으로 등록된 나치협력자의 90% 이상이 사면됐다. 현재 오스트리아에서는 과거청산을 ‘부분적 성공’ 내지 ‘실패’로 평가하고 있다.
독일과 폴란드, 오스트리아의 과거청산 과정은 어느 나라에서든 청산돼야 하는 이들의 만만치 않은 저항과 정치적 쟁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들 나라 역시 진정한 의미의 ‘청산’, ‘극복’은 오늘날까지도 달성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강만길 위원장은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사회의 친일청산은 개인에 대한 처벌이 될 순 없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그들이 자신을 정당화했던 논리를 밝혀냄으로써 역사적 청산을 통해 앞으로 그와 같은 행위를 경계하는데 현재적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시민의신문, 06.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