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난다]일제수탈의 흔적지 군산

특별한 볼거리도 명소도 없는데, 한번쯤 군산에 가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이 그대로 멎은 듯한 낡은 거리, 곳곳에 웅크린 적산가옥, 시내를 에워싼 폐철….
군산은 일제 강점기 호남의 쌀을 일본으로 내보내는 항구로 개발돼 반짝 영화(榮華)를 누렸다. 올해로 개항 107년. 군산의 영화는 곧 수탈의 증거였으되, 흔적들은 정비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았다. 그 퇴락함이 매력이 되는 모양이다. 지난 한해 군산에서 촬영한 영화만 16편. 사진 동호회들의 ‘출사’ 리스트 첫머리에 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의 흔적은 해망동 일대에 남아 있다. 개항 100주년을 맞아 만든 ‘백년광장’ 옆의 낡은 건물은 옛 조선은행이다. 군산을 무대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주인공의 한 사람인 고태수의 직장으로 나왔다. 맞은편에는 쌀을 주식처럼 사고 팔던 ‘미두장’이 있었다.
조선은행 건물은 참담하다. 은행이었다가, 카바레였다가, 노래방이었다가 지금은 버려졌다. 건물 내부는 철거공사를 하다만 것처럼 자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외부에는 ‘뉴욕뉴욕’ 간판이 깨어진 채 걸려 있다. 한쪽 벽은 그래피티가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 같은 건물들을 지나면 붉은 벽돌로 지은 옛 군산조계 건물이 나온다.
해망동 주변엔 일본인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이 아직도 많다. 금광동 동국사(등록문화재 64호)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이다. 일본 신사처럼 지붕이 높고,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다. 단청을 쓰지 않고, 불단도 높다. 미로 같은 내부 구조, 뒤뜰의 대나무숲이 영락없는 일본 절이다. 현재는 조계종에서 관리한다. 총무 종걸스님은 “일본절이 전국에 800여개가 있었지만, 해방 후 모두 없어지고 이 절 하나 남았다”며 “일제 잔재 청산은 필요하지만 역사교육을 위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내문에는 일본 조동종 우치다 대사가 1913년 금광사로 창건했다고 설명돼 있지만, 종걸스님에 따르면 ‘1909년’ ‘금강사’가 맞다고 한다.
동국사 근처 신흥동 ‘히로쓰 가옥’은 군산 포목상이던 히로쓰가 지은 전형적인 일식 주택이다. 비스듬히 붙은 건물 2채와 석등이 놓인 일본식 정원이 조성돼 있다. 건물 내부는 금세라도 허물어질듯 낡았다.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을 여기서 촬영했다. 적산가옥이 많은 이 일대에서도 가장 외관 보존상태가 좋은 집이다. 지난해 6월 인근 해망굴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내부를 관람하려면 ‘부르는 게 값’인 입장료를 내야 한다.
해망굴은 1926년 시내와 내항을 연결하기 위해 뚫은 131m짜리 터널이다. 터널 앞 서초초등학교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터널을 뚫을 당시엔 이 주변이 신사, 신사 광장, 의료원 등이 자리잡은 중심지였다.

개정동의 ‘이영춘 가옥’은 일제시대 전국 최대 농장주였던 구마모토가 1920년대에 지은 개인 주택이다. 건축비가 조선총독부 관저만큼 들었다고 할 정도로 고급 주택이었다. 유럽식 응접실, 일식 복도, 한식 온돌이 결합된 복잡한 형태의 주택. 군산 적산가옥 중 보기 드물게 정비가 잘 돼 있다. 해방 이후엔 한국 의학박사 1호인 이영춘 박사가 사용했다. 개정간호대학 내에 있다.
군산의 ‘일제 유적’을 따라 걷다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수탈의 흔적마다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다. 이제와서 부수지도, 그렇다고 보존할 수도 없다. 놀이공원 세트장 같은 건물들은 그 자체로 ‘역사’일까. 이영춘 가옥과 해망굴을 제외하면 동네 사람들도 위치를 잘 모른다. 미리 확인하고 갈 것. 군산시청 (063)450-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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