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들의 환영(?) 속에 진행된 촛불시위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을 다녀와서(1)

올해 8.15 광복절의 가장 큰 화제꺼리는 단연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이었다. 한중일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양심 세력들 대부분이 강하게 반발했으며 심지어는 보수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는 일본 우파 진영 일각에서도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라는 입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의 도발적인 야스쿠니 참배는 멈춰지지 않았다.
과연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갖는 본질적 문제는 무엇일까? 일본의 우익집단이 주장하는 대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반대 입장은 일본의 자주권에 대한 침해이며 종교적 권리를 침해하는 일일까? 일본 사회에서 야스쿠니 신사가 갖고 있는 의미를 따져보면 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느끼게 된다. 아니, 야스쿠니 신사에 한번이라도 방문해본다면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없다. 단언컨대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 시설이라 할 수 없으며 이 공간이 갖는 문제는 단지 일본‘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야스쿠니는 음습했던 지난 시대의 악령을 봉인해놓은 장소이며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은 이 악령을 활용하여 대중들을 조종하려한다. 그 악령의 정체는 바로 ‘일본 대국화의 꿈’.
필자는 이번 8.15 광복절을 전후해 진행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평화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이미 언론을 통해 얼마간 알려졌지만 야스쿠니반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한국·대만·일본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저지와 더불어 태평양전쟁 시기에 강제동원되어 희생된 후,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전쟁 귀신’으로 묶여있는 한국, 대만의 4만9천여 무단합사 피해자들의 합사 취하를 위해 만들어진 국제연대단체다. 공동행동은 이번 8.15를 맞아 도쿄의 메이지 공원에서의 촛불문화제를 비롯한 다양한 반대활동을 준비했으며 이를 위해 배와 비행기를 통해 약 150여 명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유족, 시민운동가, 종교인, 예술가, 일반시민과 학생 등이 일본으로 떠났다.
필자를 포함하여 비행기 편을 통해 떠난 후발대는 8월 13일(일) 오후 나리타공항을 통해 일본에 들어갔다. 당일 오후에는 공동행동의 첫 번째 공식행사로 피해자 유족들의 증언 및 규탄대회가 오후 3시부터 준비되었는데 참가자들을 이동시키기 위한 버스가 공항에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미처 숙소에 짐을 풀지도 못한 채 행사가 진행될 도쿄 지요다구 일본교육회관으로 향해야 했다. 버스 안에서는 아직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도 당일 행사를 포함한 이번 공동행동에 대한 의견들과 일본 정계의 분위기 등에 대한 대화들이 이따금씩 오갔다.

공동행동 원정시위대에 접근하려다 저지당하는 일본 우익 세력. ⓒ 평화통신사 참가자
모임
3시 무렵 버스는 행사가 진행될 교육회관 근처에 다다랐는데 예상치 못한 환영행렬(?)이 공동행동 참가자들을 맞이해주었다. 다름 아니라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동원한 차량들이 확성기를 울리며 공동행동 참가자들이 탄 버스를 가로막기 시작한 것이다. 우익단체들이 동원한 차량들은 검은색 벤으로 ‘욱일승천기’와 ‘특수공격대’ 등의 다분히 호전적인 문구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 역시 공격적인 느낌을 줬다. 일본어를 거의 못하는 관계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일본이 너희 나라냐?”, ”조선으로 돌아가라” 등의 내용이라고 했다. 우익단체들의 요란법석 속에서 문득 이곳이 어딘가에 대한 자각이 새로워졌다.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우익단체들의 차량을 저지하면서 약 30분 늦게 행사가 진행될 교육회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행사가 준비된 교육회관 3층 강당은 한국·대만·일본을 중심으로 한 각국 참가자들로 인해 빼곡히 차 있었다. 1부 순서로는 한국과 대만의 유족의 증언과 다카하시 테츠야 도쿄대 교수의 강연이 진행되었으며 2부 순서로는 대만 원주민들의 민속음악과 한국 노래패 ‘나팔꽃’과 ‘굴렁쇠 어린이’들의 노래, 재일교포 블루스록 뮤지션인 박보 씨의 노래 공연으로 꾸며졌다.
교육회관에서의 실내행사가 끝난 뒤 저녁 7시부터는 도심 촛불시위가 진행되었다. 이날 촛불시위는 사전에 신고가 된 것이었으나 우익단체들과의 충동을 우려한 일본경찰은 출발에 앞서 공동행동 지도부와 다소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촛불시위는 강행되었는데 각국의 공동대표들이 선두에서 현수막을 들고 앞장섰고 일본, 대만, 한국 참가자의 순서로 시위행렬이 짜여졌다. 한국 참가자들은 촛불과 야스쿠니 반대 및 아시아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은 만장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행렬의 중간중간 돌출적으로 일본 우익들이 나타나 시위대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그럴수록 시위대의 구호소리는 더욱 커졌다. 일본경찰들은 우익과 시위대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봉쇄했다. 약 1시간 정도 진행된 시위는 힌카공원에서의 정리 집회로 마무리되었고 필자를 포함한 한국 측 참가자들은 이케부쿠로에 위치한 숙소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다.
– 민예총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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