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칼럼]”영혼”이 깃들지 않은 참여정부
며칠 전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각종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노무현 정부는 과거지향적 정부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과거사정리를 위한 위원회 수는 11개인 데 비해 미래대비와 관련된 위원회는 3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산부분을 따져도 2003년 이후 4년간 과거정리를 위한 위원회는 총 2518억원을 사용했지만, 미래대비위원회는 143억원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평가에 대해 국정홍보처는 과연 어떤 기발한 답변과 반론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民草들 “못살겠다” 아우성인데…
우리는 이런 수치 이전에도 노 대통령의 언행 속에서 현재·미래보다 과거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주요 국가기념식마다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거나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등의 과거지향형 발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성격이 운명’이라고 갈파한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에 유념해보면, 과거지향형은 진보를 표방해온 노 정부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 진보란 과거보다 미래를 향해 나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아니겠는가. ‘과거지향형 진보’라면 ‘동그란 삼각형’처럼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은 노 정권이 ‘미래지향형 정권’으로 바뀌었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미래의 원대한 계획들을 쏟아내놓고 있다. 얼마 전에는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의 완공을 목표로 용산공원기지화 선포식을 성대하게 여는가 하면, 최근에는 선진복지 한국의 청사진이 담긴 ‘비전 2030’을 내놓았다. 특히 비전 2030을 보면 노 정부가 하도 과거만 들여다본다고 비난을 받으니까 그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오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미래를 위한 로드맵을 짤 수 있는 능력도 있다는 것을 이참에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과거지향이건 미래지향이건 말장난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현재다. 또 운명이 결정되는 것도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 정부가 ‘시간과의 장난’을 벌이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든다. 과거지향형이 우려되는 것은 과거를 마치 현재인 양 산다는 데 있다. 하지만 미래를 설계한답시고 현재를 건너뛰는 발상도 문제다.
국정운영의 진정성은 과거든 미래든 그 ‘지향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솔(Soul)’, 즉 ‘영혼’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프랑스의 문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보면 영혼의 성격이 인상깊게 드러난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한 송이의 장미를 남겨두고 지구로 온다. 그리고는 지구에서 발견한 5000송이의 장미꽃을 향해 말한다.
장밋빛 청사진보다 현실이 급해
“너희들은 아름답지만, 그저 피어 있을 뿐이야. 너희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은 없어. 나의 한 송이 장미꽃도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본다면 너희들과 똑같은 그저 그런 꽃이라고 생각할는지 몰라. 하지만 그 한 송이의 꽃이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 소중해.” 어린 왕자에게 그 한 송이 장미꽃이 소중한 이유는 그 안에 자신의 영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영혼은 어디 있는가. 영혼이 있다면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를 말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 사방에서 아우성이 진동한다. 경제력이 한 단계 떨어져 브라질에 추월당했다거나 민생이 좋지 않다는 말, ‘고독한 자주’와 ‘외로운 주권’만을 추구하면 한국은 ‘외로운 국가’가 된다는 소리 말이다. 이런 말들은 귓전으로 흘려버린 채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바라보면 뭐하나. 정부가 잃어버린 신뢰를 그나마 회복하려면 ‘지향성’보다 영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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