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이봉창, 윤봉길 선생의 경우 후손이 없다. 봉오동전투로 유명한 홍범도 장군의 경우는 후손이 러시아에 있다. 특히 홍범도 장군의 경우 현지에서 사망해 국적이 러시아로 돼있는 상황이다. 김원웅 의원은 “이런 분들은 영원히 국적이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후손이 없는 순국선열은 몇 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국가에서 훈장을 줬지만 이를 찾아가지 못해 보훈처가 보관하고 있는 것만 수천 개라는 것이다. 김 의원은 “자동적으로 이들의 국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법률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침략국의 법체계 따르는 이상한 나라
김 의원은 특히 국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청산되지 않은 법조계’를 들었다. “법과 제도는 그 나라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과 그에 따른 인식이 반영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법조계는 침략국인 미·일의 법체계를 그대로 수용했을 뿐 한걸음도 못 나갔다.”
김원웅 의원은 “우리 법조계가 그들의 논리에 얽매여있는 모습은 극복해야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권상실에 분단의 수난까지 겪은 한국으로선 그런 고뇌가 법률이란 구체적 제도로 나타났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처럼 다른 나라를 침략했던 나라와 한국은 다르다는 얘기다.
매국의 대가로 축적한 재산은 환수해야 하고 친일진상을 규명해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하면 으레 나오는 반박이 ‘왜 소급입법을 하냐’는 것이다. 처벌도 아니고 최소한 진상규명이라도 해서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 교훈으로 삼자고 물러서도 ‘왜 과거에 매달리느냐’는 반박이 날아온다. 그러면서 일본의 예를 들곤 한다.
김 의원은 “일본은 전범들이 전혀 처벌되지 않고 그들이 지금까지 주류인 나라”라고 일갈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법률사조가 반인류, 반민족 범죄에 대해서는 시효를 두지 않고 끝까지 처벌하는 것”이라며 “이스라엘과 유럽, 심지어 독일까지 나치청산을 위해 모두 소급입법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나치전범이 발견되면 반드시 법정에 세우고 있다.
김 의원은 “호적법만 해도 일제가 1912년 제정한 조선민사령을 충실히 카피해 만들어놓고 그걸 집행하는 게 우리 법조계의 현실”이라며 “우리 법조계가 일본의 법조계에 예속돼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친일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게 법조계란 생각이 든다”면서 “그런데 정작 법조계는 자신들이 그런 늪지대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법무부와 검찰 등 법조계의 관변적 위치에 있는 이들이 특히 더 심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김 의원 측은 국적법을 바꾸느냐, 독립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에 이 조항을 신설하느냐 하는 법리적 검토를 추가로 하고 있다. 김 의원은 “금년 정기국회 때는 반드시 이 법을 관철시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국치 100년, 그전에 해야 할 일
국치 100년이 되는 2010년을 앞두고 김 의원에게 그전까지 한국사회가 또는 국회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물어보았다. 김 의원은 “일제의 수탈사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를 기점으로 일제수탈사를 대집성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시작해도 4년밖에 안 남았다. 시간이 촉박하다.”
김 의원은 “시민사회단체와 학계가 앞장서고 정부차원에서도 연구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일본의 조선 수탈사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예산배정 등 재정적 지원을 위해 자신과 인식을 같이 하는 의원들을 묶어내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그는 또 “유럽의 나치옹호처벌법과 같은 법을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나치에 대해 옹호주장을 펴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 있다. 이처럼 일제의 조선침략과 지배를 적극 옹호하고 이른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망언’에 대해 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우익이 ‘자학사관’이란 표현을 쓰며 조선침략의 향수를 갖고 문제를 제기하는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들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해 일제가 조선의 근대화를 이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제지할 수 있는 법적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만원씨와 ‘친일파를 위한 변명’의 저자 김완섭씨는 ‘친일망언’으로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대표적 인물들. 이미 지난해 8월 ‘일제침략행위 왜곡 및 옹호방지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바 있다. 김원웅 의원은 국치 100년이 되기 전 이같은 처벌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북관대첩비, 원 자리로 돌아가다
한편 김 의원은 지난 삼일절 북관대첩비 인도를 위해 북을 다녀왔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세운 승전비. 그러나 오백년도 채 되지 않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북관대첩비는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김 의원은 “침략국에 의해 승전비를 뺏겼다는 게 더 아이러니컬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북관대첩비는 지난해 되찾아오기 전까지 일제 전범들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의 한구석에 초라하게 방치돼있었다. 김 의원은 “지난 시간 북관대첩비가 일본으로부터 겪은 굴욕과 수모는 민족의 수난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일 개성에 있는 고려 때의 성균관에서는 ‘북관대첩비 인도인수식’이 남북공동행사로 열렸다. 북은 북관대첩비가 원래 세워져있던 함경도 길주에 이를 복원할 예정이다. 김 의원은 “북측이 복원한 다음 결과를 남측에 알리겠다고 했고 남측시민들이 참관하는 것도 허용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북관대첩비를 되찾은 것은 단순히 돌덩어리를 되찾은 게 아니라 지난 100년간의 민족적 수모를 씻어내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또 “철조망이 쳐진 휴전선을 넘어 원 소재지인 함경도 길주에 복원된다는 것은 분단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북관대첩비에는 이미 분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민초들의 힘 보여준 북관대첩비
김원웅 의원은 또 북관대첩비가 “민초”라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왜의 가등청정이 2만2천의 군대를 이끌고 함흥을 공격하자 관군은 거의 싸움도 안 하고 도망갔다. 그러나 정문부장군을 중심으로 의병이 모여 군대를 만들었고 8번을 싸워 8번을 모두 이겼다. 북관대첩비에 보면 오합지졸을 모았다고 돼있다. 하지만 이들은 전투를 통해 함경도를 수복했다. 북관대첩비에 보면 오합지졸을 모았다고 돼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의병이라고 해서 공을 잘 인정하지 않았다. 북관대첩비도 1709년 함경도 주민들이 돈을 모아 세웠다.
북관대첩비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해전에는 이순신이, 육전에는 권률을 얘기하는데 이들은 관군이고 말과 식량과 무기를 다 줬지만 자신들은 그런 것 없이 만든 군대로 이처럼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옛날 임진란에 힘써 싸워 적을 깨뜨려 크게 물리친 이로 해전에서는 이순신이 육전에서는 권률이 있어, 역사가가 그것을 기록하였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칭송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지위가 있어 말과 부역과 군졸들을 낼수 있음에 힘입은 것이다. 고단하고 미약한데서 일어나 도망하여 숨은 백성들을 분발시켜 충의로써 서로 격려하여 마침내 오합지졸들을 써서 완전한 승첩을 거두어 한쪽을 수복함과 같은 이는 관북의 군사가 제일이다” -북관대첩비 기록 중.
북관대첩비는 민간채널을 통해 가져오는 것이 결정됐다. 사실상 정부는 마지막에 거든 것 밖에 없다. 김원웅 의원은 “전쟁에 이기고 비를 세우고 뺏긴 것을 되찾아오는 것도 전부 민초들이 했다”면서 북관대첩비에 의미를 부여했다.
남북, 조선왕조실록 환수도 공조한다
그는 최근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의 자문위원장도 맡게 됐다. 오대산 사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은 일제강점기 도쿄대로 반출돼 현재 도쿄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조선왕조실록 환수운동에는 불교계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조선왕조는 오대산 사고의 관리책임자로 월정사 주지를 임명했었다.
김 의원은 조계종 측에서 북의 조선불교대연맹에 ‘남북이 조선왕조실록에 공조하자’는 문서를 전달해달라고 요청해, 지난 1일 조선불교대연맹 부위원장 심상진 대선사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북측은 “적극적으로 하자”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의신문, 060.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