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의도
지난해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 소송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사회적 지탄 속에서도 친일파 후손들의 시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국적도 없이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광복 60년이 지난 오늘, 독립유공자의 삶은 충격적이다.
멀리 중국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온 노부부는 심각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결국 다시 중국으로 떠났는가 하면 중국 한 정신병원에서 만난 유모씨는 한국에 가고 싶다며 취재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다시 조국을 떠나는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들,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들을 예우하는 법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이 그와 정반대인 이유는 무엇일까?
<추적60분> 제작진은 3.1절을 맞아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모여 사는 중국 중경을 찾아가 그들이 조국을 다시 등지고 떠나올 수 밖 에 없었던 이유를 들어보고, 이들에 대한 예우와 보상에 미온적인 관계당국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한다.
주요 내용
“한국정부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이에요”
-어느 독립유공자 후손의 한탄
김좌진 장군이 조직한 신민부에서 무장투쟁을 감행한 실천적 지식인 이 달(李 達)선생의 장남인 이중지씨. 중국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8개월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수소문하고 다니다 사상범으로 몰려 17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9살 때, 남편의 독립운동 경력 때문에 정신개조를 받다 자살했다. 고아원에서 자란 이중지씨는 간호사인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그 행복도 잠시. 이 달 선생의 그늘은 아들들에게도 이어졌다. 출신성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동네사람들의 멸시와 폭행을 감내해야 했던 것. 이중지 일가는 지난 2000년과 2002년 사이,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의 나라,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5년 만에 이중지 부부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고, 두 아들은 한국에서 노점을 하면서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그동안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추적, 이중지일가의 빼앗긴 유족연금
이중지씨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월 120만원의 유족연금을 탔다. 그 연금으로 두 아들 내외와 두 딸, 그리고 손자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것은 15년 간의 감옥생활 때문에 늘 배를 곯아야 했던 자식들에게 가장으로서 처음 해 준 선물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연금이 끊겼고 연금에 의존했던 자식들의 생계도 막막해졌다. 수권자가 누나로 변경된 것. 1인 연금수권체계 하에서 선순위는 연장자가 된다. 단, 출가한 딸은 최하위 순위다.
보훈처에 확인한 결과 이중지씨 누나는 혼자 호주로 등록돼 있었다. 중국 상류층에 속하는 누나와 생활이 어려운 이중지씨 사이는 이렇게 골이 더 깊어지고 있었다. 구멍 뚫린 수권자 선정방식을 고발한다.
설문조사, 중국에서 온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힘겨운 한국 정착기
취재진은 중국에서 온 독립유공자 후손 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들은 대부분 월수입 50만원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관심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특히, 국적취득 전, 길게는 2년 동안 한국에서 취업을 할 수 없었던 것을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재작년 귀국한 백선호씨는 아직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 취업도 하지 못하고 있는 백선호씨는 아직도 친척집과 친구집을 전전하고 있다. 어쩌다 불법으로 막노동을 하러 가도 혹시 발각되지나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크다는 백선호씨는 빨리 국적을 취득해 떳떳하게 일하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조국을 찾아 온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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