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했고, 이 과정에서 최 교수를 빨갱이로 몰아 사건을 조작했다.
이는 박정희 군부 독재가 조작한 공작 정치의 전형이었다.
이번 판결에는 4년 전인 2002년 5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를 인정한 조사 결과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2002년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중심에는 위원장 한상범이 있었다.
이 책에서 한상범은 한국의 군사정권 3대에 걸친 대통령이 모두 ‘정보장교’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처럼 독재 권력이 자행한 정보 공작의 범죄상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승만 시대에 친일파 주도의 정보 공작에 의한 지배는 신군부로까지 이어져서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망령으로 떠돌고 있다. …… 독재 권력의 가장 추악한 첫 번째 병폐는 정보기관이 정치 각본을 쓰고 그 연출과 감독까지 도맡아 한다는 점이다. (70~71쪽)
학자가 흥분한다고? ―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결연한 싸움의 기록
지은이 한상범은 학문적인 입장과 삶의 실천이 일치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특히나 헌법학자로서 그는 권력자들의 도구로 쓰이는 법과 법관을 혐오하며 그것들과 평생을 다해 싸워 온 국내 법학계의 ‘반골’로 통한다.
그는 일제가 중국 대륙을 침략한 전쟁 무렵에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60년 조선대 전임강사를 거쳐 1961년부터 동국대에서 42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1960년대부터 3선 개헌 반대, 신군부 반대, 국민직선제 개헌, 박종철 고문치사 진상규명 등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비롯해 일제 잔재 청산에 앞장서 왔다. 특히 2002년 4월부터 2004년 12월까지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중앙정보부에 의한 최종길 교수 의문사 진상규명, 한총련 김준배 학생의 의문사 인정, 박정희 정권 시절 교도소 내 사상전향 공작 과정에서 고문으로 숨진 비전향 장기수 손윤규 최석기 박융서 씨 등에 대한 의문사 인정 등을 이끌었다. 또한 그는 한글운동가이다. 법률 용어에 묻어 있는 일제 잔재를 몰아내기 위해서 노력해 온 그는 한글학회와 공동으로 오랜 시간 헌법 전문을 한글로 다듬어 「한글로 풀어쓴 헌법」을 내놓기도 했다.
한상범의 비판은 단호하고 날카롭다. 모호한 수사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포장하지 않는다. 자신을 공격하는 ‘약삭빠른 처신으로 세상의 탁류 속을 헤엄쳐 오는 이들’에게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학자가 흥분한다고? 불의에 대해 분개하고 정의를 주장하여 소리치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런 사람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는 학자인가? (6쪽)
박정희 찬양을 멈추어라!
이 책은 평생을 다해 일제와 독재 잔재의 청산을 위해 싸워 온 그의 최근 기록이다. 친일파와 그 아류들, 박정희 독재와 그것이 남긴 찌꺼기를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고자 고투한 지은이의 정신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1부에서는 한국 친일파의 계보를 추적하여 정신 구조를 해부한다. 그리고 일본 극우와 손을 잡고 그들을 대변하는 한국 ‘신판 친일파’의 정체를 밝힌다.
2부에서는 친일과 독재의 잔재가 남긴 야만과 폭압을 고발한다. 특히 반드시 청산해야 할 독재의 잔재로 정보 공작의 역사와 그것이 남긴 폐해를 분석하고,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매카시즘의 생트집 수법을 조목조목 따진다. 그리고 과거 청산과 개혁은 남이 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절박한 문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3부에서는 박정희를 찬양하는 박정희 신도들, 특히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광증을 비판한다.
4부에서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법의 세계를 염원하며 개혁의 과제를 말한다. 그리고 과거청산범국민위가 2005년에 발간한『과거청산운동 백서』의 글을 부록으로 실었다. 일제 잔재의 뿌리가 가장 깊게 박혀 있는 법조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사법개혁의 시도와 진정한 과거청산을 위한 근본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친일파와 그 아류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고자 하는 법학자의 외침이다.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와 민족 반역자들에게 고하는 준엄한 경고이다. 오늘날 일본의 극우 세력과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는 한국의 극우 보수 세력에 맞선 결연한 싸움의 기록이다. 친일 군사독재의 정치 세뇌가 남긴 잔재를 역사의 박물관에 보내려는 선언이다. 정의가 유린되지 않는 사법제도를 갈망하는 법학자의 제언이다. 그리고 과거 청산의 의의와 과제를 함께 고민하자는 동지의 강직한 바람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망령들에게 고함
역사는 과거에 대한 정당한 기억이어야 한다. 한국의 현대사는 이 명제에서 얼마만큼이나 당당한가? 일본 제국주의와 군부 독재에 기생하여 이웃과 민족을 팔아먹은 자들과 그들의 후예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아니, 역사를 위조하는 반역자의 후손들은 오히려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군림하며 큰소리를 쳐왔다. 그들의 정신과 태도를 비호하며 지원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보이지 않으나 더 강력히 ‘존재하고 있는’ 박정희와 친일파의 유령들이다.
나는 불의에 분노하는 데서 개혁은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나보고 학자이고 교수인 사람이 너무 흥분하고 점잖지 못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 그런 사람에게 나는 “당신은 폭정에 짓밟힌 청년 학생을 위해 가슴을 쥐어뜯고 울어본 일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폭정에 대해 항의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209쪽)
진실은 밝혀야 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 한다. 그 진통을 겪지 않고서는 역사에 대한 정당한 기억을 성립시킬 수 없다. 그것의 과정이 아무리 지난할지라도 친일파와 극우반공주의자들이 왜곡한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보는 것은, 앞으로의 날들을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길을 에둘러 가서는 안 된다. 반세기 이상을 떠돌고 있는 친일파와 박정희의 유령들에 맞서는 칼날이 무디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불의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감금, 고문, 학살당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개혁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실감해야 한다. 왜냐하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는 유령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친일과 독재 잔재를 청산하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오롯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개혁의 시작이다. 지은이의 외침이 독자들에게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게 하는 울림이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