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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의 판도라 상자 연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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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사회와연대’ 회장


 


헤밍웨이의 명작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스페인전쟁 종군기자의 경험을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들이다. 영화로 감동을 준 이들 작품 이상으로 스페인전쟁은 20세기 최악의 비극이었다. 민주선거로 수립된 합법정부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는 유혈의 투쟁과정이 스페인전쟁이었다. 제2공화정의 토지개혁과 정교분리 등 개혁에 대한 반대세력인 대지주와 자본가, 교회라는 구체제 3총사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장군의 쿠데타는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을 시산혈하(屍山血河)로 만들며 민주주의를 살해했다. 나치독일과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프랑코를 지원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패배를 기록한 ‘역사의 반전’이 전쟁의 내막이었다.


과거 묻지 않은 민주화 30년
민주진영인 영국과 프랑스가 공화정지원을 거부한 것이 패인이었다. 스탈린의 소련이 군사적 지원을 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지원병으로 국제여단을 창설해 프랑코와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여기서 승기를 간파한 나치 독일이 1940년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니 스페인전쟁은 대전의 전주곡이었다. 프랑코는 세계대전에 불참함으로써 히틀러와 무쏘리니의 비참한 패배를 면했고 1975년11월20일 죽을 때까지 독재자로 스페인을 지배했다.
프랑코독재는 그의 죽음과 함께 종식되었다. 공화정 대신 후안 카를로스국왕의 입헌군주제가 수립돼 민주화에 성공했다. 민주이행은 스페인전쟁의 상처와 프랑코독재를 열지 않고 덮는다는 조건으로 조용히 이루어졌다. 1970년대 말 의회가 프랑코독재를 규탄하며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자 1981년 군대가 의회를 볼모로 잡아 프랑코시대의 복귀를 선언했다. 카를로스 국왕의 개입으로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이후 아무도 전쟁의 상처를 들추어내려 하지 않았다. 프랑코독재 때문에 왕따 당했던 스페인은 1982년 나토에, 1986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해 민주주의의 정회원으로 승격되었다.
프랑코 사망 30주기를 맞은 11월20일 스페인은 공식행사를 하지 않았다. 친 프랑코세력과 민주세력이 동시에 마드리드와 대도시에서 시위를 벌였으나 충돌은 없었다. 이제 스페인전쟁의 유혈적 상처를 계속 덮을 수 없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스페인전쟁 전범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나치를 심판한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과 일본군국주의를 응징한 도쿄재판, 군사독재를 재판한 아르헨티나의 경우와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스페인을 비난해 왔다. 특히 1982~1996년 좌파정부를 이끈 펠리페 곤잘레스 전 총리는 ‘재임기간에 프랑코를 논의하지 않은 것에 책임을 느끼지만 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프랑코 군에 총살당한 사파테로 총리의 등장이 과거사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좌파정부 총리답게 스페인전쟁의 진실규명을 공약했다.
전쟁전문가 허그 토마 조사에 따르면 스페인 전쟁 중 전사하거나 공중폭격 등으로 희생된 스페인인은 41만명에 이른다. 프랑코 집권 후 5년간 19만2684명이 처형되었고 40만 포로들은 강제노동에 처해졌다. 특히 이들은 프랑코 기념탑을 짓는데 동원됐다. 프랑스에 망명한 공화정 관료와 군인 시민은 55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프랑코는 숙청위원회를 설치해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유민주주의자, 노조가입자, 교원과 공화정 지지자들을 처형해 공동무덤에 버렸다는 것이다. 공화정 지지자는 살인범과 웃으며 사는 치욕을 당했지만 프랑코 지지자는 큰 보상을 받았고 지금도 연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청산, 희생자의 진혼곡
사파테로 총리는 2004년9월 최초로 스페인전쟁 희생자의 진실규명을 위한 정부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나섰다. 스페인의 여론은 65.9%가 진영에 따라 희생자들이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입장을 밝혔고, 72.9%는 늦었지만 희생자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것이다. 일간 엘문도의 여론조사는 41.3%가 ‘사파테로의 정부가 과거의 상처를 열어야 한다’고 했으나 25.5%는 ‘화해’를 요구했다. 지난 30년간 스페인 우파는 ‘과거보다 미래를’ 또는 ‘청산보다는 화해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과거청산 없는 민주이행’을 요구해왔다. 이는 지금 한국에 난무하는 구호와 같다. 그러나 결국 쿠데타와 독재를 위한 집단처형, 투옥과 고문학살 등 반인도적 범죄를 덮어버리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성립될 수 없으며 의미도 없다.
그래서 과거를 은폐하는 민주화는 없으며 허구임을 깨달았기에 30년 만에 과거청산에 나선 것이다. 너무나 오래 기다린 스페인전쟁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鎭魂曲)이다. <내일신문, 05.11.25>

– 연구소 지도위원내일신문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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