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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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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2005년 8월 16일 / 제 646회


▣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땅찾기
 PD수첩에서는 해방 60주년이 되는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땅찾기 문제를 취재한다. 그동안 일사천리로 진행돼온 이완용,송병준 등 대표적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는 관심을 받아온 반면,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땅찾기는 외면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은 만주,시베리아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국내에서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국권회복운동을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재산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던 것은 불문가지다. 이러한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일제는 토지조사령을 발동해, 독립운동가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조선총독부로 이 땅을 편입시킨다.
또다른 한편에선 일본인이나 일제의 앞잡이들이 독립운동가들의 땅을 가로채기도 한다.
반면, 여자와 어린 아이만 남아 있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그동안 먹고살기에도 급급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독립운동가 조상들이 남긴 땅등을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성장해 조상들이 남긴 땅을 찾으려고 전국 방방곡곡을 뛰어다니지만, 독립운동을 하느라 자료를 남기지 않고, 또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난 탓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해방60년이 다 되서야 땅찾기에 나서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어렵고도 힘든 싸움을 취재했다.


▣ 독립운동가 후손 정진한씨의 60여년에 걸친 땅찾기
 1920년 항일독립운동 조직인 대한독립구국단 단장을 맡았던 독립운동가  정인호의 후손 정진한씨는 60여년간을 조상의 땅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인호씨 가족이 옥고를 치르고 출감해보니 서울 청량리에 있던 땅 5096여 평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몰수된 뒤였다. 이후 정진한씨 집안은 일제에 의해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이승만 정권때부터 탄원서를 냈지만 법이 마련되지 않아 어쩔수 없다는 답변만 받는다. 이후 입법청원 운동에 돌입한 정씨는 이번달 25일에 국회에서 할아버지의 항일투쟁 기록을 담은 책의 출판회를 연다.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호소하고자 해서이다.


▣ 가짜 보훈혜택 노리는 위장 전입자들 :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눈물나는 사연
재산 뿐 아니라 독립유공자 유족들이 국가보훈처로 받는 보훈혜택을 챙기기 위해 ‘가짜후손’으로 위장해 진짜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두번 울리는 일까지 있었다.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일제에 의해 시베리아에서 숙청당한 최재형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모든 가족이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그 곳에서 삶을 마감했음에도 불구하고 냉전시대, 구 소련과 교류가 없던 점을 악용하여 한국에서 최재형의 후손임을 자처하며 수십년간 보훈혜택을 받은 것이다. 러시아의 가족들은 최재형 선생이 사살된 후 그 유해를 인양하지 않았다는데 국립묘지에는 엄연히 최재형의 유골이 안장되어 있다. 이를 계기로 독립유공자를 두 번 죽이는 국가의 무대응 무대책을 추적한다. 조상의 재산이었음을 뻔히 알면서도 방법이 없어 포기하고 살아가는 독립 유공자 후손들의 원망이 우리 역사의 현주소라면 합리적인 기준으로 그들에게 심적 물적 보상을 시행할 구조적 방법은 없는지 모색해본다.


▣ 되찾은 들, 그러나 주인은 따로 있었다.
2005년 5월 13일 현재, 법무부 발표에 의하면 지금까지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확인 소송은 모두 23건. 그 중 판결이 나온 16건 중 8건에서 승소했다. 반면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소송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정이다. 조선시대의 보편적인 토지제도는 관습에 의한 것이었으나 일본인이 합법적으로 조선의 토지를 소유하기 위해 토지조사사업을 시작했고, 1912년 8월에 공포된 토지조사령에 의해 토지소유권 조사를 하면서 각 필지의 지주, 경계, 지번 등을 정했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신고자가 지주가 되는 신고주의원칙을 채택했다. 또 1908년에는 이미 역둔토 관리 규정을 반포, 여러 기관에서 관리하던 역토(驛土)와 둔토(屯土) 그리고 궁방소속의 토지와 국유지를 역둔토로 정의하고 총독부 소속의 토지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등 광대한 민전을 약탈하였다. 지금의 토지제도는 그 당시 작성된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법’대로 하면 친일파 후손의 승소율이 상당히 높다. 이런 와중에도 몇몇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잃어버린 땅 찾기에 나서고 있다.
청량리 일대의 땅을 되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정진한 할아버지. 가족들이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고 나와보니 청량리에 있던 땅 5096평이 총독부에 압수되어 버린 것이다. 광복 후부터 빼앗긴 재산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광복 60년을 맞는 이 순간까지도 빼앗긴 땅은 대답이 없었다. 


▣ 사회주의 후손들의 험난한 땅찾기 과정
이번 광복절에는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낸 김철수, 6.10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조선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을 지낸 김단야(본명: 김태연),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47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부에서는 그들의 서훈이 사회주의 인사라는 이유로 한 단계씩 격하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광복 후 이어진 남북 대립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공훈은 사라지고 빨갱이로 손가락질 받고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던 억울함의 역사를 국가는 또 한번 우롱한 꼴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편,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땅찾기는 더욱 더 어렵다. 군사정권 시절까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조차 금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근에야 조상들의 피탈재산을 알아냈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난 탓에 증거와 기록,증언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PD수첩에서는 1920년대 조선공산주의대회를 주도한 사회주의자 이준태의 후손이 벌이는 힘겨운 땅찾기 노력을 소개한다.


▣ 독립운동가의  피탈재산을 찾아  입법마련 시급해
일제시대에 일제가 정한 법령에 의해 재산과 땅을 잃고, 심지어 호적까지 말살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하지만 광복 60주년을 맞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노력은 그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훼손되거나 제거된 일제시대의 기록과 판결들이 아직도 커다란 법적 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국가나 특정 개인을 상대로 조상의 재산을 되찾으려는 시도들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농담을 사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의 재산찾기를 체계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법률지원센터 마련과 입법마련은 하루라도 더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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