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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김성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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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아버지·작은아버지 올해로 광복 60돌을 맞는 독립유공자 후손 정진한(82·사진)씨는 요즘 우울하다. 분노마저 치민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일제에 빼앗긴 재산이라도 되돌려줘야 하는 것이 주권을 찾은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이 아닌가요? 독립운동가 피탈재산 보상입법이 이렇게도 어려울지 몰랐습니다.” 정씨는 한국사회가 독립운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요구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독립운동=불이익’이라는 등식이 굳어지고 있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씨의 할아버지인 정인호(1945년 작고) 선생은 구한말 경북 청도군수를 지냈으며, 일제의 관직 유혹을 뿌리치고 1920년 항일독립운동 조직인 대한독립구국단을 결성해 단장을 맡았다. 선생은 군자금을 모으고,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에 백여 명의 의원을 추천하는 등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1922년 징역 5년형을 받고 복역했다. 선생은 이런 공훈을 인정받아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 당시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된 21명 가운데에는 정씨의 할아버지 이외에도 아버지 정영모씨, 작은아버지 정법모씨도 있었다. 정씨 가족이 옥고를 치르고 출감해보니 서울 청량리에 있던 땅 5096여 평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몰수된 뒤였다. 일제 당시인 1927년에 숭인 면장 명의로 발행된 증명에도 문제의 땅을 정씨의 소유로 인정하고 있었다. “감옥 생활로 가세는 몰락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단간 셋방에서 살다가 조국 광복을 7개월 앞두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정씨는 광복 이후 피탈된 토지를 반환받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이승만 정부는 저의 애타는 탄원을 한 통의 회신도 없이 묵살했습니다.” 정씨는 메아리 없는 탄원 끝에 1977년 간신히 재무부 담당자를 만났으나 비관적인 말만 들었다. 당시 담당자는 “대단히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제에 피탈된 재산을 회복시킬 수 있는 법령이 없어서 환원이 안되며, 해결하자면 국회에서 입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이후 입법청원 운동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는 한동안 사회적 ‘냉담함’과 싸워야만 했다. 1993년 가까스로 여야 의원 208명의 서명을 받아 특별법 제정이 성사되는 듯 했다. 하지만 국회는 발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각고는 무산됐다. 다시 1993년 민족정통성회복 특별법안이 발의됐지만 친일부역자들의 재산몰수는 헌법과 상충된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정씨는 요즈음 국회 안 민족정기의원 모임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 발의한 과거사법을 둘러싸고 여야가 날카롭게 충돌하면서 과거사법 다음 단계에서 추진될 예정인 ‘피탈재산 회복 특별법’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정씨는 다음달 10일 국회도서관에서 할아버지의 항일투쟁 기록을 담은 책의 출판회를 연다. 장소를 국회로 잡은 이유는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호소하고자 해서이다. “친일파 후손은 법 절차를 빙자해 매국의 대가로 얻은 부정한 재산을 회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립유공자 후손은 빼앗긴 재산마저 못 찾고 있습니다. 진정 우리가 광복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겁니까?” <한겨레신문, 05.07.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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