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친일파 송병준 후손이 자신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부평미군기지 전경 |
|
ⓒ2005 한만송 |
|
친일파 송병준 후손에 의한 ‘부평미군기지 터 재산 원인무효소송'(이하 재산 반환소송) 재판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 가운데,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이 25일 부평미군기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시민의 힘으로 되찾은 부평미군기지를 결코 친일파 후손에게 내 줄 수 없다”며 “친일파 후손에 의한 재산 반환소송 패소는 부끄러운 친일의 역사 청산”이라 말하는 등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했다.
이날 우리땅부평미군기지되찾기및시민공원조성을위한인천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 공동대표 이정욱, 한상욱)는 “땅의 소유권에 관한 재판이지, 원고들의 선대가 일제하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가리는 법정이 아니다”라고 밝힌 재판부 입장에 대해, 재판부에 제출하는 진정서에서 “1996년부터 부평미군기지 반환운동을 전개하는 동안, 10만 명이 주민 서명과 674일간 지속된 미군기지 앞 천막농성을 통해 미군기지 반환 결정의 쾌거를 얻었지만, 친일파 후손들이 이제와 자신들이 땅이라고 소송했다”며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고 친일의 대가로 형성된 재산을 외면하고 개인의 소유권 문제로 해결 할 수 있냐”고 우려를 표명했다.

|
|
▲ 2004년 2월 송병준 후손에 의한 소유권 주장 규탄 집회 전경 |
|
ⓒ2005 한만송 |
|
또한 이들은 “국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특별법’을 발의한 후 수원지법은 친일파 후손들이 재산반환청구소송에 대한 재판을 늦추기로 했다”며 이번 재판은 한 개인의 재산반환 소송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사람의 재산반환소송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들 단체는 재판이 열리는 서울 중앙지방법원을 찾아 1인 시위 등을 통해 재판부를 압박할 계획이다. 또한 이들 단체들은 인천시와 주민대표 등이 참석한 부평미군기지 공동인수위원회를 구성해 미군기지 반환 후 활용 방안 등에 대해 협의 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친일파 후손에 의한 부평미군기지 터 소송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난 7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3민사부(이혁우 부장판사)에서 진행된 친일파 후손에 의한 ‘원인무효로 인한 소유권 등기 말소’ 재판에서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오는 27일 이 재판 1심 결심을 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3년 2월 시작된 재판의 끝이 보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재판 결과는 결코 예상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

|
|
▲ 송병준 후손 측이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증거자료로 내놓은 1910년 당시의 토지대장. |
|
ⓒ2005 한만송 |
송병준 후손인 송 아무개씨의 법정 대리인 이재훈 변호사는 인터뷰를 통해 “재판에 자신 있다”며 “우리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했으며, 향후 미군기지를 되찾고, 그 주변(부평구 대림, 욱일 아파트와 주안장로교회 일부 부지들)에 대해서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승소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 반면 국가 소송담당 변호인인 국방부 검찰단 소속 윤아무개씨는 “최선을 다했다”며 “법정에서 진위를 가리자”고 말했다.
또한 토지반환 소송과 관련 산림청 담당관인 김아무개씨 또한 “보직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사실 감을 못 잡고 있다”며 “솔직히 너무 어렵다”고 현재의 심정을 밝혔다. 실제 산림청의 경우,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담당자가 몇 차례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송병준 후손의 변호인이 베테랑 변호인인 점을 감안한다면 국방부와 산림청의 대응은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지사 민영환 후손 측, “그 곳은 할아버지의 땅”… 100년 전, 소송 되풀이
한편 이번 재판에 독립 당사자로, 송병준 후손 측 뿐만 아니라 정부와도 소송을 벌이고 있는 민영환 후손 이종준 변호사 측은 인터뷰를 통해 “최소한 대한민국이 땅을 지키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이번 재판을 단순히 땅 주인을 가르는 소송 재판으로 보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이미 지난 4월 27일 재판에서 “사건은 땅의 소유권에 관한 것이지, 원고들의 선대가 일제 치하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가리는 법정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이씨 측 주장을 재판부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 줄지가 문제다.

|
|
▲ 정부, 송병준 후손, 민영환 후손 측 사이의 소송 관계를 나타낸 표. |
|
ⓒ2005 한만송 |
|
한편 이 변호사는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낸 1908년(명치 42년) 12월 15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지금의 서울고등법원에 해당) 판결문에서 민영환의 장남 민범식의 대표자로서 친모인 박소사가 송병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청구원을 인용, “광무 10년(1906년) 2월경 항소인(박소사)은 물건을 대금 3천원으로 피항소인(송병준)에게 매도한 것처럼 가장해 신문기(현재의 토지 등기부와 비슷한 역할)를 작성 교부해 피항소인에게 그 보관을 위탁하였으나 그 후에 보관을 위탁할 필요가 없다며 재판 제기했다”고 밝혀 이 재판이 100년 전에도 똑같이 진행됐던 것으로 드러나 우리 나라 역사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줬다.
또한 이 변호사는 “국가기록원에는 예전 재판기록과 반민특위 조사 내용이 있다”며 “이 자료들을 취합되면 이 땅이 송병준의 땅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일본에 의한 조선 식민지화 100년이 된 올해 친일파와 우국지사 후손간의 다툼이 다시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일파 후손과 우국지사 후손간의 토지 소유권 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참담한 현실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한편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 측은 ‘친일 재산환수 특별법’을 법사위에 제출한 상태이며, 현재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친일파 후손에 의한 땅 소송을 일단락짓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과 상충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 97년 서울고법 민사2부는 “친일파의 땅이라도 법률적 근거 없이 뺏을 수 없다”면서 원고(이완용 후손)에게 손을 들어 준 이후 전국적으로 친일파 후손에 의한 토지반환 소송이 줄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