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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표준 영정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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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만원권의 세종대왕 영정은 친일 경력이 있는 김기창의 작품이다. 1973년 6월 12일에 발행된 만원권을 포함하여 이전의 지폐 디자인으로 활용된 세종대왕 초상은 그 모습이 현재 만원권과는 사뭇 달랐는데, 이는 전해 내려오는 초상화가 없어 덕수궁의 조각상을 근거로 그려진 것을 사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선현의 모습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제작 주체에 따라 제각각이어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초래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자, 정부는 1973년 5월 8일 ‘선현의 동상 건립 및 영정 제작에 관한 심의 절차’를 마련하여 우리 역사상 겨레의 위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선현의 동상이나 영정을 제작할 때는 정부의 사전심의를 받도록 하였다. 그래서 서울 청량리동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에서 1973년 5월부터 봉안하고 있던, 김기창이 그린 대왕의 어진이 그 해 10월 30일 국가 표준 영정으로 지정됐다. 그러자 한국은행은 1979년 6월 15일 만원권 발행 때부터 김기창의 작품을 근간으로 반신상 초상을 제작하여, 현재까지 만원권 지폐에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세간에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운보 김기창은 친일화가의 선두주자였던 김은호의 수제자로서, 그한테서 섬세한 사실 묘사 위주의 일본화식 채색화법을 배움과 동시에 친일 행각까지도 착실히 물려받은 인물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추천작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친일파 대열에 합류한 김기창은, 김규진, 김은호, 이상범, 이한복, 허백련 등 대가급 친일 미술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금마련 전람회에 적극 협력하였다. 또한 그는 김은호, 이상범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일제 말 친일미술전의 핵심인 ‘반도총후미술전’에 장우성과 함께 일본화부 추천작가로 발탁되었고,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 고무하기 위한 선전 작업에도 앞장 섰다. ‘매일신보’에 게재된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1943. 8. 6)”, 조선식산은행의 사보 ‘회심’지에 실린 완전군장의 “총후병사(1944. 4)”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런데 세종대왕기념관(1973년 10월 9일 개관,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운영)에 있던 김기창의 작품은, 1977년 10월 9일 경기도 여주에 세종대왕유적관리소가 건립되면서 그 쪽으로 옮겨가고, 서울에는 대신 풍속화의 대가인 혜촌 김학수 화백이 그린 새로운 세종대왕의 어진이 1982년 11월 26일에 전시실에 봉


안됐다. 혜촌은 대왕의 어진 외에도 수년에 걸쳐 대왕의 일대기를 그렸는데, 그 작품들 모두 현재 그 곳에 함께 전시 중이다.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난 혜촌은 소학교를 마치고 김유탁에게 사사했다. 한때는 그 또한 김은호한테 배운 적이 있지만, 특별히 친일 활동은 한 경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해방 뒤엔 변관식에게 사사했고, 고증을 통한 역사 풍속화를 주로 그려 오고 있다. 한국동란 때 아내와 4남매를 북녘에 남기고 온 이산가족이기도 한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30명의 고아를 친자식 삼아 훌륭히 키운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나라 이 겨레의 숙원 사업인 일제 잔재 청산 작업엔 어떠한 성역도 있을 수 없다. 특히 우리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의 국가 표준 영정이 친일 경력이 유별난 인사가 그린 것이라면 그것은 큰 문제이다.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영정을 새로 제작할 필요도 없다. 대안은 세종대왕기념관에 있는 김학수 화백의 작품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세종대왕 표준 영정을 이것으로 바꾸고, 새로 만들 만원권 화폐부터 사용하기 바란다.

[첨부 사진] 서울 세종대왕기념관에 봉안 중인, 김학수 화백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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