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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민주인사, 만화 박정희 보급에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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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동포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독재시절 미주 지역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이덕문 여사(미국명 Grace Weiner)와 박 사무엘 선생님은 최근 연구소에 편지와 200달러를 보내왔다. 현재  박정희기념관 반대 미주 공동대표이기도 한 이덕문 여사는 평소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 사이에서 박정희가 여전히 훌륭한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데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감을 느낀다며, 우리들이 피 흘려 쟁취한 민주화와 올바른 역사 정의를 학생들에게 올바로 인식시킬 수 있도록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만화 박정희」를 구입해 일선 학교에 보급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연구소는 두 민주화 운동 원로 선생님들의 뜻을 받아 경북 구미초등학교(박정희가 졸업하였고 현재 교정에 박정희 동상이 있음), 경북대 사범대 학생회(박정희가 졸업한 대구사범 후신으로 현재 사범대 건물에 박정희의 부조물이 있음), 영남대 총학생회(박정희가 설립자로 되어 있음), 금오공대 총학생회(박정희가 설립자로 되어 있음),금오공고(박정희가 설립자로 되어 있음) 등에 우편으로 기증하였고, 학교 교육 현장에서 올바른 역사 교육을 부탁드리는 차원에서 전교조 서울, 대구, 경북지부와 역사교사모임에도 각각 기증하였다.




한편 이덕문 여사는 지난 해 10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기여한 해외 민주 인사 초청 행사에 미국인 남편과 함께 방한하기도 했는데 남편 역시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는 1991년 건립된 경북 구미초등학교에 있는 박정희 동상과 기문 내용이다. 


 

















동상 기문 (앞면)

금오 영봉의 정기는 님의 드높은 기상을 길렀고 굽이 도는 저 낙동강의 자애는 애국 애족하는 닝의 정을 기르셨으니 오늘 나 또한 이 교정에서 태양보다 더 뜨거운 님의 얼을 가슴 속에 깊이깊이 새기련다.

 

동상 기문(뒷면)

박 정희 대통령께서는 이 고장 상모동에서 가난한 농민 박 성빈씨와 백 남의 여사의7남매중 막내로 1917년 11월 14일에 태어나시었다.

찌든 가난에 일제의 수탈 또한 날로 더할 때라 주림과 추위를 참아가며 미투리 발로 20리가 넘는 험한 길을 걸어서 1932년 제11회로 졸업하신 우리의 선배님이시다. 그 해 대구사범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 1937년 졸업하면서 문경국민학교 교사로 발령. 3년간 봉직하시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하의 조국을 구하는 길은 훌륭한 군지휘관이 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 청운의 꿈을 안고 만주군관학교를 거쳐 1942년 일본 육사에 입교. 1944년 졸업으로 임관하시었다. 그 이듬해 8.15광복을 맞아 국군이 창설되자 조국의 간성이 되고자 다시 육사에 입교하시어 1946년 제2기로 졸업 소위로 임관하시었다.

 

곧이어 특진하고 6.25동란 중에는 탁월한 능력이 인정되어 승진이 거듭되더니 1954년에는 준장으로 군 내에서 가장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장군으로 손 꼽혔으며 부하들의 고충을 귀담아 듣는 자애롭고 소박하며 과묵한 성품에 인자한 덕장으로 청렴한 지휘관으로 명망이 높았다.

 





1958년에는 소장으로 승진되어 2군 부사령관으로 재임시 혼미 속으로 치닫기만 하는 국내 정세를 감안. 구국의 결단으로 1961년 5.16혁명을 주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추대되었다.
1963년에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이래6.7.8.9대 등 5대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근면 자조 협동을 기조로 새마을 운동을 창시하시고 과감한 공업에 투자로 수출입국의 터전을 마련하시었다. 한편으로는 녹색혁명으로 인한 식량의 자급화로 5천년의 묵은 보릿고개를 허무셨으며 자연보호헌장 그리고 어린이와 노인 헌장을 선포하는 등 복지의 기반을 닦으셨고 국제정세를 감안. 자주국방의 기틀과 7.4공동성명으로 남북대화와 평화통일의 기반을 닦으시는 등 실로 헤아릴 수 없는 치적을 남기시었다.

찌들기만하던 가난에서 민족은 중흥했고 세계속의 한국으로 조국은 근대화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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