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보도자료] 이해승의 수작행위에 대한 역사학계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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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이해승 후손을 상대로 한 부당이득금반환 청구소송에 민족문제연구소 등 역사학계 14개 단체 공동 의견서 법정 제출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이해승의 후손을 상대로 국가(원고 법무부장관)가 친일 대가로 획득한 재산을 매각한 것을 다시 반환하라는 부당이득금반환소송에 역사학계가 공동으로 의견서를 6월 21일 제출할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해 한국역사연구회 등 한국사는 물론 동서양사 학회를 포함한 14개 학회·연구소는 공동의견서를 통해 “입법의 취지와 역사학계의 일반적 견해 그리고 무엇보다 당대의 통념상 수작자와 습작자는 가장 심각한 당연범적 반민족행위자로 간주”하고 있다고 의견을 피력하고,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입법의 본지를 떠난 자구해석으로 인해 무산되지 않도록, 역사정의에 부합하는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결이 내려지기를” 강력히 요청했다.


 이미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각각 2010년 5월과 10월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7호에 적시된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라는 조문을, 작위를 받았더라도 그 이전에 ‘한일합병의 공’이 있음을 입증해야 친일반민족행위로 인정한다고 해석해, 이해승의 수작행위를 ‘종친의 자격’으로만 작위를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국가가 환수한 이해승의 재산을 다시 후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에 대해 역사학계는 수작행위 자체가 식민지 지배를 용인하는 심대한 반민족행위이며, 해방 후 각종 친일파 처리규정도 이러한 취지에서 수작자를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음을 지적하면서 이번 이해승 후손을 상대로 한 부당이득금반환소송에 공동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다.


한편 국회는 관련 법조문 가운데 문제가 된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수식어를 삭제함으로써 입법취지를 보다 명확히 해 2011년 4월 개정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다음은 역사학계 의견서 전문이다.



이해승의 수작행위에 대한 역사학계의 의견


 2010년 5월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는 후작 이해승의 후손인 원고 이○○이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를 피고로 하여 항소한 국가귀속결정처분취소(2009누19658) 건에 대해, ‘이해승이 일제로부터 작위(후작)를 받았으나, 한일합병의 공로가 아니라 대한제국 왕실 종친에 대한 예우로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판단의 근거로 재판부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 제2조 제7호에 적시된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라는 조문을, 작위를 받았더라도 그 이전에 한일합병의 공이 있음을 입증해야 친일반민족행위로 인정한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나아가 재판부는 이해승이 강제병합 이전에 한일합병에 대한 공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조선귀족령 2조에 “작위는 이왕의 현재 혈족으로서 황족의 예우를 받지 않는 자와 문지(門地) 또는 공로가 있는 조선인에게 수여한다”는 규정에 따라, ‘종친의 자격’으로만 작위를 받은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2010년 10월 대법원 제1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업무를 승계한 피고 법무부장관이 후작 이해승의 후손인 원고 이○○를 상대로 제기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판결을 내려 고등법원의 결정을 별도의 심리 없이 인용했습니다.


 역사학계는 이러한 사법부의 판단이 역사학계의 수작자에 대한 일반적 견해와 동떨어져 있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며, 이러한 재판 결과가 어렵게 결실을 맺고 있는 국가 차원의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청산마저 무위로 돌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역사학계의 입장을 정리해 간단하지만 명확하게 의견을 밝히고자 합니다.


  1. 수작은 그 자체로 친일반민족 매국행위에 해당합니다.


  1910년 8월 29일 강제병합조약이 공포되자 잘 알려진 대로 곳곳에서 한국인의 조약 부인 및 무효화 투쟁이 전개되었습니다. 이를 예상한 일제는 강제병합조약 공포 이전부터 조선총독부 관제, 조선귀족령의 법제화, 은사금 지급 등을 준비해 민족적 저항을 대비했으며, 병합을 기정사실화하는 과정에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9월) 이어 조선귀족 작위를 수여하고(10월) 병합기념은사금을 지급하고, 나아가 병합기념장을 수여하는 것으로 강제병합의 모든 실질적 절차를 완료했습니다.


  따라서 일제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은 사실 자체가 강제병합에 동의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이어가는 ‘매국형’ 반민족행위임은 역사 상식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반적 인식 때문에 당시 민중들이 수작자를 국적(國賊)으로 규정하였고 일부 수작자들은 작위를 반납 또는 거부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작위 수여를 거부하고 자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수작행위는 망국을 인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매국행위임이 명백했기 때문에 이러한 저항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수작을 거부·반납하는 행위가 강제병합에 저항하거나 강제병합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인데, 수작하는 행위가 매국행위가 될 수 없다는 해당 재판부의 해석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자구에 얽매인 지엽적 판단이라 하겠습니다.


 2. 해방 공간의 각종 친일파 처리 규정과 반민법에 이르기까지 수작자 또는 습작자는 당연범으로 간주되는 처벌 대상이었고, 현행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또한 이러한 취지를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따라서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라는 조문 또한 작위 수여 자체가 매국행위이며 당연범이라는 전제 위에서 입법되었던 것입니다.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부분은 수작행위의 매국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식어에 지나지 않으며, 입법과정에서 수작자는 일관되게 당연범 조항으로서 논의되었던 사실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일합병의 공로로”라는 구절을 삭제해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것도 이러한 입법 취지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3. 입법의 취지와 역사학계의 일반적 견해 그리고 무엇보다 당대의 통념상 수작자와 습작자는 가장 심각한 당연범적 반민족행위자로 간주하고 있음에도, 뜻밖의 판결이 나온 것에 대해 충격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입법의 본지를 떠난 자구해석으로 인해 무산되지 않도록, 역사정의에 부합하는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결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역사학계의 뜻을 모아 간략한 의견서를 제출합니다.


 2011년 6월 일


경남근현대사연구회(회장 박영주) 명청사학회(회장 박기수)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정태헌) 역사학연구소(소장 전명혁) 한국근현대사학회(회장 김희곤) 한국민족운동사학회(회장 김형목) 한국사상사학회(회장 홍원식) 한국서양중세사학회(총무이사 성백용) 한국역사교육학회(회장 김원수) 한국역사연구회(회장 이인재) 한국중세사학회(회장 이정신) 한일관계사학회(회장 한문종) 한일민족문제학회(회장 김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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