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현장, 피해자 목소리 새긴 몸자보 ‘상징행동’ 펼쳐진 까닭

21일 낮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오디토리움 앞. 고층 빌딩 사이로 애달픈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인디밴드 ‘두 번째 달’의 리더 겸 음악감독인 김현보씨가 부른 ‘북해도 고락가’였다. 광복 80주년 공개된 <앙구 고향은 북해도> 다큐멘터리에 수록된 이 노래는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 강삼술 옹의 증언을 담았다.
“달아, 높이나 올라 이역의 산하 제국을 비춰올 때 식민 징용의 청춘 굶주려 노동에 뼈 녹아 잠 못 들고 아리 아리랑, 고향의 부모 나 돌아오기만 기다려.”
김씨는 가수 정태춘씨가 부른 ‘징용자 아리랑’도 꺼내어 불렀다. 홋카이도 탄광의 처참한 환경 속에 있었던 할아버지가 떠오르는 듯 그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았다. 10여 년 전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였다. 숙연한 분위기에 덩달아 주변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한 시민은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직접 내용을 확인하기도 했다. 69세의 방아무개씨는 “처음에는 무언지 몰라서 나눠주는 자료를 한 장을 받았다”라며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도 일본이 사도광산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계속 귀를 쫑긋 세운 방씨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한일 관계가 좋아질 수 있겠느냐”라고 혀를 찼다.
“강제동원 감추며 세계문화유산 될 수 없어”
이날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은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알리는 시민 긴급행동’을 공동으로 진행했다. ‘2026 사도광산 캠페인’ 누리집을 통해 이를 공지했는데, 전국에서 수십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사흘 전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48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고 있지만, 일본은 여전히 뻔뻔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24년 사도광산 등재 과정에서 일본이 국제사회에 ‘전체 역사(조선인 강제동원 포함)를 반영하겠다’고 한 약속은 2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았다. 에도시대 금광만 강조하며 태평양 전쟁 시기 있었던 강제징용, 강제노동의 진실은 외면 중이다.
참석자들이 한글과 영어가 앞뒤로 적힌 몸자보를 입고 나온 건 세계 각국에 진실을 알리겠다는 의도였다. 하얀색 배경에 1900년대에 태어나 일제강점기 시기 끌려갔던 ‘김OO’, ‘정OO’, ‘김OO’, ‘안OO’ 등 사도광산 피해자들의 증언을 적었다. 한일 시민단체가 발간한 공동조사보고서 자료에서 발췌한 글을 근거로 썼다. 70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에는 100여 명이 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포함돼 있다.
사도광산에 끌려갔다가 모진 고생을 하고 진폐증에 시달리다 숨진 한 피해자의 사례를 몸에 두른 김승은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은 “일본이 강제동원 피해자를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고 표현하는 등 교묘하게 사안을 회피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대론 사도광산에 세계유산의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유산이 되려면 반드시 사도광산의 어두운 역사를 기록해 추도하는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정천식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부산이 과거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던 출발지란 점을 떠올렸다. 여기서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가 개최되는 것은 상징적인 일로, 이 기회에 일본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단 태도였다. 정 대표는 “역사적 진실은 결코 왜곡되거나 묻힐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과 행진 방식으로 진행된 상징행동은 무려 2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몸자보에 더해 피해자 증언 영상을 보여주는 태블릿까지 들고 세계유산위원회 현장 주변을 여러 번 돌았다. 2시간 넘게 끊이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는 보란 듯 건너편 회의장을 향했다.
“유네스코 권고 이행하고, 어두운 역사 기록해야”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는 사도광산 등재 후속 조치 권고에 대한 일본의 이행이 충분치 않다고 평가한 상황이다. 회원국들이 결정문 초안을 회람했는데, 전체 역사를 현장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다루고 개선을 위해 당사국들과 긴밀히 협의하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 진행 전반을 도맡은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국장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 하나하나가 사도광산 피해자 증언”이라며 “내일부터 일본 정부의 이행 보고서 논의가 이루어질 텐데 반드시 제대로 된 결정문이 채택돼야 한다”라고 벡스코에 모인 이유를 말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의 입에선 우리 정부를 향한 쓴소리도 나왔다. 그는 한일 관계의 미래만 말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거짓을 말하지만, 진실을 감추지는 못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 시기) 우리 정부는 이런 그릇된 태도를 용인하고 방치했다. 일본이 알아서 반성하고 진실을 기록할 리는 만무하다. 이제 정권이 바뀌지 않았나? 무엇을 하고 있나. 더는 입을 다물고 있지 말라. 국민과 함께 (세계유산위원회 결과를) 지켜보겠다.”


김보성 기자
<2026-07-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사도광산 피해자 증언 등장… “강제동원 감추며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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