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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인간 김철’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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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4일 당산 김철 탄생 100주년 <내가 본 김철> 출판기념회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 당산(堂山) 김철(1926~1994)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내가 본 김철> 출판기념회가 지난 4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 ‘가치하다’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당산의 차남 김한길 전 의원과 삼남 김누리 중앙대 교수를 비롯해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종찬 광복회장(전 국가정보원장), 정대철 헌정회장,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국 정의당 대표, 문국현 전 의원,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정범구 전 의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 등 내외빈 150여 명이 참석했다. 김철 선생과 같은 시대를 함께 걸어온 옛 동지들의 자제들과 안필수 통일사회당 위원장의 막내딸 안미숙 여사도 함께했다.

행사는 당산의 장손녀인 김날해 SBS Biz 보도국 산업1부장이 사회를 맡았다. 행사는 약 2시간 반에 걸쳐 진행됐다.

▲당산 김철 출판기념회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 당산(堂山) 김철(1926~1994)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내가 본 김철>(해냄출판사) 출판기념회가 4일(토) 오후 2시 30분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 ‘가치하다’에서 열렸다. 사진은 참가자들이 행사를 마치고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이다. ⓒ 강승혁

“그의 삶은 시대와의 불화 그 자체였다”

권희경 사회민주주의청년연맹 준비위원장의 약력 소개에 이어 연단에 오른 홍을표 간행위원장(전 가천대 교수)은 당산의 어록으로 간행사를 열었다.

“우리들은 이상 사회가 하루아침에 실현되리라고 환상을 품는 자가 아니다. (중략) 다만 주어진 조건 위에서 실현할 수 있는 한계까지 달성한다면 우리는 각기 자기 생애의 역사적 진실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홍 위원장은 “김철 선생의 삶을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그가 살아온 시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의 삶은 시대가 빚은 것이고, 시대 속을 관통한 것이며, 시대와의 불화 그 자체였기 때문”이라며 “그는 식민과 분단의 역사를 경험하며 민족주의자가 되었고, 냉전과 내전을 겪으면서 사민주의자가 되었으며, 군사독재를 겪으며 민주주의자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홍을표 전 교수홍을표 간행위원장의 간행사 하는 모습이다. ⓒ 강승혁

그는 이어 “<내가 본 김철>은 단순히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한 시대가 김철 선생의 삶을 기억하는 방식”이라며 “2000년의 <당산 김철 전집>, 2024년의 <김철과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에 이어, 이번 책은 전집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 김철’의 모습을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리고자 했다”고 출간 취지를 밝혔다. 홍 위원장은 간행위원인 권희경·윤기종·장홍순·김누리씨와 해냄출판사, 그리고 책 출간을 지원한 김한길 전 의원에게 감사를 전했다.

“예언자적 삶을 산 고고한 이상주의자”

첫 축사에 나선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김철 전집 간행위원장)은 “2000년 김철 선생의 전집을 간행했던 사람으로서, 그의 저작을 통해 나는 김철 선생을 예언자적 삶을 산 고고한 이상주의자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김철 전집 간행위원장)이 “2000년 김철 선생의 전집을 간행했던 사람으로서, 그의 저작을 통해 나는 김철 선생을 예언자적 삶을 산 고고한 이상주의자로 기억한다”고 말하는 모습이다. ⓒ 강승혁

이 전 위원장은 당산의 사상이 “개화기 정약용에서 움터 일제하 여운형으로 이어지다 해방 후 조봉암에 이르러 현실 정치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된 한국의 민주적 사회주의가 분단과 냉전, 군부독재의 가혹한 상황 속에서 어떤 시련을 겪었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고 평가했다. 이 전 위원장은 “고매한 정치적 목적이라도 부정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신념을 평생토록 견지한 선생의 지사적 풍모는 눈앞의 이해를 좇아 거리낌 없이 조변석개하는 오늘의 많은 정치인들에게 따끔한 귀감이 되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종찬 광복회장이 축사에 나서 당산과의 오랜 인연을 회고하며 고인에 대한 존경의 뜻을 전했다. 정대철 헌정회장은 “사회주의라 하면 공산주의와 분별이 잘 안 되는 나라에서 모함을 받으면서까지 올바른 길을 걸어간 분, 정의롭게 살다 가신 분, 그리고 자식 농사도 잘 지으신 분”이라며 “김한길·김누리 두 아들이 훌륭하게 자기 위치를 지키며 아버님의 뜻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며 선생을 존경한다”고 즉석 축사를 전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축사하는 모습이다. ⓒ 강승혁
▲정대철헌정회장의 축사 모습이다. ⓒ 강승혁

축사의 마지막 주자로 나선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민족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그리고 철저한 민주주의자로 살았던 김철 선생님의 출판기념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윤석열 정권이 물러나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 양극화와 격차, 차별의 문제가 해소되리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불평등 문제는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권영국정의당 대표가 축사하는 모습이다. ⓒ 강승혁

권 대표는 이어 “항상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그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당산의 삶과 지혜가 상당히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기대한다”며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정당이 우리 사회에서 훨씬 더 큰 세력으로 좌우의 날개로 날 수 있도록 꿋꿋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종원 시인이 축시를 낭송하는 모습이다. ⓒ 강승혁

전 사회민주당 부위원장인 김종원 시인은 축시에서 민족 자주와 평화통일 문제로 고민하던 학창 시절 당산을 만나 30여 년을 동지로 지낸 인연을 회고했다. 그는 당산을 “연민이 두터운 휴머니스트”라 부르며, 통일사회당의 맥을 잇는 사회민주당을 창당해 “사회민주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했다. 또한 “가난에 주눅 들지 않고 고난의 시궁창을 잠잠히 견뎌낸” 당산의 삶을 시로 그려냈다.

이어 당산의 둘째 손녀로 국어교사인 김찬해씨가, 당산의 고교 시절 벗이었던 고 김규동 시인이 1994년 8월 13일 영전에 바친 조시를 대신 낭독했다.

“벗이여, 이 땅 민중의 어려움과 고통을 누구보다 몸소 지고 산 벗이여. 이제는 그 짐 다 내려놓고 훨훨 나르소서. 남도 북도 없이 삼천리 강산, 내 나라 하늘과 산천 훨훨 나르소서. (…) 역사는 기필코 옳은 자에게 마지막 승리를 안겨줄 것이오.”

▲김찬해 교사사진은 당산의 둘째 손녀로 국어교사인 김찬해 씨가, 당산의 고교 시절 벗이었던 고 김규동 시인이 1994년 8월 13일 영전에 바친 조시를 대신 낭독하는 모습이다. ⓒ 강승혁

낭독이 끝나자 장내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홍을표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김철 선생을 추억하다’ 순서에서는 당산과 함께 활동했던 옛 동지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1973년 통일사회당 사무실에서 당산을 처음 만난 뒤 스웨덴에서 사실상 당 국제부장 역할을 하며 당산의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활동 27년 가운데 21년을 함께한 신필균 이사장(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당산의 삶을 신념, 국제적 안목, 동지애와 연대의 힘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증언했다.

그는 “노동자의 권리와 복지국가는 1960~7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감히 생각지 못한 낯선 말이었지만 선생님은 평생 민주사회주의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며 망명 생활 중 스웨덴이 마련해 준 국제적십자 여행증명서를 들고 세계를 오가며 한국의 현실을 알린 당산의 행적을 “놀라운 헌신의 기록이자 신념의 실천”이라고 회고했다.

▲신필균 이사장사진은 1973년 통일사회당 사무실에서 당산을 처음 만난 뒤 스웨덴에서 사실상 당 국제부장 역할을 하며 당산의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활동 27년 가운데 21년을 함께한 신필균 이사장(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발언 모습이다. ⓒ 강승혁

신 이사장은 특히 5.18 광주 학살과 김대중 사형선고가 있었던 1980년 마드리드 SI 총회에서 한국의 독재 상황과 김대중 석방을 담은 결의문이 빌리 브란트 의장의 육성으로 낭독되던 “참으로 감격스러운 순간”과, 1983년 시드니 아태총회에서 전두환 정권에 의해 통일사회당의 SI 정회원권이 고정훈의 민사당으로 바꿔치기 됐던 “가장 분통이 터졌던 사건”을 함께 증언했다.

그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국가 비전으로 삼고 유럽 동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했던 선생님의 30년 헌신”을 강조했다. 동시에 “선생님의 삶은 우리에게 ‘당신은 무엇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진정한 기념은 기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승으로 이어질 때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인국혁신계 원로 고 이동화 선생의 아들 이인국 씨는 당산이 사회민주주의를 교조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현실에 맞게 ‘민족주의적 사회민주주의’로 이론화했으며, 몽양 여운형과 죽산 조봉암의 노선을 승계한다고 스스로 밝혀 이념의 역사적 정립을 분명히 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사진은 이인국 씨의 발언 모습이다. ⓒ 강승혁

혁신계 원로 고 이동화 선생의 아들 이인국씨는 당산이 사회민주주의를 교조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현실에 맞게 ‘민족주의적 사회민주주의’로 이론화했으며, 몽양 여운형과 죽산 조봉암의 노선을 승계한다고 스스로 밝혀 이념의 역사적 정립을 분명히 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1984년 5월부터 1994년 서거 때까지 10년간 당산을 가까이에서 보좌한 장홍순 간행위원은 초한시대 명장 계포(季布)의 고사 ‘계포일락(季布一諾)’에 빗대 “김철 선생은 한국의 계포”라며 “말을 하실 때 항상 신중하셨고, 결코 남을 비난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으며, 한 번 한 약속은 천금 같이 지키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장홍순 위원1984년 5월부터 1994년 서거 때까지 10년간 당산을 가까이에서 보좌한 장홍순 간행위원이 회고하는 모습이다. ⓒ 강승혁

이종오 이사장 기조강연… ‘극단의 시대, 진보의 선택’

기조 강연은 이종오 경제사회포럼 이사장이 ‘극단의 시대, 진보의 선택’을 주제로 맡았다. 이 이사장은 영국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로 명명한 것을 인용하며 “1926년에서 1994년까지, 당산의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20세기 안에서 이루어진 그야말로 ’20세기인’의 삶이었다”고 규정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이란 전쟁이 이어지는 오늘의 세계 역시 극단의 시대에서 벗어났다고 낙관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의 주요 산업 국가이면서 국가 수립 이후 8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회’나 ‘노동’이라는 글자가 붙는 정당이 정부 구성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며 “이런 면에서 당산이 1970년대에 유럽과 사민주의를 찾은 것은 당대인으로서는 획기적 혜안을 가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종오 이사장기조강연 하는 이종오 경제사회포럼 이사장의 모습으로 ‘극단의 시대, 진보의 선택’을 주제로 강연했다. ⓒ 강승혁

그는 이어 트럼피즘에 의한 자유주의 체제와 안보 동맹의 해체를 지적하며 “미국이 과연 계속하여 20세기의 한미 관계와 같은 한국의 보호 세력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한국 민주주의를 완전히 파괴할 뻔한 윤석열 정부의 출현은 ‘단순 사고’가 아니라 87년 민주주의의 한계와 중대한 결함을 보여준 것”이라며 현대판 신분 계급제로 나타나는 금융 불평등과 그 주된 희생자인 청년층의 문제를 짚었다.

진보의 미래와 관련해 이 이사장은 “당산은 좌우 진영을 통틀어 인본주의적 가치를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추구한 사회민주주의의 가치와 방법을 실현하고자 했던 극히 드문 사람이었고, 그가 추구한 핵심 가치는 경제와 사회의 민주화였다”며 당산이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을 통해 한국 정치의 지평을 넓혔듯 미래의 진보 정치는 기후위기·불평등·평화 등 인류 보편의 과제에 대해 국제사회와 연대하고 정치 개혁을 품은 민주주의 공고화와 사회 경제적 혁신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1세기형 권위주의와 국가주의 앞에서 21세기 사회민주주의는 과연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오늘의 긴박한 경고와 과제”로 제기하며 강연을 맺었다.

두 아들의 사부곡

▲김한길사진은 차남 김한길 전 의원의 발언 모습으로 대학 시절 보안사령부 지하실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돌아와 몸져누워 있을 때 아버지가 방에 들어와 물끄러미 바라보다 남긴 한마디, “너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아”라는 일화를 소개했다. ⓒ 강승혁

마지막 감사 인사에서는 두 아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저마다의 ‘아버지 김철’을 이야기했다.

차남 김한길 전 의원은 대학 시절 보안사령부 지하실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돌아와 몸져누워 있을 때 아버지가 방에 들어와 물끄러미 바라보다 남긴 한마디, “너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아”라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엔 벽을 보고 돌아누워 ‘저런 아버지가 다 있나’ 하고 생각했다”면서도 “훗날 아우 김누리가 ‘형, 나는 어떤 위인전에서도 아버지만큼 훌륭한 사람은 읽어본 적이 없어’라는 편지를 보내온 뒤 아버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너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뇌하고 그 고뇌의 결론을 몸소 실천하며 사시려 했던 내 아버지를, 이제는 아들로서가 아니라 참으로 깊은 존경을 가지고 바라보며 저 자신 잘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누리 교수자신의 부친 생애를 기록한 <내가 본 김철> 출판기념회에서 발언하는 김누리 교수의 모습이다. ⓒ 강승혁

삼남 김누리 교수는 “아버지를 보낸 지 오래됐는데 여전히 못 만나고 있다. 지금도 어떻게 저런 삶을 한 인간이 살 수 있을까, 너무나 낯설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버지의 고교 시절 벗인 김규동 시인이 ‘아침에 학교에 오면 맨 앞자리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아 별명이 대불(大佛)이었다’고 회고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개인적으로 정신적 아버지라 여겨온 철학자 아도르노, 정치가 빌리 브란트, 작가 귄터 그라스 세 분과 달리 육신의 아버지와는 가까워지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이 낯섦의 정체에 대해 ‘김철 평론’을 쓰고 싶다. 김철과 그의 시대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출판기념회의 참가자들 모습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 당산(堂山) 김철(1926~1994)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내가 본 김철>(해냄출판사) 출판기념회가 지난 4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 ‘가치하다’에서 열렸다. 사진은 참가자들의 모습이다. ⓒ 강승혁
당산 김철의 생애

당산 김철은 1926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대에서 수학했으며,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사무총장을 지냈다. 1957년 민주혁신당 창당에 참여해 대변인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1961년 서상일·김성숙 등과 통일사회당을 창당해 국제국장으로 활약했다. 1970년 통일사회당 위원장에 선출됐으며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1969년 통일사회당이 우리나라 정당 최초로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정회원으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고, 1974년 런던과 1977년 도쿄의 SI 지도자회의, 1980년 마드리드 SI 대회 등에 참석해 국내의 독재 정치를 규탄하고 국제 연대를 도모했다. 국내에서는 1969년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했고,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을 주도하며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을 역임했으며, 긴급조치와 보안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신군부의 탄압 속에서도 1981년 사회당, 1985년 사회민주당 위원장에 각각 선출됐고 1984년 한국사회민주문화연구소를 창립했다. 1992년 소련·중국·유럽·중동 순방 이후 병마에 시달리다 1994년 눈을 감았다. 사후 2000년 <당산 김철 전집>(전 5권)이 출간됐다.

한편, <내가 본 김철>(부제 :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 ‘인간 김철’을 돌아보다)은 해냄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강승혁 기자

<2026-07-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인간 김철’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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