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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구미에 박정희 뿐이라고요? ‘충절의 고향’을 만든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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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한 독립운동가, 장진홍 의사

경북 구미를 대표하는 역사 인물은? 구미 시민은 물론, 전국 어디에서 물어도 남녀노소 같은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누구는 답변 대신 “이런 싱거운 사람을 보았나”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질문을 던졌고, 하나같이 이렇게 반문했다.

“구미에 박정희 대통령 말고 누가 있어?”

지금 구미는 박정희의 도시다. 현재 인구가 40여만 명에 이르는, 경북에서 포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곳이지만, 어딜 가나 박정희의 ‘유산’뿐이다. 그가 굴욕적인 한일 협정과 베트남 파병 등의 대가로 받은 차관을 종잣돈 삼아 고향에 전자공업 단지를 조성한 게 지금의 구미다.

구미의 진산인 금오산 자락에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이 널찍이 조성돼 있다. 그의 생가부터 동상, 그의 업적을 기리는 역사 자료관, 새마을운동 글로벌관 등이 세워져 있고, 여전히 공사 중이다. 그곳에 서면 발아래로 그가 세운 대규모 공업 단지가 내려다보인다.

인근 초등학교의 이름도 ‘정수 초등학교’다. 박정희의 ‘정’과 영부인인 육영수의 ‘수’를 이어 붙인 명명이다. 구미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간선도로 이름도 ‘박정희대로’이고, 구미 실내 체육관 이름도 ‘박정희 체육관’이다.

내달 1일, 제107주년 3.1절에 맞춰 열리는 구미시 주관 마라톤 대회의 이름 역시 ‘박정희 마라톤’이다. 구미 앞에 박정희는 실과 바늘처럼 늘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됐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예비후보의 현수막마다 세부 공약 대신 ‘박정희 정신’만 부르대는지 알 수 있다.

“영남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서 난다”

온통 박정희라는 세 글자에 뒤덮여 있지만, 구미가 배출한 역사 인물은 차고도 넘친다. 모르긴 해도, 역사 교과서에 실린 인물 수로만 치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거라고 본다. 옛말에 ‘조선에서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했다. 참고로, 선산은 지난 1995년 구미시와 도농 통합됐다.

고려 말 역성혁명에 반대하며 낙향해 후학 양성에 매진한 조선 사림의 뿌리 야은 길재와 대의명분을 내세워 훈구파에 맞선 영남 사림파의 영수 점필재 김종직이 첫손에 꼽힌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맞서다 처형당한 사육신의 한 사람인 단계 하위지도 구미에서 나고 자랐다.

▲사육신 중 한 명인 단계 하위지 선생의 묘소. 구미가 낳은 또 한 명의 역사 인물이다. ⓒ 서부원

국권 피탈 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의병 부대인 ’13도 창의군’의 군사장 왕산 허위도 빼놓을 수 없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군대마저 해산되면서 분기탱천한 ‘정미 의병’의 기세가 그를 중심으로 모였다. 당시 부친상을 당한 총대장 이인영을 대신해 의병을 이끌었다.

비록 동대문을 넘어서지 못하고 작전은 실패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엔 충분했다. 이듬해 일제는 ‘남한 대토벌’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의병들을 색출해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제1호 사형수’였고, 5.16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로부터 건국훈장의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가장 먼저 수훈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종조’다.

일제의 대표적 경제적 수탈 기관이었던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한 장진홍 의사 또한 구미를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부에 갈등이 커지고, 국내외 항일 투쟁이 침체한 가운데 벌어져 1920년대 말 독립운동에 큰 전환점이 됐다. 직후 저항의 확산을 막기 위한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열풍이 불었다.

▲낙동강 강변 동락공원에 자리한 장진홍 의사의 동상. 생가터에 세워놓은 걸 이곳으로 옮겼다. 왼쪽 뒤편에 구미 과학관 건물이 보이고, 오른쪽 뒤로는 퇴역한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 서부원

이 사건에 ‘청포도와 절정의 시인’ 이육사가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당시 대구 감옥에서 그가 부여받은 수감 번호가 264번이었고, 이를 계기로 이육사를 평생 필명이자 아호로 사용했다. 의열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다.

장진홍 의사의 무장 투쟁이 뇌리에 더욱 또렷이 각인된 이유는 그의 ‘기개’ 때문이다. 의거 후 그는 일본으로 도피했다가 지인의 밀고로 체포된 뒤 대구 감옥으로 압송됐다.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집행 하루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전한다. 고작 그의 나이 서른다섯 때였다.

“내 손으로 적을 죽이지 못하고, 적의 손에 내가 죽는 게 수치스럽다.”

이번에 구미를 찾아간 건 장진홍 의사를 알현하기 위해서였다. 기실 구미가 ‘충절의 고향’으로 알려진 건 그의 덕이 크다. 멀게는 고려 말 충신 길재로부터 사육신 하위지, 의병장 허위의 계보를 잇는 절개의 상징으로 우뚝하다. 그는 1962년 박정희로부터 건국훈장의 세 번째 등급인 독립장을 수훈했다.

‘충절의 고향’에 박정희는 어울리는 사람일까?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입구의 표지석. 직선으로 난 길 끝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 서부원

여담이지만, 예외 없이 구미 하면 떠올리는 박정희는 ‘충절의 고향’이라는 수식어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되레 반하는 인물이다. 일왕에게 혈서로써 충성을 맹세한 친일 군인으로, 해방 직후 남로당에 가입해 활동하다 여순 사건 후 극렬 반공주의자로 전향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남로당 전력을 세탁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박정희를 ‘숱한 변절과 배신을 통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권력 지향형 인물’로 규정한다.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간행한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그가 과연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인 허위 선생과 장진홍 의사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할 자격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여하튼 ‘충절’과는 거리가 먼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장진홍 의사의 동상은 낙동강 강변에 조성한 동락 공원에 있다. 중절모와 코트 차림에 다이너마이트를 오른손에 쥔 모습이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의 옥계동 생가터에 처음 세워졌다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지난 2013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동상이 반드시 생가터에 세워져야 할 이유는 없지만, 아파트 단지에 밀려난 모양새여서 뒷맛이 개운찮다. 그의 동상 주변은 성격과 내용이 다른 온갖 기념물이 세워져 있어 무척 어수선하다. 그저 갈 곳이 마땅찮은 기념물들을 공원의 빈터 한구석에 한데 모아놓은 느낌이다.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황진박 선생과 장윤상 선생의 기념비가 동상을 등진 채 서 있고, 그 옆엔 ‘유엔 참전용사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6.25 전쟁 당시 참전한 16개국의 국기가 기념물을 에워싸고 있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수류탄을 투척하는 조형물이 장진홍 의사의 그것과 사뭇 대조된다.

그 뒤로는 퇴역한 전투기와 장갑차들이 여전한 위용을 뽐내며 전시되어 있다. 주위를 거닐다 보면 마치 전쟁 기념관에라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국방부로부터 기부받은 거라고 하는데, 굳이 이곳에 온갖 무기들을 가져다 놓은 이유가 뭔지 궁금할 따름이다.

기실 이곳은 ‘구미 과학관’의 앞마당이다. 1970년대 초 정부 주도로 조성된 우리나라 전자공업의 발상지이자 첨단 과학기술 도시를 표방하는 구미를 상징하는 시설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낙동강 건너 왼쪽 부지가 굴지의 첨단 기업이 입주해 있는 구미 전자공업 단지다.

여느 과학관이라면, 과학기술 관련 기자재를 전시하거나 발전사를 보여주는 기념물을 세워놓았을 법하다. 그 자리를 독립운동가의 동상과 비석, 전쟁 기념물과 무기 등이 차지하고 있어 적잖이 생뚱맞다. 이곳에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독립운동, 6.25 전쟁 중 뭘 기리라는 뜻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온갖 것들을 뭉뚱그려놓은 이곳에 서서 새삼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의 ‘위용’을 떠올린다. 축구장 수십 개 면적의 알짜배기 땅을 박정희 한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내준 지방정부가 연관성을 찾기 힘든 기념물들을 공원 한구석에 한데 모아놓은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저들이 장진홍 의사를 내심 하찮게 여기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장진홍 의사 동상 주변의 어수선한 풍경.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새긴 비석과 전투기, 장갑차 등의 무기에 유엔 참전용사 조형물과 참전국의 국기까지 성격과 내용이 사뭇 다른 기념물들을 한데 모아놓았다. ⓒ 서부원

서부원 기자

<2026-03-01>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구미에 박정희 뿐이라고요? ‘충절의 고향’을 만든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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