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3군 사관학교 통합 논의 진행
‘사관’은 일본 식민 잔재라는 것이 중론
중·일·독도 장교 양성기관을 대학으로
‘군복 입은 시민’ 양성인 것과 일맥상통
국방부 ‘내란극복·미래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국방부 자문위)는 1월 22일 국방부 산하 장교 양성 통합기관인 특수목적 종합대학교 ‘국군사관대학교’ 설립을 제안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사관학교 통합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통합의 구체적인 방식과 입지 등을 둘러싸고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군 분야에 문외한인 필자는 국방부 자문위가 제안한 통합 사관학교 이름에서 ‘사관'(士官)을 뺄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장교 양성기관의 명칭에 한국과 중국, 일본의 차이를 살펴보자. 중국은 1924년 제1차 국공합작의 성과로 중국국민당 육군군관학교를 만들었다. 그 유명한 일명 황푸군관학교이다. 현재 중국의 장교 양성기관은 중국 인민해방군 국방대학이며 재학생을 학원이라 부른다.
일본은 메이지 1년인 1864년 병학교로 시작해 1874년 육군사관학교를 개교했지만 2차세계대전 패전으로 71년 만인 1945년 미군에 의해 폐지되었다. 이후 보안대학교를 거쳐 현재 방위대학교가 있다.
조선 시대는 무관과 그를 보좌하는 군관이 있었고 대한제국 시기인 1896년, 고종은 초급 무관 양성기관으로 육군무관학교를 만든다. 하지만 일제는 1907년 대한제국 군대 강제해산 후 1909년 순종을 겁박하여 육군무관학교마저 없앴다.

순종실록 3권(순종 2년 7월 30일)을 보면 “짐이 앞으로 신민들의 발달 정도를 보아 증병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까지는 군부와 무관 학교를 폐지한다. 현재의 군사는 궁중에 친위부(親衛府)를 설치하여 이를 관장하게 하고 사관 양성은 이를 일본국 정부에 위탁해서 군사 일에 숙달하게 하는 바이니 너희 백성들은 짐의 의도를 잘 헤아리라”하였다. 이처럼 무관이 사라진 자리를 사관이 대신했다.
국권 피탈 후 독립운동가들은 1911년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웠고, 임시정부는 1920년 ‘임시육군무관학교조례’를 제정하며 육군무관학교 부활을 꾀했다. 하지만 두 차례 졸업생을 배출하고 그만 뒀다. 해방 후 미군정은 1946년 5월 1일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를 창설하고 조선경비사관학교를 거쳐 1948년 9월 5일 육군사관학교로 개칭했다. 한마디로 일본에서 이미 사라진 사관학교가 한국에서 부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성진 전 경향신문 안보 전문기자는 주간경향 지난해 1월 3일치에 ‘육사 명칭은 일제 잔재’라는 명쾌한 기사를 쓴 바 있다. “일본제국 육사의 사관은 일본 봉건시대 무사인 사무라이의 개념과 맞닿아 있었다. 넓게 보면 메이지유신 이후 사무라이와 같은 세력을 사관으로 대체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조선과 대한제국에 ‘사관’은 없었다. 간부를 양성하는 개념으로는 ‘무관’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법규상에 무관은 ‘재외공관 무관 주재령’에만 남아 있다.

한중일 외에 장교 양성기관의 명칭을 살펴보면 미국은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영국은 Royal Military Academy Sandhurst, 프랑스는 Ecole Spéciale Militaire de Saint-Cyr(생시르 소재 군사학교), 캐나다는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 독일은 Universität der Bundeswehr(연방군 대학교)이다. 즉 장교 양성기관을 대학(교)으로 부르는 나라는 중국, 일본 그리고 독일이 대표적이다.

결론으로 일제 잔재 청산,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더하여 이재명 정부의 국방개혁이 ‘군복 입은 시민’ 양성을 포함하고 있음도 고려하여 통합 사관학교 이름으로 ‘국군대학교'(Military University of ROK)를 제안한다.
방학진 시민기자
<2026-02-04> 민들레
☞기사원문: 통합 사관학교 이름을 ‘국군대학교’로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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