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2‧3 내란 재판의 역사성과 문제점
손익찬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변호사
1. 12‧3 내란 재판의 역사성
주요 내란 사건은 헌법 개정과 맞물려 있는바,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제1차 개헌(부산정치파동) : 제헌 헌법상 대통령은 4년 중임제의 국회 간선제였다. 1950년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을 시도하였으나 1951년 1월에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이에 이승만은 군인을 동원하여 야당의원 47명을 연행(10명 구속)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회의원을 협박하였다. 다시 발의된 직선제 개헌안은 군인과 경찰이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가운데 통과되었다.
② 제5차 개헌(5‧16 군사반란) : 1960년 4‧19 혁명의 결과 민주정부가 수립되며 의원내각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육군 소장 박정희 등은 1961년 5‧16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국정을 장악했다. 그리고 군사반란 세력의 주도 하에 1963년 제5차 개헌안이 통과되었다(4년 중임제의 대통령 직선제).
③ 제7차 개헌(10월 유신) : 박정희는 1963년 및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되고 1969년에는 3선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3선).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목표로 1972년 10월에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해산하고, 야당 의원과 시민들을 납치, 고문하며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다. 결국 1972년 말에 대통령의 임기 제한을 없애고 직선제를 폐지하는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④ 제8차 개헌(12‧12, 5‧18) :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살해당한 이후에, 육군 소장 전두환 등이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1980년 5월에는 광주 민중을 학살하였다. 이 군사반란 세력의 주도하에 1980년 10월 제8차 개헌이 이뤄졌다.
이번 12‧3 내란은 부산정치파동, 10월유신과 같이 재직 중인 대통령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벌인 ‘친위쿠데타’라는 특징이 있다. 친위쿠데타는 기존 사회의 주류세력이 권력의 강화를 위해서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쉽게 정당화되기 마련이고, 실패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번 12‧3 내란은 친위쿠데타임에도 드물게 실패한 경우이고, 기득권의 견제를 뚫어가며 일반적인 사법절차에 의하여 심판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악조건 속에서 사법절차가 출발하게 되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2. 윤석열에 대한 체포, 서부지법폭동, 구속취소, 재구속에 이르기까지

고위공직자수사처(이하 ‘공수처’)는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윤석열은 대통령 관저에서 경호처 직원과 군인을 동원하여 농성전을 펼쳤고, 2025. 1. 3. 영장집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공수처는 2025. 1. 14. 두 번째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고 경찰 수천 명의 협조를 받아서 겨우 윤석열을 체포할 수 있었다. 이어서 공수처는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25. 1. 19. 오전 3시경 영장을 발부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윤석열 구속에 반대하는 폭도들은 법원 청사 내부에 난입하여 건물과 집기를 손괴하고, 영장 발부 판사를 살해하겠다며 찾아다니고 인근의 경찰과 민간인을 폭행했다(서부지법 폭동).
검찰은 2025. 1. 26. 윤석열을 내란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하였다. 윤석열 측은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 이하 ‘지귀연 재판부’)에 구속취소 청구를 하였다. 그리고 지귀연 재판부는 2025. 3. 7.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수사서류가 법원에 있던 기간을 구속기간에 불산입할 때는 날짜가 아닌 시간으로 산입해야 한다’라면서 윤석열의 경우 구속기간이 만료된 상태에서 기소가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구속취소를 결정하였다. 이 결정은 대한민국 법원이 설치된 이래 전례가 없었던 해석에 터잡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 보여준 검찰의 행태가 국민을 더욱 분노케 했다. 검찰은 항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이 결정을 바로잡지 않았고, 그럼에도 다른 사건에서는 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구속기간을 계산했다. 결국 윤석열은 석방 상태로 있다가 2025. 7. 10.에 이르러서야 재구속되었다.
위와 같은 일련의 사건은 ‘친위쿠데타’의 성격을 보여준다. 윤석열은 여전히 대통령이었으므로 무력으로 영장집행에 저항할 수 있었고, 공수처 또한 적극적으로 집행에 나서지 않다가 여론의 압박을 받고서 태도를 바꿨다. 경찰 또한 영장심사가 진행 중인 서부지법 청사가 폭도들에 의해 위협받는 상태였음에도 미리 해산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진압에 나섰다. 지귀연 부장판사 또한 전례 없는 법리를 근거로 내란 우두머리를 풀어줬고, 검찰은 항고하지 않음으로써 윤석열 단 한 명을 위한 법리가 성립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럼으로써 비상계엄은 형식적으로 해제되었지만 내란세력이 굴복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3. 12‧3 내란 재판의 주요 경과
가. 윤석열 내란 재판(서울중앙지방법원 2025고합129호(윤석열), 2024고합1522(김용현, 노상 원, 김용군), 2025고합51(조지호, 김봉식, 목현태, 윤승영))
대통령 윤석열, 국방부장관 김용현 등 퇴역군인, 경찰청장 조지호 등 경찰들은 검찰에 의해 내 란 우두머리와 주요임무행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주요 혐의를 요약하면, 계엄사령부를 구성해서 군대를 동원해 국회에 침입하여 계엄해제 의결을 저지한 것, 경찰을 통해 국회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방해한 것, 군인과 국가정보원 직원을 동원해 국회의원 등에 대한 체포조를 편성하여 운영한 것, 중앙선관위를 점거하고 서버를 반출하고 직원을 체포하려고 시도한 것, 경찰과 소방을 통해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를 시도한 것이다.
이 재판을 통해 윤석열의 지시를 받은 이진우 수방사령관이나 곽종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군인들이 국회의사당에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군인들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침입해서 서버 등을 확보하라는 점도 모두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나. 현역 군인들에 대한 재판(중앙지역군사법원 2024고26호(여인형, 이진우), 2025고1(박안수, 곽종근), 2025고2(문상호))
피고인 여인형은 육군방첩사령관, 이진우는 수도방위사령관, 박안수는 육군참모총장, 곽종근은 육군특수전사령관, 문상호는 정보사령관으로 이들은 모두 내란 당시에 현역 군인이었으므로 군사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사전에 계엄이 진행될 것임을 알고, 군부대를 국회·선관위·정치인 체포 등에 동원하여 내란의 주요임무종사에 종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재판 초기에는 혐의를 부인하였으나,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군인 옷을 벗더라도 항명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다. 국무위원들에 대한 재판(서울중앙지방법원 2025고합1172(이상민), 2025고합1219(한덕수))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과 전 국무총리 한덕수에 대한 공판이 시작되었는데, 이들 재판은 처음부터 영상으로 중계되었다. 내란 재판이 영상으로 중계됨에 따라 영상 증거나 증언을 전 국민이 생생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국민들은 계엄선포 직전에 있었던 국무회의의 cctv 영상을 통해서 한덕수, 김용현, 박성재, 이상민 등이 문건을 보면서 주도적으로 계엄을 준비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법정증언을 통해서 계엄선포의 절차적 정당성을 조작하기 위해서 사후에 국무회의 문건을 생산한 경위를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라. 윤석열의 체포 방해에 대한 추가 재판(서울중앙지방법원 2025고합1010(피고인 윤석열))
내란특검은 2025. 7. 19. 윤석열에 대한 추가기소를 하였는데, 이는 계엄선포 과정에서의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 계엄선포문의 사후작성, 계엄 관련 허위 공보,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 및 체포영장 집행 저지 등 5개 혐의에 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이다. 이 사건 또한 첫 재판부터 영상중계가 되고 있다.
4. 평가
윤석열 내란 사건을 배당받은 지귀연 부장판사는 △ 전례없는 구속취소 결정을 통한 석방, △ 고급 룸살롱 술접대 의혹, △ 변호인 측의 재판지연과 증인 겁박에 엄정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점 등에 관하여 비판받고 있다. 재판 지연도 문제인데, 박근혜 국정농단재판을 담당했던 김세윤 부장판사는 1주에 3회씩 총 105차례 공판을 진행하였고 여름이나 연말연시 2주 등에도 쉬지 않았다. 반면에 지귀연 재판부는 1주에 1회만 진행하면서 그마저도 여름 휴정기에는 재판을 쉬었고 그 결과 2025. 11. 2.를 기준으로 공판이 26회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김세윤 재판부가 5개의 국정농단 사건을 진행했었음을 감안하면, 지귀연 재판부가 3개의 재판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또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귀연 재판부에 새로운 사건을 배당하진 않았지만 기존 사건은 계속 진행하게 함으로써 윤석열 재판의 지연에 일조하였다.
위와 같이 지귀연 부장판사가 재판을 공정하지 않게 진행하고 있다는 의심이 계속되고, 피고인 측이 재판 진행을 방해함에도 재판부가 엄정하게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모습이 계속되자, 특별(전담)재판부를 통해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내란특검법이 2025. 9. 26. 개정되었고 개정법이 공포되고 한 달 후부터는 내란특검에 의해 공소제기된 사건은 영상중계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또한 서울고등법원은 내란특검 등 3특검에 의해 공소제기된 사건이 항소심에 올라오면 신속한 심리를 위해 집중심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상민·한덕수 재판은 첫 공판부터 영상으로 중계되고 있고, 윤석열의 사건도 영상으로 중계되고 있다.
한편 윤석열이 불성실하게 재판에 임하고 있는 것도 비판 거리다. 윤석열은 불구속 상태에서는 재판에 나오다가, 재구속된 2025. 7. 10. 10차 공판기일부터 25차 공판기일까지는 건강악화를 이유로 16차례 연속으로 불출석하였고 26차 공판기일인 2025. 10. 30.에 이르러서야 출석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재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의 신상이 걸린 보석사건의 심판에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출석하고, 면회 당시 측근들에게는 ‘술을 안 먹고 잠을 잘 자니 건강이 좋아졌다’라고 말하는 등, 재판 불출석은 거짓 사유에 근거하고 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아울러 전 법무부장관 박성재, 심우정 검찰총장, 대통령 비서실장 정진석, 대통령 경호실 소속의 박종준 처장, 김성훈 처장, 이광우 본부장,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 추경호 원내대표 등 국회 측 인사에 대해서는 아직 기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서울중앙지법은 박성재와 한덕수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하여 수사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윤석열 내란 세력에 대한 사법처리에 있어서는 ‘실패한 쿠데타’라는 점보다는 ‘친위쿠데타’라는 점에 보다 방점을 두었어야 했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인 대통령과 국무위원, 고위급 장성이 일으킨 친위쿠데타이므로, 사법부 구성원을 포함한 기득권 중 상당수는 내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내란에 심리적으로 동조하거나, 이해관계를 같이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사건의 처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 계엄령이 해제되었을 뿐이지 사회의 주류세력이 교체된 것은 아니고, 이들은 정치·경제·사회적인 힘을 토대로 여전히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특별(전담)재판부가 필요하다는 논의도 나왔지만, 민주시민사회 내에서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친위쿠데타를 도모했던 내란 세력을 완전하게 진압하는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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