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톺아보기 76]
군국가요의 원류인 일본 군가 음반
「이것이 바로 일본 군가」

이번 달에 소개하는 자료는 류영철 회원(대구지역위원회)이 일본 육군 수뇌부의 봉천회동 사진과 함께 기증한 일본 군가 음반 「이것이 바로 일본 군가(이」이다. 이 음반은 종이 케이스에 들어있는데 그 구성은 30cm 크기의 레코드 2장, 수록곡 목록과 가사, 여러 전쟁터 사진으로 구성된 내지와 구 일본 제국 시기의 임시소집영장, 군인칙유(軍人勅諭), 제국해군의 견장(肩章)으로 이루어진 광고물이다.
제작사는 현재도 음반 제작을 비롯한 각종 사업을 운용하고 있는 ‘일본 크라운 주식회사’(日本クラウン株式会社, Nippon Crown Co., Ltd.)로 1963년 도쿄에서 창립되어 1973년부터 1990년까지는 ‘크라운 레코드 주식회사’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2장 음반의 정식 레코드 번호는 GW10013과 GW-10014이다. 레코드와 내지, 광고물 어디에도 제작일자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앞의 일본 크라운 주식회사가 1963년부터 1972년까지 동일한 사명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것이 바로 일본 군가」 음반도 이 시기에 발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군가(軍歌)는 막부 말기 서양식 군대 훈련을 위해 도입된 후, 1882년 <발도대(抜刀隊)>1의 등장을 계기로 전 국민이 부르는 하나의 장르로 확립되었다. 청일전쟁 시기에는 전황을 전하는 뉴스이자 오락으로서 폭발적으로 유행했으나, 러일전쟁 때에 과도한 생산으로 인한 매너리즘에 빠져 전황 묘사보다는 특정 영웅을 찬양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평화기였던 다이쇼 시대에는 신작 대신 기존 멜로디에 가사만 바꾼 개사곡이 성행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군가 멜로디가 노동가나 반전가, 심지어 조선과 중국의 혁명가로 변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930년대 중일전쟁 이후 당국의 검열과 국책 협력 구조가 정착되었고,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바다에 가면(海行かば)>이 제2의 국가처럼 강요되는 등 속보성과 사상통제를 앞세운 총력전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이 바로 일본 군가」 음반에는 1891년 발표된 <적은 수만(敵は幾万)>이란 군가를 비롯해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각 시기별로 유행한 대표적인 군가 21곡이 수록되어 있다. 모든 노래는 과거 발매된 음반의 복각본(復刻本)이 아니라 1963년 이후 제작 당시 새로 편곡하고, 제작사 소속의 뮤지컬 아카데미와 크라운 오케스트라가 새로 연주한 음원들이다.
일본 군가 21곡 중에서 <토비행(討匪行)>과 <구단의 어머니(九段の母)>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토비행>은 1932년에 제작된 군가로 1931년 9월 만주사변 이후 일본군과 중국 각지의 군벌, 그리고 한국 독립군 사이에 전투가 치열하게 격화되던 시기에 등장한 곡이다. 관동군참모부 소속의 야기누마 다케오(八木沼丈夫)가 작사하고, 관동군의 의뢰를 받아 후지와라 요시에(藤原義江)가 작곡했으며 총 15개의 구절로 구성되어 있다. 항일 게릴라를 토벌하여 허울뿐인 왕도낙토, 오족협화의 만주국을 세워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고자 하는 일제의 야욕을 드러내는 내용이다.
어디까지 이어지는 진창이던가
사흘 두 밤을 굶은 채
빗줄기 물 튀기는 철모(1절)
아시아에 뿌리내린 나라, 우리 일본
왕사(王師)께서 한차례 나아가신다면
만몽(滿蒙)의 어둠은 맑게 개리라(15절)
<구단(九段)의 어머니>는 1939년에 발매된 이시마쓰 슈지(石松秋二) 작사, 노시로 하치로(能代八郞) 작곡의 군국가요이다. <군국의 어머니(軍國の母)> <황국의 어머니(皇國の母)>와 함께 이른바 ‘어머니 3부작’의 하나로 손꼽힌다.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상복을 입고 구단 언덕(도쿄의 야스쿠니 신사가 있는 언덕)을 올라가, 전쟁터에서 죽어 영령이 된 아들을 만난다는 내용이다. 더구나 일본 육군성에서는 이 노래를 ‘비상시국 가요’로 추천해 일본 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애국심 고양을 위한 선전 가요로 널리 이용하였다.
우에노역에서 구단까지/이제껏 모르고 살았던 막막함
지팡이에 의지해 온종일 걸려/내 새끼, 에미가 왔단다, 네가 보고파 왔단다(1절)
솔개가 매를 낳은 것 같아/이제 에미는 복에 겹구나
그저 금치훈장(金鵄勳章)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여기까지 왔단다 구단판(九段坂)에(4절)
이 군국가요는 1942년 12월 조명암이 작사하고 서영덕이 편곡한 <모자상봉(母子相逢)>으로 재탄생하였다. 당대 인기 가수 백년설이 불러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강건너 산을 넘어 수륙천리를/내 아들 보고지고 찾아온 서울(도쿄를 가리킴)
구단에 사쿠라가 만발했구나/아들아 내가 왔다 반가워 해다오(1절)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돌문에/신사당(야스쿠니 신사) 들어가는 발자욱마다
내 아들 천세만세 살아있는 곳/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집니다(2절)
두손을 합장하고 무릎을 꿇고/내 아들 군신(軍神) 앞에 절을 하오니
귓전에 사무치는 음성이 있소/꿈인가 생시런가 모자의 상봉(3절)
(출처: 유정천리·민족문제연구소, 『군국가요 40선: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고』, 2017)
• 박광종 특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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