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마당]
철원이 낳은 독립운동의 거목
우성 박용만 나신터 비석 제막식
김용빈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독립운동의 의지가 높았던 철원의 기운을 바로 세우고 우성 박용만선생의 독립정신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발자취를 기억하고 따르기 위한 나신터 비석 제막식 및 서세 97주기 추모제와 학술 세미나가 지난 10월 17일 선생의 생가터에서 열렸다.
1부 추모제와 제막식은 철원의 단체장, 이장님들과 주민분들 그리고 독립운동가 김철회선생의 후손분들, 독립기념관 이문원 초대관장, 실학 훼밀리 회원 여러분, 광복회 강원지부 김문덕회장, 박용만 선생의 친필로 비석 글씨를 집자한 날개 안상수선생, 대형초상화와 만장을 준비해서 달려오신 김건태선생일행, 그리고 선생의 유적비가 있는 철원초등학교 학생들, 화환을 보내온 우원식 국회의장 등 각계의 관심과 참여 속에 열렸다. 제막식 후에는 2부 행사로 ①선각자 박용만 선생의 활동과 독립운동사에서의 위상 ②1910~1920년대의 출판활동을 주제로 학술 세미나가 진지한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우성 박용만 선생(1881~1928)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 109번지에서 출생하여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해외에서 계몽운동가이자 언론인, 군인으로 독립의 길에 일생을 받친 독립운동의 거목이었다.
우성은 문무를 두루 갖춘 독립운동가로 미국의 네브라스카주에서 소년병학교를 세우고 독립을 위한 실질적인 무력 투쟁의 힘을 기르기 시작했고 하와이에서는 한인군사조직인 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하여 무력을 통한 독립투쟁을 줄기차게 준비하였습니다. 언론인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신한민보, 하와이에서 국민보의 주필 등으로 활동을 하였고 군사 학교에서 필요한 ‘군사수지’ 수첩을 저작하고 모국어를 잃어가는 이주 한인 2세대들을 위한 모국어 교육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국어 교과서 ‘조선말 독본’을 직접 저술 및 출판하였다. 미주 한인 사회에 조국 독립의 기치를 널리 함양하며 군자금 마련의 기틀을 마련해 냈다.
일찍이 무형정부론을 주창하며 임시정부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독립운동의 선각자로 미주에서 하와이 그리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북경까지 종횡무진하던 선생은 조국 독립을 위한 불타는 열정을 뒤로하고 비운의 인생을 마감한 지 언 97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조국에서도 특히 고향 철원에서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이승만과 정치적 숙적이라는 악연은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그를 그늘 속에 가리게 하였다. 97주기를 맞아 고향에서 주민들의 십시일반 정성 어린 성금을 모아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집터를 찾아 빛바랜 목비를 대신하여 용암 대지인 고향의 현무암으로 기단을 삼아 무궁토록 기억할 석비를 세우고 마음을 정갈히 제막식을 올렸다. 선생의 집터는 군부대 유휴지에 위치하여 공터를 온전히 찾을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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