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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뜨거움 이어갈 ‘시민사회처’ 설립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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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뜨거움 이어갈 ‘시민사회처’ 설립을 제안한다

방학진 기획실장

“마을은 민주주의 학습장”이라고 말한 토크빌이 지금의 한국을 보았다면 “광장은 민주주의 학습장”이라고 수정했을 것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 한국 민주공화정을 지켜낸 광장의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지속,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다. 이미 지난 3월 10일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현재는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과 야 6당은 연석회의를 통해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첫째, 내란수괴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고 처벌하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둘째, 내란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 내란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 흔들림없이 연대하겠습니다.
셋째, 내란의 재발방지를 위해 시급하고 필수적인 법제도 개선을 위해 협력하겠습니다.
넷째, 내란 세력의 심판과 재집권 저지를 위해 힘을 모으겠습니다.
다섯째, 차별과 혐오 정치를 배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를 함께 구현하겠습니다.
여섯째, 윤석열의 파면 이후에도 시민 참여가 보장된 가운데 민주주의 회복과 평화 실현, 사회대개혁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겠습니다.
일곱째, 이상의 공동의 결의를 이행할 방안에 대해 후속 협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원내 정당들이 참여한 원탁회의도 4월 15일 “사회대개혁, 기본권 강화, 지방분권 등 국가 미래 과제를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고, 차기 정부 국정과제로 실천”할 것을 선언했다. 이 두 개의 약속만 보면 대선 후 광장의 에너지, 즉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요구가 국정에 반영될 가능성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이러한 전망은 2017년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촛불시민혁명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민사회 관련 6개의 입법 과제를 제시했다. 하지만 21대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하나도 없었다.

촛불시민의 에너지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집권 초기의 구상은 실패했고, 시민사회는 여전히 오래전 만들어진 법규에 자신들의 활동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다. 마치 신병훈련소 조교가 훈련병들에게 ‘군복에 몸을 맞추라’는 식이다.

문재인 정부가 만든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 윤석열이 폐지

현행 대한민국 법령(법률, 대통령령, 부령)에는 ‘시민’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은 단지 ‘촛불’ ‘응원봉’ ‘키세스’ 등 은유 언어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는 2020년 5월 대통령령으로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2022년 10월 이마저도 폐지했다.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 활성화 정책을 점진적으로 진행했고 민주당 집권 때면 시민단체 출신 인사를 대거 입각시키고 영입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시민단체 출신인사가 최대로 입각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였던 경제민주화와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지는 못했다(조영호, 2022). 시민사회 활성화는 제도화 없이 단지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어공(특별 채용된 별정직이나 정무직, 계약직 공무원)’으로 만들어서 될 문제가 아니며 또한 ‘어공’은 ‘늘공(공개채용 통해 입직)’을 이기기도 어렵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제도화의 실패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① 정책결정권자의 의지 부족 ② 관료적 저항 내지 몰이해 ③ 전담 추진체계의 부재이다(박영선, 2023). 정책결정권자의 의지 부족에 대해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유리한 정치 환경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시민사회 관련 입법 추진 의지는 약했다(류홍번, 2021). 집권자의 정책 의지 부족은 곧바로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제도화를 가로막는 관료적 저항으로 표출됐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와 집권 민주당의 요구를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가로막았던 사례는 윤석열 검찰의 항명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 당시 관료적 저항의 상징적 사건이다. 국무총리 소속 심의위원회인 시민사회위원회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이 있었지만, 독자적 집행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물적, 인적, 제도적 토대가 마련되지 못한 채로 결국 윤석열의 등장을 맞이했다.

시민사회는 국가, 시장과 더불어 제3섹터로 인정받아야

윤석열 정부는 집권 첫해부터 시민사회를 압박했다. 시민단체와 노조를 이권 카르텔로 매도하며 회원 명부 제출,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 제출, 회계장부 제출, 공익활동실적 제출을 강요했다. 2023년 6월에는 등록요건 미충족을 이유로 비영리민간단체 2809곳을 직권 말소했다. 나아가 시민사회의 성과로 축적해 놓은 여러 분야의 예산도 대폭 삭감했는데 대표적으로 2023년 1조 1천억 원이었던 사회적경제 예산을 2024년에는 6천억 원이나 감액했고 기획재정부 사회적경제과와 협동조합과를 지속가능경제과로 축소 통합했다.

이러한 압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또다시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공화정을 지켜낸 시민사회는 이제 국가(제1섹터), 시장(제2섹터)과 더불어 당당하게 제3섹터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미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콘텐츠는 문재인 정부 당시 활동했던 제4기 시민사회위원회가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 활동 증진을 위한 기본계획’으로 잘 정리했다. 차기 정부에서 필요한 것은 똑같은 논의의 반복보다는 실천에 있다. 이에 필자는 과거의 실패 원인을 바탕으로 시민사회의 지속적 발전과 공익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전담 정부 부서 설립을 제안한다. 가칭 ‘시민사회처’라고 하겠다(제4기 시민사회위원으로 활동한 류홍번도 통합적인 시민사회 총괄 행정기구로 ‘시민사회청’ 설립을 제안했다).

시민사회처는 이미 중앙과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다양한 시민사회 관련 업무를 이관받는다. 따라서 특별히 비용이 추가될 여지도 적다. 시민사회처가 담당할 대표적인 분야로는 사회적경제(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소셜벤처)를 비롯해 마을공동체, 민주시민교육, 주민자치, 평생교육, 자원봉사, 도시재생 등이다. 이 분야들은 시민사회가 주창하여 이뤄낸 성과이자 대부분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시민들이 긴밀한 네트워크를 가지면서 이뤄지는 활동들이지만 중앙의 주무 부서가 각각 다르고 법적 근거도 모호하여 현장에서는 실행에 어려움이 많다. 마치 시민사회를 여러 정부 부서가 분할 통치하는 모양새다.

시민사회처 설립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김영삼 정부 시절 환경부 설립과 김대중 정부 시절 설립된 여성부의 경우를 상기한다면 그리 낯선 일도 아니다. 환경부와 여성부의 설립은 당시 집권자의 결단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 헌신한 환경과 여성운동가들의 성취이기도 하다. 물론 그 바탕에는 민주화의 진전과 시민사회의 연대가 있었음은 당연하다.

시민사회처는 앞선 시기 시민사회 활성화의 제도화 실패의 세 가지 원인으로 지적된 전담 추진체계 부재를 선제적으로 해소하여 혹시 모를 정책결정권자의 의지 부족과 관료적 저항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행정 부서 설립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광장의 에너지를 모아 공동체 발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논의를 기대한다.

• <오마이뉴스> 2025.4.18.

[참고문헌]
관계부처합동,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을 위한 기본계획」, 2021.
국무총리실 시민사회위원회, 『제4기 시민사회위원회 백서』, 2022.
류홍번, 「시민사회 3법 제·개정 추진의 의미와 과제」, 『시민사회 3법 입법 촉구를 위한 시민사회 토론회 자료집』, 2021.
박영선, 「문재인 정부의 시민사회 활성화 정책 평가」, 『시민사회와 NGO』, 2023.
이광희 외, 「시민사회 정책과 연구 관련 국제동향 종합조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22.
정화령, 「자르긴 쉬워도 되돌리긴 어려워…6천억 원 삭감으로 종결된 사경 예산」, 『라이프인』, 2023.12.28.
조영호, 「문재인 정부 평가: 정치, 경제, 사회」, 『의정연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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