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일본의 일상 속 우경화와 역사수정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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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글방 16]

일본의 일상 속 우경화와 역사수정주의(1)
– 일본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

김덕영 책임연구원

1.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수정주의

일본의 우경화는 겉과 속이 다른 모순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정치 외교적으로는 북한과 중국 위협론의 확대 재생산을 통해 친미, 반중, 반북을 기반으로 한 외교노선을 유지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식민지 시기 과거사 문제의 부정과 역사교과서 왜곡, ‘혐한’ 정서의 조성 등으로 끊임없는 정치적 갈등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의도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해법으로 대규모 군비 증강과 이를 위한 평화헌법의 개헌을 주장한다. 즉, 일본 우익의 소망인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와 군사국가화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주변국과 정치적 갈등을 계속 유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중일은 역동적인 경제적 교류와 협력을 하고 있다.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2019년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는데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의 수출을 규제한 것이다. 정치적 갈등을 경제적 갈등으로까지 확장한 이 조치는 한국에 거의 피해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 반도체 장비의 점유율 하락이라는 결과만 남긴채 2023년 해제됐다. 그리고 수출규제는 일본 내부에서도 일본정부의 오판으로 비판을 받았다.

일본이 노골적으로 우경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2000년대 이후 강경 우익 혹은 극우 성향의 인물들이 자민당을 장악하면서부터라고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노골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우익들은 패전 직후부터 이미 재무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1953년 이케다-로버트슨 회담 이후 일본 자위대 창설을 계기로 일본 우익은 일본 재무장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정지작업으로 1955년 1차 교과서 공격(왜곡)을 1982년 2차 공격을 감행했다. 2차 공격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는 독립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된다. 그리고 아베로 대표되는 일본 자민당 내 극우파의 집권 이후 2016년 일본 후쇼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시발점으로 하여 현재 2025년도판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 우익이 교과서 역사 왜곡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순히 갈등 유발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공세에 방점이 찍혀있다. 일본 우익은 일본 국민의 의식에서 역사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을 ‘수정’하고자 한다. 역사수정주의는 과거사에 대해 사실을 부정하거나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영역으로 관점을 바꾼다. 일제가 조선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침략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침탈에서 주변국을 보호한 것이며, 군 위안부는 강제 연행하지 않았고,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왜곡된 해석을 주입하는 것이다.

2. 일본 애니메이션에 주목한 이유

전세계 TV애니메이션 시장의 70%를 일본 애니메이션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공중파 TV를 비롯해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내 애니메이션 혹은 케이블TV의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의 경우도 방영물의 대다수가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즉, 일본 애니메이션은 MZ세대를 중심으로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 시점에서 필자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화두로 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좋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나쁜 일본 애니메이션을 구별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어떠한 결론을 내리며 재단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다. 어떤 애니메이션은 극우적 사상이 바탕이 됐으니 보지 마시라 식으로 주장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어떤 작품이든 보고 싶으면 보면 된다. 다만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인 애니메이션을 통해 일본 극우의 이데올로기 공격이 어떻게 일본인들의 가치관에 스며들어갔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애니메이션의 현실적 힘은 거기에 몰입한 사람의 사고방식과 지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애니메이션만이 이런 힘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인 예가 일본의 옴진리교이다. 도쿄 지하철 테러 발생 후 몇 달간 다각도로 옴진리교를 심층 분석한 『아사히신문』 등 일본언론이도달한결론은 “범인은 SF만화이다”였다. 어릴 적부터 SF 만화에 중독돼 살아온 이시하라 및 그 추종자들이 떼거리로 SF만화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히와타리 사키(日渡早紀)의 <나의 지구를 지켜줘>라는 작품이 가져온 기묘한 현상도 주의해 볼 만하다. 오래 전에 우주에서 달을 경유하여 지구에 도래한 우주인들이 윤회전생(輪回轉生)하여 현대의 지구에 살고 있다. 그들은 전생의 기억을 되살리려던 과정에서 모임을 갖기 시작하게 되고 점점 다가오는 지구의 위험에 대처하려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스토리이다. 이 작품과 거의 동시에 잡지사에 이상한 투서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전세(前世)에서는 00이라는 이름의 전사였습니다. **라는 이름을 가진 동지를 찾고 있습니다.’, ‘##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신 분은 연락 바랍니다.’라는 식의 것들이었다. 전생에 대해 믿는 10대의 여성들 사이에서 이렇듯 전생을 찾는 붐이 일어났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 때문에 위와 같이 극단적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문제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이 모호하고 허구가 진실보다 더 진실돼 보일 경우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걸러서 구분해줄 여과장치가 없을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 글에서 필자는 비록 모든 것을 다 걸러낼 수는 없겠지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일본 우경화에 미친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설명하고자 한다.

3. 일본 애니메이션의 발달과정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는 1917년 시모카와 헤코텐(下川凹天), 고무치 준이치(辛內純一), 기타야마 세이타로(北山淸太郞) 3인에 의해 시작됐다. 그들이 만든 첫 작품이 <문지기 이모가와 게이죠(竿川椋三 玄關番の卷)>이다.

1914년 일본에서 최초로 상영된 영국 애니메이션 <Isn’t it wonderful?>이 불러일으킨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3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은 특히 어린이에게 호응이 좋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1940년 일제가 영화법 시행령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1종 문화영화로 규정하면서 “만화영화는 소국민의 교육에 필요한 문화영화”라고 표현한 것은 이를 반증한다.

애니메이션을 1종 문화영화로 규정하면서 강제 상영을 시행했다는 것은 애니메이션이 갖는 효과를 선전의 도구로서 활용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결과 1942년 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세오 미쓰요(瀨尾光世)의 <모모타로의 바다 매(桃太郞の海鷹)>가 제작되었고 그 속편 <모모타로-바다의 신병(桃太郞-海の神兵)>이 1944년 제작되었다. 거의 같은 무렵에 마에다 이치(前田一), 아사노 게이(淺野惠)의 공동작품 <하늘의 공박사(上の空博士, 1944)>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은 아직 ‘어린이용’에 불과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현재와 같이 중요한 문화상품이자 예술의 위치를 차지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이는 만화(漫畵)와 그 맥락을 같이하며, 일본 만화의 거장 데쓰카 오사무(手塚治虫)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데쓰카 오사무는 아카혼(赤本)이라 불리던 싸구려 만화책에서부터 그의 작가인생을 시작했다. 비록 싸구려 만화책이었으나 많은 어린이 독자를 확보했던 그에게 “세상에 대한 패러디 즉 풍자가 담겨 있지 않은 만화는 기만에 가깝다”는 만화계 선배의 호된 질책은 그를 변화시켰다. 탄탄한 스토리와 메시지를 가진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데쓰카 오사무는 ‘만화의 분서갱유’라 일컫는 1953~1956년 ‘만화유무해’ 논쟁 시기에 오히려 그가 그린 만화의 작품성을 인정받는 기현상을 일으키며 만화 독자층을 성인으로까지 확산시킨다.

이후 데쓰카는 몇 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을 거쳐 TV시리즈물 애니메이션을 구상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보아온 <철완(鐵腕) 아톰>이다. 세계 최초로 일관된 줄거리로 몇 달, 몇 년씩 장기 방영되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이다.

<철완 아톰>은 당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사상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데쓰카의 ‘작은 철학’은 훗날 일본경제를 특징지운 ‘호송선단(護送船團)식 경영’ 등 독특한 일본형 경영을 낳는 모태의 하나가 됐다고 일본 현대사상 연구가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요컨대 데쓰카는 일본의 집단적 아이덴티티를 만든 선구자 중 하나인 것이다.

<철완 아톰> 다음으로 사회적 영향을 준 작품으로는 전공투(全學共鬪會議) 세대의 필독서 <내일의 조(한국판 허리케인 조)>, 어린이보다 어른들을 열광시킨 <우주전함 야마토(大和)> 등을 거치면서 현재 하루 천만 명이 일본 만화를 보며 해마다 무수한 애니메이션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날 일본 애니메이션은 전세계 TV애니메이션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위상을 갖게 되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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