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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 최남단 섬의 ‘위안부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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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부대가 있는 일본 육상자위대 미야코지마 주둔지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위안부 추모비’가 있는 작은 공터가 나온다. 어귀엔 한글과 일본어로 ‘아리랑비’라고 적힌 바위가 있다. 미야코지마/김소연 특파원

[특파원 칼럼] 김소연 | 도쿄 특파원

“일본군은 일본 식민지·점령지 여성들을 연행해 위안부가 되기를 강요했다. 여성들은 먼 이국땅에서 무참히 인격과 목숨을 짓밟혔다.”

지난 11일 오키나와 본토 복귀 50주년을 맞아 취재를 위해 미야코지마에 갔다가 그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추모비를 마주했다. 미야코지마는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로 1시간을 더 가야 나오는 섬이다. 2019~2020년 일본 자위대의 ‘미사일 부대’가 생기면서 평화롭던 섬은 달라졌다. 훈련장과 탄약 기지가 생기고 ‘03식 지대공미사일’, ‘12식 지대함미사일’ 등 이름도 생소한 최첨단 무기가 섬에 배치됐다.

미사일 부대가 있는 육상자위대 미야코지마 주둔지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위안부 추모비’가 있는 작은 공터가 나온다. 어귀엔 한글과 일본어로 ‘아리랑비’라고 적힌 바위가 있다. 이 외딴섬에도 당시 16곳의 위안소가 있었다. 매운 고추를 좋아하고 아리랑을 구슬프게 불렀던 조선인 위안부들을 기억하는 미야코지마 주민들과 한국의 연구자, 한·일 시민들이 힘을 합쳐 2008년 9월 추모비를 세웠다. 이 장소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빨래하고 돌아가던 길에 잠시 앉아서 쉬었던 곳이라고 한다.

위안부 추모비 바로 근처에는 태평양전쟁(1941~1945) 당시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는 노래비도 있다. 전쟁 막바지 미야코지마에는 약 3만명의 장병이 배치됐고, 지상전은 없었지만 연일 공습에 시달렸다. 연합군의 해상 봉쇄로 식량과 의약품이 끊기면서 영양실조와 질병 등으로 섬은 아비규환이 됐다. “미야코여, 8월은 지옥”이라고 울부짖던 일본군 위생병의 처참한 심정을 담은 노래비가 2005년 8월 주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섬사람들은 전쟁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추모비와 노래비를 세웠다. 하지만 미야코지마는 다시 평화를 위협받고 있다. 동·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커지면서 일본 정부는 미야코지마를 포함한 난세이제도에 미사일 부대를 배치하는 등 이곳을 군사기지화하고 있다.

‘힘 대 힘’의 대결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며 미야코지마 주민들은 긴 싸움을 하고 있다. 2015년 미사일 기지 건설 계획이 알려질 때부터 다양한 투쟁을 벌여왔다. 지금도 매주 수요일 오후 5~6시, 목요일 오전 9~10시에 시내와 미사일 부대 앞에서 선전전을 한다. 지난 11일 조금 일찍 도착해 선전전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이라 대형 펼침막을 전봇대에 묶는 작업에만 10분이 걸렸다. 오래 서 있기 힘들어 의자를 준비하고, 깃발을 꽂는 등의 준비가 끝나니 30분이 지났다. 이런 과정을 거친 선전전이 1649번이나 진행됐다.

평화를 바라는 미야코지마 주민들의 염원과 달리 국제 정세는 한층 암울해지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동·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위협은 여전히 거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4일 처음으로 한·일 순방에 나서 대중 포위망을 강화하고 북·러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이자, 북·중·러가 동시다발로 반격에 나섰다. ‘힘 대 힘’이 부딪치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안보’를 명분으로 펼쳐지는 지금의 대결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좀 희미한 느낌이다.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고 평화가 봄날같이 지구를 보듬을 전쟁 없는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 미야코지마 일본군 ‘위안부’ 추모비의 마지막 대목이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2022-05-26> 한겨레

☞기사원문: 일본 최남단 섬의 ‘위안부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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