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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이원수의 문학과 ‘친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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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冬原) 이원수는 한국 아동문학의 주춧돌 같은 작가다. leewonsu.co.kr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성장한 14세 소년 이원수(1912.1.5 ~ 1981.1.24)가 1926년 4월 소파 방정환의 월간지 ‘어린이’에 동시 ‘고향의 봄’을 기고해 등단했다. 1922년 마산으로 이사한 그가 그리워한 ‘꽃대궐’ 고향은 창원 소답리(현 소답동)였다. 그의 시는 홍난파가 곡을 붙여 동요로 널리 알려졌고, ‘고향의 봄’은 해방의 알레고리로도 이해됐다.

이원수보다 다섯 달 이른 1925년 11월호 등단작은 경기 수원 과수원 집 딸 최순애(1914~1998)의 ‘오빠 생각’이었다. 그 시에는 박태준이 곡을 지어 일제강점기 애틋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조를 피식민인들의 마음에 새겼다. 시에 반해 최순애를 동경하던 소년 이원수는 등단 후 최순애에게 편지를 썼고, 둘의 펜팔은 서로의 사진을 주고받으며 7년여간 이어졌다. 경남 함안 금융조합에 취업한 이원수가 독서회 사건으로 치른 1년여 옥고의 시간도 껴 있었다. 최순애가 시로 그리워한 ‘오빠’의 얼굴도 점차 사진 속 이원수로 오버랩되곤 했을 것이다. 동화 같은 사랑은 1936년 결혼으로 여물었고, 둘은 해로하며 3남3녀를 낳았다.

부부는 방정환, 윤석중 등과 함께 불모지였던 조선 아동문학계를 일군 주역으로 활약했고, 특히 이원수는 다수의 비평을 통해 아동문학이론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실주의적 저항적 성격의 그의 작품 중에는, 가수 이연실이 불러 인기를 끈 ‘찔레꽃’도 있다.

1942년 이후 그는 ‘지원병을 보내며’ 등 다섯 편의 친일 작품을 썼고, 그 때문에 해방 후 아동문학가로서 이룬 성취, 명예와 별개로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들었다.

2003년 경남 창원시는 ‘고향의 봄 도서관’과 이원수 문학관을 건립하며 그의 삶과 사랑과 문학적 성취 외에 친일 행적도 함께 전시했다. 몇 편의 친일 시가 시인의 생애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단죄의 물증이 아니라 반성, 자성의 계기일 수 있음을 보여준 귀한 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2022-01-05> 한국일보

☞기사원문: 기억할 오늘, 이원수의 문학과 ‘친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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