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한겨레] ‘분지’의 작가 남정현 별세

236

반공법 위반으로 고문과 재판 겪어
‘허허 선생’ 연작으로 왜곡된 사회구조 풍자도

2018년 7월 산문집 <엄마 아 우리 엄마>를 내고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작가 남정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소설 ‘분지’의 작가 남정현이 21일 오전 10시에 별세했다. 향년 87.

1933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대전사범학교를 나온 남정현은 몇달 간 교사 생활을 했으나 지병인 결핵 때문에 곧 그만두고 치료를 받으며 습작을 했다. 1958~9년 <자유문학>에 ‘경고구역’과 ‘굴뚝 밑의 유산’이 추천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1961년 중편 ‘너는 뭐냐’로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일약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그러나 1965년에 발표한 단편 ‘분지’가 북한의 기관지 <조국통일>에 전재되면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된 그는 1967년 고등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기까지 고문을 당하고 재판을 받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분지’는 홍길동의 10대손인 홍만수를 주인공 삼은 소설로 반미 의식이 충만한 작품이다. 홍만수의 어머니는 미군에게 강간당한 충격으로 세상을 떴고 누이동생은 미군 상사 스미스와 동거를 하며 성적 학대를 당한다. 그에 분노한 만수가 스미스 상사의 아내를 겁탈하고 향미산으로 들어가 숨자, 미국 펜타곤이 핵미사일을 동원해 향미산을 폭격하려 한다는 것이 소설의 얼개다.

‘분지’ 필화사건은 창작의 자유를 옥죄고 감시·처벌하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전횡과 횡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남정현은 ‘분지’ 필화 사건 뒤에도 ‘허허 선생’ 연작을 발표하며 창작 의욕을 이어나갔으나 1974년 대통령긴급조치 1호 위반혐의로 다시 구속되어 반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고 1980년에도 예비 검속으로 구속되는 등 고난이 그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창작 활동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1973년 ‘허허 선생 1’로 시작해 1992년 ‘허허 선생 옷 벗을라’까지 모두 8편으로 완성된 ‘허허 선생’ 연작은 일제 순사 출신으로 해방 뒤에도 승승장구하는 주인공 허허 선생을 통해 한국 사회의 왜곡된 구조를 풍자한 작품이다. 남정현 자신에 따르면 허허 선생은 “역사적으로 누대에 걸친 수수백년 동안 오로지 일신의 영화만을 탐한 나머지 언제나 침략세력이었던 외세와 늘 한통속이 되어 나라와 민중의 이익을 열심히 짓밟은 지배계층 공통의 반인간적이며 반민족적인 그 못돼먹은 의식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타기할 인물”을 대표한다. ‘분지’와 ‘허허 선생’ 연작에서 보듯 남정현의 소설은 풍자와 반어의 기법을 통해 강렬한 민족주의 및 반외세 의식을 표현하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삼는다. 문학평론가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은 “남정현 소설은 한 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마치 전자현미경처럼 확대시켜 이를 만화풍으로 소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남정현은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고문과 한국펜클럽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문학 창작과 현실적 실천을 병행했다. 1990년에는 일본 도쿄와 교토 등에서 열린 국제평화포럼에 참가해 주제발표를 했으며 1992년에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세계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인대회에 참가하는 등 국제 문학 교류에도 힘썼다. 2002년에는 <남정현 문학전집>(전3권)을 출간했으며 2004년에는 <남정현 대표소설선집>을 내기도 했으나 만년에는 건강이 나빠져서 집필과 외부 활동을 줄이고 칩거했다.

그가 2011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 ‘편지 한 통-미 제국주의 전상서’는 국가보안법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자신의 조물주이자 상전인 ‘미 제국주의’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북한의 핵 억지력이라는 현실 위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 오가는 평화협정 논의를 불안하고 불만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는 국가보안법의 목소리를 빌려 작가 특유의 민족주의와 반미주의를 선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남정현은 2018년 산문집 <엄마 아 우리 엄마>를 내고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문학은 인간을 사랑하는 작업”이라며 “인간은 사회에 발 디디고 서 있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작가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작가는 사회를 형성하는 정치, 경제, 문화를 깊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1987년에 낸 대표작품선 <분지>에 쓴 ‘작가의 말’에서도 그는 “글을 쓴다는 것은 은폐된 진실을 찾아내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감행되는 현실과의 가열한 싸움”이라고 썼다. 평생 글과 행동으로 현실에 맞서 싸우며 진실을 찾고자 했던 개결한 작가 남정현이 영원한 휴식에 들었다. 고인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 주는 제12회 민족예술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돈희(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장학부장)씨와 딸 진희(전업주부)씨, 며느리 나명주(참교육학부모회 전국회장)씨, 사위 우승훈(마취과 의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3일 오전에 있다. (02)2072-2010.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1965년 발표한 단편소설 ‘분지’ 때문에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작가 남정현이 1967년 5월2일 1심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한승헌 제공

<2020-12-22> 한겨레 

☞기사원문: ‘분지’의 작가 남정현 별세

※관련기사 

☞프레시안: 풍자소설 <분지> 등 소설가 남정현 선생 별세

☞한겨레: “40킬로 체구로 광란의 역사 맞선 ‘오기’ 어찌 접고 가십니까”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