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군부대 소재지를 일컬어 ‘◯◯대(臺)’라는 별칭이 생겨난 연유는? 일본천황이 육군사관학교에 ‘상무대’로 하사한 것이 최초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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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비망록 59]

군부대 소재지를 일컬어 ‘◯◯대(臺)’라는 별칭이 생겨난 연유는?
일본천황이 육군사관학교에 ‘상무대’로 하사한 것이 최초 용례

이순우 책임연구원

 

이른바 ‘7080세대’이면서 수도권대학에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무대(文武臺)라는 명칭에 대해 아련한 기억 한 자락씩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해묵은 자료를 뒤져보니 ‘김신조 사건(1.21사태)’으로 촉발된 안보위기를 빌미로 대학생을 상대로 한 군사교육(교양필수과목으로 교련과목을 설정)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69년이었다.

<동아일보> 1976년 6월 29일자에 수록된 학생병영훈련소 즉, ‘문무대’ 준공 관련 보도내용이다.

 

여기에 더하여 1975년에 월남이 패망하자 유신체제 하의 군사정권은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총력안보(總力安保)라는 구호를 앞세워 그 이듬해부터 이른바 ‘병영집체훈련’이라는 제도를 장착하였다. 이때 긴급하게 경기도 성남시에 ‘학생병영훈련소’가 만들어졌으며, 여기에 붙여진 이름이 ‘문무대’였던 것이다.
<동아일보> 1976년 6월 29일자에 수록된 「학생병영훈련소(學生兵營訓鍊所), ‘문무대’ 준공」 제하의 기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대학생 병영훈련의 도장이 될 학생병영훈련소가 준공, 28일 오후 〇〇지역 현장에서 이세호(李世鎬) 육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 및 현판식이 있었다. 박(朴) 대통령의 휘호로 ‘문무대(文武臺)’라 명명된 이 훈련소에는 7월 1일부터 11월 중순까지 전국 57개 대학 일반군사교육 대상자 중 1학년 일부가 단계적으로 입영, 10일간의 집체교육을 받게 된다.

 

더구나 이곳에는 1977년 4월 14일에 이은상(李殷相)이 지은 건립취지문을 덧붙여 박정희대통령의 휘호를 새긴 문무탑(文武塔)이 건립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후 1981년에는 ‘전방부대 입소교’이란 것이 생겨나 철책선 경계근무가 추가되었고, 재학생 입영연기와 더불어 최대 6개월의 복무기간 단축이라는 혜택 아닌 혜택이 주어졌던 대학생 군사교육제도는 민주화 과정의 초입에 들어선 1989년에 와서야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런데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면 군부대의 이름을 ‘무슨무슨대’라고 부르는 사례는 생각보다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구태여 군대를 직접 체험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명칭을 접하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논산훈련소를 ‘연무대’라고 하는 것이 그러하고,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상무대’라든가 육군사관학교를 일컫는 ‘화랑대’, 그리고 육해공군본부가 터를 잡은 ‘계룡대’와 같은 곳도 일상용어처럼 자주 언급되는 공간이다. 어쩌다가 군부대에 면회를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문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큰 돌에 ‘〇〇대(臺)’라고 새겨진 휘호비(揮毫碑)를 목격하곤 했던 것도 제법 익숙한 풍경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군부대의 이름을 ‘무슨무슨대’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일이었을까? 대(臺)라는 것은 원래 사전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대개 “인위적으로 쌓은 것이건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건 간에,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고 평평한 공간 또는 그러한 곳에 조성된 건축물”이라는 뜻으로 새겨지는 말이다.

 

<매일신보> 1937년 12월 21일자에는 일본 천황에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임석한 내용과 더불어 이곳 소재지에 대해 ‘상무대(相武台)’라는 명칭을 하사하였다는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매일신보> 1943년 6월 4일자에 수록된 일본 카나가와현 소재 육군사관학교 탐방기에는 이곳 교정에 건립된 ‘상무대’ 휘호비의 모습이 함께 소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속리산 문장대(文藏臺)라든가 남한산성 수어장대(守禦將臺)라든가 부산 영도 태종대(太宗臺)라든가 하는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높고 평평한 지형’이라고 하는 범주와는 결코 거리가 먼 군부대 소재지, 그것도 전 지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무슨무슨대’라고 부르는 것은 애당초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말이다. 알고 봤더니 여기에도 결코 그냥 흘려듣기 어려운 군국주의 시절의 일제가 남긴 유습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흔적들이 속속 드러난다.
우선 이에 관해서는 <매일신보> 1937년 12월 21일자에 수록된 「육사소재지(陸士所在地)에 신명칭 어하사(新名稱 御下賜)」라는 제목의 기사가 퍼뜩 눈에 띈다.

 

[도쿄전화(東京電話)] 대원수폐하(大元帥陛下)께옵서는 20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어임석(御臨席)하옵시기 위하여 신장(新裝)한 카나가와현 자마(神奈川縣 座間)의 동교에 처음으로 행행(行幸)하옵시었는데 졸업식 종료후 오후 2시 본관 2층 어좌소(御座所)에 스기야마 육상(杉山 陸相, 육군대신), 하타 교육총감(畑 敎育總監)을 어소(御召)하옵시고 동교 소재지에 대하사 상무대(相武台, 소부다이)의 명칭을 하사(下賜)하옵신 지(旨)를 궁내성(宮內省)으로부터 발표되었다.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는 이른바 ‘황군(皇軍)’의 근간을 이루는 육군장교를 배출하는 기관이 니만큼 해마다 졸업식에는 일본천황이 직접 임석하는 것이 오랜 관례였다. 특히, 1937년에는 육군사관학교 본과(本科)를 도쿄 신쥬쿠(東京 新宿)의 이치가야혼무라쵸(市ケ谷本村町)에서 카나가와현 코자군 자마촌(神奈川縣 高座郡 座間村)으로 신축 이전하였는데, 이때의 졸업식은 이러한 소재지 변경 이후에 최초로 거행되는 행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일본천황이 새로운 육군사관학교 소재지에 대해 하사한 명칭이 ‘상무대’였던 것이다. 이 이름은 이곳이 역사적으로 사가미노쿠니(相模國)의 옛터에 속하고 바로 이러한 유서깊은 곳에서 무(武)를 연마한다는 뜻에서 명명된 것으로 알려진다. 옛 사관학교 자리가 언덕위의 평지를 차지하고 있었던 탓에 통칭 ‘이치가야다이(市ケ谷台)’라고 부른 전례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지형과는 무관하게 벌판에 자리한 군사학교 소재지 전체에 대해, 그것도 천황의 명명에 의해 ‘무슨무슨대’라는 명칭이 하사된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

 

이로부터 몇 해가 흘러 1941년 3월 28일에 사이타마현 토요오카쵸(埼玉縣 豊岡町)에 자리한 육군항공사관학교(陸軍航空士官學校)에 일본천황이 이곳을 찾았을 때 다시 수무대(修武臺, 슈부다이)라는 명칭이 하사되는 일이 이어졌다. 또한 1943년 12월 9일에는 사이타마현 아사카(埼玉縣 朝霞)에 있는 육군예과사관학교(陸軍豫科士官學校)에 행차하였을 때도 직접 이곳 일대의 대지(臺地)에 대해 ‘진무대(振武臺, 신부다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진무’라는 표현은 중국 고전인 <국어(國語)> ‘진어편(晉語篇)’에 나오는 “임금은 그 백성을 형벌하여 바로 잡은 후에 밖으로 무위를 떨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으로 조화로 우면 밖으로 위무가 드러나게 된다.(君人者 刑其民 成而後 振武於外 是以內龢而外威)”는 구절에서 취한 것으로 ‘무비(武備)를 진작(振作)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일제 패망 직전인 1945년 3월 13일에는 도쿄육군유년학교(東京陸軍幼年學校)의 졸업식 때 일본천황이 차견(差遣)한 황족 조향궁(朝香宮, 아사카노미야)에 의해 이곳 소재지에 대해 ‘건무대(建武臺, 켄부다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매일신보> 1942년 10월 20일자에 수록된 일본 사이타마현 소재 육군항공사관학교 탐방기에는 이곳 교정에 건립된 ‘수무대’ 휘호비의 모습이 함께 소개되어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에 자리한 육군예과사관학교에 대해 소재지 전체의 명칭으로 ‘진무대(振武臺)’라는 이름이 하사 되었다는 소식이 수록된 <매일신보> 1943년 12월 11일자의 보도내용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무(武)’자 돌림의 소재지 명칭하사가 거듭되다 보니, 여타의 군사학교 등 지에도 ‘무슨무슨대’라고 부르는 방식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만주국 육군군관학교(통칭 ‘신경군관학교’)의 경우에도, 학교 소재지를 ‘동덕대(同德台)’라는 별칭으로 불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일본천황이 머지않아 침략전쟁의 선봉에 설 일본군 예비장교들을 독려할 목적으로 여러 사관학교의 소재지 명칭으로 ‘〇〇대(臺)’를 잇따라 하사한 것은 그야말로 군국주의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의 전형적인 소산물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일제가 즐겨 사용했던 이러한 명명법은 해방 이후 단절되기는커녕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을 맞이하여 되레 별다른 고민의 여지도 없이 그대로 차용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전라남도 광주에 신설된 육군종합학교에 대한 기지명명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을 ‘상무대(尙武臺)’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는 소식이 수록된 <경향신문> 1952년 1월 9일자의 보도내용이다.

 

이러한 흔적들 가운데 가장 빠른 용례는 한국전쟁 시기인 1951년 11월 1일에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설치된 ‘육군제2훈련소’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휘호를 내려 명명한 ‘연무대(鍊武臺)’였다. 곧이어 1952년 1월 6일에는 전라남도 광주에 개설된 육군종합학교에 대해서도 대통령에 의해 ‘상무대(尙武臺)’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이에 관해서는 <경향신문> 1952년 1월 9일자에 수록된 「육군종합학교 기지 결정, 대통령 상무대라 명명」 제하의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이 대통령은 6일 광주 육군종합학교 기지 명명식 석상에서 요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벤프리트 장군 이하 여러 장병과 내외 귀빈 앞에 우리 국군의 보병, 포병, 통신병학교 개교식을 하게 된 데 대하여 이 훈련장에 이름을 지으라고 해서 상무대(尙武臺)라고 하였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군인을 양성하고 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평화를 숭상하고 수호하기 위함과 같이 우리도 상무를 한다면 그와 같은 것이다. 미국이 전력을 다하여 우리들을 돕고 유엔 각국이 우리와 같이 어깨를 겨누고 이 전쟁을 해 나가는 것을 우리는 영광으로 알 것이며 우리는 국군을 강대하게 만들어서 국방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에 협력해서 세계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평화수호군대의 선봉이 될 것이다. (하략)

 

 

박정희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에 대해 ‘성무대(星武臺)’라고 명명한 사실을 알리는 <경향신문> 1966년 5월 13일자의 보도내용이다.

 

 

이러한 방식은 5.16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사정권 시절로 접어들면서 더욱 성행하게 되어 1966년 4월에는 공군사관학교 소재지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의 명명으로 ‘성무대(星武臺)’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 이후에도 전국 각처에 새로운 군사편제에 따른 상급단위의 군부대가 설치되거나 각종 군사학교가 만들어질 때마다 ‘무슨무슨대’라는 식의 이름이 붙여지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였다.
혹여 누군가는 우리들 역시 과거시험장이기도 했던 곳에 대해 경무대(景武臺)라든가 춘당대(春塘臺)라든가 하는 표현을 사용한 전통이 있었고, 수원 화성에도 연무대(鍊武臺)라는 시설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사실관계에 대한 반론을 제기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궁궐 안의 누대(樓臺)와 그 앞에 펼쳐진 일정한 공간에 국한된 명칭이거나 건축물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므로 군부대 소재지 전체를 일컫는 ‘무슨무슨대’라는 부르는 방식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부분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군사교육시설을 대상으로 ‘무(武)’자 돌림의 이름이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손으로 작명되어 붙여지는 형태가 일본제국의 그것과 고스란히 닮아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여러 군부대 소재지마다 ‘〇〇대(臺)’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일제 군국주의 시절의 소산물과 직접 맞닿아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지금에라도 이러한 명명법을 개선하거나 청산하는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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