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백년전쟁 재판 방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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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기]

백년전쟁 재판 방청기

권시용 선임연구원

“주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순식간에 끝났다. 재판장이 하는 말을 요령 있게 잘 받아 적어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던 순간이었다. 기쁨에 앞서 뭐 이렇게 빨리 끝나버리는 건지, 허탈함이 앞섰다. 피고인석에 서있던 김지영 감독과 최진아 피디를 비롯해 방청하러 온 임헌영 소장, 조세열 이사 등 연구소 상근자들은 판사의 선고가 끝나기 무섭게 법정 문을 나섰다. 다음 재판이 곧장 이어지기 때문에 법정 안에서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법정 밖 복도에서 우리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악수하고 얼싸안았다. 짧았던 선고가 몰고 온 어안이 벙벙함이 지나자 기쁨이 찾아왔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걸 지켜보며 결과를 낙관했다.
그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생각이었다. 1심 판결에서 무죄를 받았고,

항소심 과정에서 검찰은 별다른 증거를 새로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엔 불안이 남아있었다. 우리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그토록 컸다.

 

7년전쟁
참 오래도 걸렸다. 다큐영화 ‘백년전쟁’에 대해 고 이승만 전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이 들어왔다. 그게 2013년 5월이었다. 영화 개봉이 그 전 해 11월이었고, 그해 3월 이인호씨가 박근혜 전대통령에게 이를 얘기하고 박 대통령이 수첩에 메모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러자 조선일보 뉴데일리 등 수구언론이 ‘좌파의 선전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영상물로 규정하고 공세에 열을 올렸다. 국정원은 전경련을 동원해 이승만 지지세력이 만드는 대응 영상에 제작비를 지원했다. 당시 교육부도 백년전쟁 대응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촛불혁명이 있었기에 뒤늦게나마 박근혜 정권의 사법농단을 밝혀낼 수 있었다.
검찰 조사는 그해 연말부터 시작되었다. 김지영 감독이 첫 소환조사를 받은 날이 201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참 낭만 없는 검사들이란 생각을 했다. 얼마 안 있어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에서 공안부로 넘어갔다. 죽은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사건이 갑자기 국가안보나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는 공안사건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리고 1년여에 걸쳐 김 감독과 최 피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사무총장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다. 연구소는 이미 고소장이 접수된 직후부터 소송준비에 들어갔다. 김희수 변호사, 이민석 변호사가 팔을 걷고 나섰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연구소 일이라면 열일 제쳐놓고 도와준다. 검찰측의 12가지 고소 항목 하나하나를 놓고 착실히 준비했다. 여름휴가를 반납한 변호사들
과 함께 자료를 정리하고 변론의견서를 작성했다. 이때 준비한 변론의견서는 이후 진행된 1심, 2심 재판에서 훌륭한 방어막이자 날카로운 공격 무기가 되었다. 연구소는 그해 5월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 내용이 충분한 자료를 근거로 제작되었음을, 그리고 박근혜 정권과 수구세력의 공세가 결국 민족문제연구소를 향하고 있음을 밝히고 회원 및 국민들의 성원을 부탁했다. 2013년 여름은 그렇게 뜨거웠다.

국민참여재판
검찰의 기소는 3년이나 지나 이뤄졌다. 공소시효를 열흘 앞둔 때였다. 12가지 고소 항목 중 1가지 사안(맨액트 사건)만을 가지고 기소했다. 1년간의 피고소인 조사, 3년이 넘는 검토를 거쳐 나온 이 기소에 대해 우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공소권 남용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1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했다. 2018년 8월 27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검사와 변호인단의 공방이 이어졌다. 양측은 전문가를 증인으로 불러 이승만이란 인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평가, 다큐영화의 속성과 지향점을 따졌다. 각자 준비한 PT자료를 제시하며 주장을 펼쳤다.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역사법정이었다.
8월 29일 새벽 2시. 3시간을 넘겨 배심원단의 평결이 내려졌다. 법원 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시간, 311호 법정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전날 재판도 밤늦게까지 진행되었으니 법정에 모인 모두가 피곤에 지친 얼굴이었다. 이승만 지지 세력도 우리도, 그리고 기자들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몰래 들으니 어떤 중앙 일간지는 그날 1면을 비워두고 판결 결과를 기다렸다고 한다. 배심원들 얼굴부터 살폈다. 피곤할 법도 한데 밝은 인상이다. 왠지 홀가분한 표정이다. 마음이 좀 놓이고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남에게 불행을 안길 결정을 했다면 밝은 표정일리가 없다. 그래도 막상 재판장이 결정문을 읽기 시작하자 두 손을 마주 잡게 되었다.
판사가 배심원 9명의 평결을 발표했다.
“김지영 유죄1 무죄8. 최진아 유죄2 무죄7. ”백년전쟁 제작팀은 무죄였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법원 로비에서 우리는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피로와 졸음이 다 날아갔다. 마침 그날은 1910년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졌던 경술국치일이었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일이었다. 박물관 개관식에 모인 많은 사람들도 이 소식에 환호했다.

2019년 6월 27일
검찰은 항소했다. 1심 승소의 기쁨 속에서 2심을 준비했다. 2018년 12월 13일 첫 재판이 시작되었다. 뭔가 불안했다. 재판장이 정*식 판사였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주고 한명숙 총리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전력으로 논란이 되던 사람이었다. 검찰과 사법부가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여기저기서 걱정하는 얘기가 들려왔다.
두 번째 재판이 열리던 날, 재판장이 바뀌었다. 정 판사는 승진해서 회생법원장이 됐다고 한다. 큰 고비를 넘겼다며 다행이라 생각했다. 우리끼리는 ‘독립운동가들이 하늘에서 돕고 있다’는 얘기도 나눴다. 이후 재판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됐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걸 지켜보며 결과를 낙관했다. 그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생각이었다.
1심 판결에서 무죄를 받았고, 항소심 과정에서 검찰은 별다른 증거를 새로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엔 불안이 남아있었다. 우리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그토록 컸다. 사법농단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멀리 가지 않아도 백년전쟁을 방영했다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시민방송(RTV) 소송을 봐도 알 수 있다. 행정소송을 다루는 판사가 자의적으로 명예훼손 판단까지 내려버리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좌절했던가. 심지어 판결문에 5.16군사정변을 혁명이라 표현하기도 했으니 백년전쟁과 연구소를 대하는 정권과 거기에 발 맞춘 법원의 맨얼굴을 그렇게 확인했다. 이 재판은 아직 대법원 판결을 남겨놓고 있다. 이번 백년전쟁 명예훼손 재판이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2019년 6월 27일, 결국 2심에서도 백년전쟁 제작팀은 무죄가 나왔다.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지만 그 당연한 결정이 나오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고 형사소송은 이렇게 종결되었다. 민사소송은 공소시효가 지났으므로 백년전쟁이 더 이상 송사에 휘말릴 일은 없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이제 백년전쟁 명예훼손 재판은 완전히 끝났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김희수 변호사는 변론의견서를 쓰고 재판의 쟁점을 정확히 지적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지켜주었다. 이민석 변호사, 양홍석 변호사, 최병모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의 숨가쁜 순간을 함께 했다. 강성률 교수와 김민철 교수는 재판 증인으로 나서 배심원들에게 역사적 사실의 추구란 어떤 것인지, 다큐영화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2심 재판을 맡아준 이재호 변호사의 담담함도 인상 깊었다. 제일 힘든 시간을 보낸 김지영 감독, 최진아 피디를 빼놓을 수 없다. 소송 당사자로서 그토록 오랜 시간 검찰 조사를 받고, 자료를 정리하고 재판에 임하며 고통 받았다. 그러면서도 세월호 다큐 ‘그날 바다’를 만들었으니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제 백년전쟁 2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모든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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