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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최종판결 순간 돌아가신 피해자 생각에 눈물 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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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조선인 강제노동피해자보상입법 일한공동행동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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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부근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야노 히데키 조선인 강제노동피해자보상입법 일한공동행동 사무국장. 고한솔 기자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본의 전범기업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1억원을 보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일본제철이 어떤 형태로든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따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야노 히데키(69) 조선인 강제노동피해자보상입법 일한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7년 전 판결 때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주주 총회에서 신일철주금 경영진이 “판결은 유감이지만 최종 확정되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힌 터였다. 아시아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선 판결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온 직후 일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야노 사무국장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근처에서 <한겨레>와 만났을 때도 그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도쿄에서 공무원으로 노동운동 참여
1995년 재일조선인 여운택씨와 인연
신일철주금에 배상·임금 반환 ‘소송’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에서 ‘승소’

25년째 ‘최고의 반일 인물’ 위협에도
“피해자와 약속 끝까지 지켜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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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노 히데키(맨오른쪽) 조선인 강제노동피해자보상입법 일한 공동행동 사무국장이 지난 9일 한국을 방문해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해마루 사무실에서 강제징용 사건을 대리해온 임재성·김세은 변호사,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과 함께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7년 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진 사건은 지난해에야 대법원 최종판결이 나왔다. 그 사이 아베 정권이 들어섰고 사건을 다시 돌려받은 박근혜 정권의 대법원이 5년 넘게 재상고심 선고를 미뤄왔기 때문이다. 사법부와 행정부가 이 사건을 두고 일종의 거래를 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드러난 건 최근이다.

“1995년부터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씨와 인연을 맺었어요. 그는 ‘내 인생이 일본에 휘둘렸다. 임금이라도 받았으면 소를 몇마리 샀을 텐데…’라며 늘 혼잣말을 하셨죠. 끝내 최종 승소 판결을 못 보고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야노 국장은 공동행동 소속으로 1995년부터 25년째 강제동원 피해자의 법정 다툼을 지원하는 등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왔다.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해오던 그는 95년 강제동원 피해를 입었던 재일 조선인으로부터 “강제동원 피해자의 법정 싸움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에 큰 충격을 받은 차였다. 그는 1997년 강제동원 피해자 고 여운택·신천수씨를 도와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달라고 소송을 냈다. 이후 한-일 양국을 오가며 모두 8번의 재판(일본 3차례·한국 5차례)을 치렀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은 2000년 5월1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부산지법에, 4명은 2005년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각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지난해 최종 결론이 난 것이다.

“노동문제는 해고가 철회되고 복직되고 보상금을 받는 식으로 어떻게든 끝이 나는데, 이 문제는 좀처럼 끝이 나질 않습니다. 일본에서 3심까지 내리 졌어요. 한국에서는 1·2심 거쳐 재상고심까지 5번 재판을 치렀죠. 23년 동안 싸워오다 결국 승소한 그 기록이 피해자들이 살아온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와 기업에 꾸준히 협의를 요청했던 피해자들은 현재 강제집행 절차를 밟고 있다. 노동절이자 나루히토 왕세자가 일왕으로 즉위한 ‘레이와’ 시대 첫날인 지난 1일 한국내 주식을 매각해 현금화하는 최종 절차에 돌입했다. 신일철주금이 소유한 피엔아르(PNR)사 주식과 후지코시 소유의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에 대한 매각명령 신청을 관할 법원에 접수한 상태다. 일본 정부는 “신속히 대항 조치를 취하겠다”고 사실상 ‘협박’을 하고 있고, 일본 기업은 그 뒤에 숨었다. 한국 정부도 침묵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법원의 판결뿐이다.
“신일철주금은 재판에 계속 응해왔고 1·2심에서 승소했을 때는 기꺼이 그 결과를 수용했어요. 그런데 최종 패소하니까 갑자기 ‘따르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도리에도 맞지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습니다. 피해자 개인과 사기업간 민사소송인데, 일본 정부도 이 소송 결과에 대해 함부로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법적 해결에도 한계가 있다. 2005~12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지원위원회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22만여명 정도인데 그 가운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법으로 구제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포괄하려면 재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궁극적으로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일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 야노 국장의 생각이다. 나치의 강제노역으로 얻은 기업의 이익을 출연해 피해자에게 배상하게 한 독일의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침묵하고 있는 한국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만 성사될 일이다.

야노 국장은 일년이면 5~6차례씩 한-일을 오가며 기자회견과 집회 등을 통해 일본의 자성을 촉구해왔다. 최근엔 서울 용산구에 세워진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1억345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일본 전역에서 800여명의 시민과 12곳의 시민단체로부터 모은 성금이다. ‘일본의 살아있는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최고의 반일 인물’이라는 꼬리표도 붙었다.

하지만 야노 국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번은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가 와서 ‘너 일본 사람 맞냐’ 소리치길래, ‘일단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만…’이라고 답해줬죠(웃음). 주변 친구들은 항상 저를 걱정하지만 그게 큰 위협이 되진 않아요. 피해자들과 ‘같이 재판하고 함께 이기자’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저는 끝까지 지켜야 해요. 피해자를 지원하는 운동은 아침밥을 먹는 것과 같아요. 제 삶의 일부가 됐어요.”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2019-05-14> 한겨레 

☞기사원문: “강제징용 최종판결 순간 돌아가신 피해자 생각에 눈물 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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