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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 도올 집에서 ‘함석헌 말씀’ 들으며 진보의식 깨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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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재미동포 의사 윤흥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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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흥노 이사장이 버지니아 알링톤 자택 공부방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국민이 촛불 혁명을 거치며 확고한 평화통일 의지를 가지고 있고 한국 정부가 남북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아 남·북·미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가리라 믿고 있어요.” 사진 윤흥노 이사장 제공

재미동포 윤흥노씨가 미국 수도인 워싱턴디시의 흑인 동네인 아나코스티아에서 병원 문을 연 해가 1978년이니 딱 40년이 지났다. 그는 이 동네 주민들의 초빙으로 병원을 열었다. 마르틴 루서 킹 암살(1968) 여파로 황폐해진 동네 재건을 위해 주민들이 ‘의사 모시기’에 나선 것이다. 그간 여러 의사들이 이곳에서 병원을 열었지만 지금까지 동네를 지키고 있는 의사는 그가 유일하다. “병원을 하면서 단 한 차례도 주민들과 마찰이 없었죠. 위협을 당한 적도 없어요.”

그는 진보적인 사회 활동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 워싱턴 지부 이사장을, 그 석달 전인 8월엔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 지회장을 맡았다. 지난 17일(현지시각) 버지니아 알링턴 자택에 머물고 있는 윤 이사장을 전화로 만났다.

그의 딸 윤미진 교수는 지난 7월 코넬대 건축학부 학장에 임명돼 화제가 됐다. 윤 교수는 이 대학 건축학부의 첫 여성 학장이자 한국계 여성으로 첫 아이비리그 학장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두 아들은 안과와 소화기 내과 의사다. 사위는 에릭 회벨러 하버드대 건축학과 교수다. “세 자녀 모두 아버지의 진보 활동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먼저 민문연 지부를 만든 이유를 물었다. “임헌영 민문연 소장이 수년 전부터 지부 개설 의사를 타진했어요. 워싱턴 의회도서관이나 여러 아카이브엔 일본과 미국 사이 외교문서 등 발굴되지 않은 자료가 많아요. 이번에 비영리 단체로 등록을 하고 박진영 아메리칸대 교수가 지부장을 맡아 주셨어요. 앞으로 박 교수와 인턴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자료 발굴에 나설 겁니다.”

그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6·15공동선언 실천 워싱턴위원회 위원장도 지냈다.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회장도 2012년부터 4년 동안 지냈다. 나카는 미국 사회의 차별과 인종주의에 맞서려 한인들이 엘에이 폭동 이후인 1994년에 만든 단체다. 또 2007년 피엔피(PNP·평화와 번영의 영문 약자) 포럼을 만들어 워싱턴을 찾는 진보·문화 쪽 인사들의 강연회를 열고 있다. “워싱턴은 세계 중심지라 훌륭한 지식인들이 많이 찾죠. 이들의 강연을 동포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포럼을 만들었죠. 백낙청 박원순 문정인씨 같은 진보 인사 뿐 아니라 고 천경자 화가 사위인 문범강 교수 같은 문화계 인사도 모셨어요. 많을 땐 100명 이상 참석합니다.”

고대 의대 졸업뒤 1973년 미국 이민
워싱턴디시 흑인 빈민가 40년 의술
딸 윤미진 교수 코넬대 첫 여성 학장

지난해 ‘민문연’ 워싱턴 이사장 맡아
“미-일 외교문서 등 사료 발굴할 터”
평통 지회장도 맡아 ‘평화 로비’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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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흥노 이사장과 딸 윤미진 교수.

1945년 천안에서 태어난 윤 이사장은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1973년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는 국내 의대 졸업생 800명 가운데 300명이 미국행을 택하던 시절이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의사가 부족한 미국이 외국인에게 의사 문호를 대폭 넓혔죠.” 유신헌법이 통과된 한국에서 별 희망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이민 결심을 부추겼단다.

“75년부터 워싱턴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았는데 동네 주민들이 찾아왔죠. 슈바이처와 같은 의사가 되리라는 마음에 초청에 응했어요. 흑인들은 정이 많아요. 어린 애들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날 보고 인사해요. 정이 들어 못 떠나죠. 주민의 경제, 교육 수준이 떨어져 환자가 질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서 오는 사례가 많아요. 누구보다 의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어서 더 보람을 느껴요.”

그는 도올 김용옥과 사돈 관계다. “함석헌 선생 제자이자 도올의 큰형 김용준 교수가 제 자형이죠. 자형 부친이 의사여서 가정 형편이 좋았어요. 그래서 당시 씨알농장을 하던 함 선생이 기독교 집안인 사돈 댁에서 매일 아침을 드셨죠. 저도 당시 향학열에 들떠 누님 집 간다는 핑계로 그집을 자주 갔어요. 함 선생님 말씀을 경청하면서 민족의식이나 독재에 대한 무폭력 저항 등의 사상에 눈을 떴죠. ‘생각하는 백성이어야 산다’는 선생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간 두차례 북한을 찾았다. 2007년엔 6·15 행사 미국 대표로 평양을 찾았고 재작년엔 2주간 북한의 지방을 둘러봤단다. “재작년 가보니 북한의 산에 나무가 울창해요. 물어보니 이젠 시골에서도 가스로 밥을 한다더군요. 아이들도 눈에 띄게 키가 커 이제는 식량이 해결되어가는구나 생각했죠. 여자 아이들이 코 성형수술을 한 걸 보고 놀래기도 했죠.”

내년엔 민주평통 워싱턴 지회장 자격으로 미 연방의회를 두차례 찾을 계획이다. 한반도 정책을 다루는 의원과 의원 보좌관을 만나 ‘한반도 평화 로비’를 하기 위해서다. 나카 회장 때도 미 국무성과 연방 의회를 매년 찾았단다. “미 정부와 세계 모든 나라들의 대사관이 있는 워싱턴은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알리는데 가장 중요한 장소이죠. 미 주류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은 삼성·현대는 알아도 우리가 분단되고 외세와 위정자들에 의해 항구적 분단 상태로 갈 위험성이 있다는 건 몰라요. 그들에게 한반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주는 게 중요하죠. 그들을 만나 한국계 시민권자의 남북 통일에 대한 인식을 전해줍니다. 의회 인사들도 자신의 식견을 넓혀주는 이런 정보 제공을 고맙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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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북한 방문 때 윤흥노 이사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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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방북 때 윤 이사장이 찍은 북한 소녀들.

워싱턴 지회는 지난 5월 골프 대회를 열어 1만5천 달러를 모았다. 내달 여는 하루 찻집 후원금까지 보태 모두 2만 달러 이상을 북 지원단체인 유진벨 재단에 보낼 생각이다. “직접 북을 도울 생각도 있었지만 민주평통 본부에서 만류하더군요.”

워싱턴 지회 자문위원은 모두 135명이다. 그가 지회장이 된 뒤 진보 인사 60명이 새로 들어왔단다. “워싱턴은 지식인 도시라 동포 사회의 이념 갈등은 없는 편입니다. 지회도 화합이 잘 되고 있어요.”

한반도 평화 전망은? “한국 운명을 한국인 스스로 결정할 모든 자원이 지금 갖춰져 있어요. 의지도 있고요. 과거와 같이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 민족의 역량과 능력이 나타날 때가 무르익어 간다고 확신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2018-09-19> 한겨레

☞기사원문: “사돈 도올 집에서 ‘함석헌 말씀’ 들으며 진보의식 깨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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