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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2월의 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선정

2010년 2월 16일 626

민족문제연구소 독립운동가이자 반민특위 초대 위원장을 지낸 김상덕 선생이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선생은 일본 유학시절인 1919년 2월 8일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해 옥고를 치른 후, 상하이로 망명한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크나 큰 족적을 남겼다.광복 후인 1948년 5월 고향인 경북 고령에서 제헌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이승만의 집요한 회유와 협박에 끝까지 저항했다. 하지만 결국 1949년 6월 6일 친일경찰의 습격으로 반민특위가 와해되면서 친일청산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6.25전쟁 때 납북된 선생은 현재 평양 재북열사릉에 모셔져 있는데 아들인 김정육 회원은 지난 2006년 10월 해방 이후 처음으로 임정요인 후손들과 함께 성묘를 다녀오기도 했다.한편 김정육 회원에 이어 그의 아들 김진영 씨도 현재 연구소 회원으로서 친일청산에 3대가 헌신하고 있는 가운데, 진영 씨는 다니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2.8 독립선언운동 기념일을 맞춰 할아버지의 길을 찾아 2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도쿄 를 방문한다고 한다.김정육 회원은 “아버지의 평전 작업이 올해 시작되면 내년에는 출판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 내년에는 평전 출간 사업에 연구소 회원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재북열사릉을 찾아 성묘하는 김정육 회원.

외교부 “한.일 과거사 현안해결 기대”

2010년 2월 11일 409

외교부 “한.일 과거사 현안해결 기대”(연합뉴스, 10.02.11)

임헌영 “공지영은 한국 장편소설의 마지노선”

2007년 2월 26일 615

<!– –>     오마이뉴스 천호영 기자   “우리나라에 장편 없다고 상 만들고 하는데, 상금 아무리 올려도 좋은 장편 안 나온다. 우리나라는 이미 장편의 시대는 갔다. 작가들 이 장편 쓸 능력이 없다. 공지영이 최후 마지노선이다. 그 연배나 후배들 장편을 보면 수필집이다. 서사 구조가 없다. 역사가 서사구조의 기본골격인데, 역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지방이든 세계든 역사가 없다.”   ▲ 문학평론가 임헌영   ⓒ 최경자 지난 22일 기초예술연대(위원장 김지숙ㆍ방현석)가 마련한 ‘한국사회와 문화예술의 미래’ 심포지엄 현장. 이날 두번째 발표자로 나선 문 학평론가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씨는 주최 측에서 미리 배포한 자료집의 발표문과는 달리 한국문단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일관했다. 그에게 예정된 주제는 ‘변화하는 세계, 문학의 가치 는 무엇인가’. 자료집에는 문학의 가치를 주장하고, 그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조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 그러나 현장의 발표 내용은 사뭇 달랐다.그는 먼저 “발표문에는 21세기를 ‘문화의 세 기’라고 적었지만 난 ‘문화의 세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20세 기는 전쟁과 살육의 세기”이고 그 뒤를 이은 “21세기는 문화에 의한 정복의 세기로 이는 세계 화와 똑같은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다 운 문화를 만들어 오히려 그 같은 문화 정복에 대해 역공할 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또 “미학의 가치기준이 없어졌다”면서 “윤동주 서시를 읽으면서 어떻게 친 일파를 옹호할 수

경술국치 100년(2010년) 앞두고 대규모 사업계획 발표

2007년 2월 23일 743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 보고서 역사관 건립계획안초청장식순 친일문제 전문연구기관이자 한일과거사와 일제잔재 청산운동에 앞장서온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는 설립(1991년 2월 27일) 16주년을 앞둔 2월 24일 오후 2시 충무아트홀(컨벤션센터)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한다.전국 각지의 회원들과 내빈들이 참석하는 이날 총회에서는 지난 해 사업성과보고와 함께 2008년 8월 출간 예정인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과 향후 일정, 경술국치 100주년(2010년) 기획사업인 일제침탈사 피해종합보고서 사업 계획,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 준비위원회 발족 등 굵직한 사업 계획들이 발표될 예정이어서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관련기사 국민의 힘으로 ‘친일역사관’ 건립한다(오마이뉴스, 07.02.23)송기인 신부 일제역사관 건립 거액 기부(연합뉴스, 07.02.25)송기인 신부, 일제역사관 건립 거액 기부(쿠키뉴스, 07.02.25)송기인 위원장 일제 민중역사관 건립 9700만원 쾌척… 1년 급여 고스란히(쿠키뉴스, 07.02.25)진실화해위 위원장 송기인 신부 역사관 건립에 거액 기부(경향신문, 07.02.25)송기인 과거사정리위원장, 1억여원 기부(한국경제신문, 07.02.25)송기인 위원장 1년치 연봉 9,700만원 몽땅 기부(한국일보, 07.02.25)“일제강점기 역사관 짓는데 써달라”(한겨레신문, 07.02.25)송기인 진실·화해위원장,‘일제역사관 건립’ 1년치 월급 전액 기부(서울신문, 07.02.26)송기인씨, `민중역사관 건립에 써 달라` 9700만원 기부(중앙일보, 07.02.26)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사업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동안 수집한 2만여 점의 근현대 자료들을 기반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의 실상 그리고 당시 민중 생활의 실상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상설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기로 하고, 첫 단계로서 사회 각계각층의 유력인사들로 구성된 역사관건립준비위원회(위원장 이이화)를 발족할 예정이다. 준비위원회는 역사관 건립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한편 역사관 건립의 취지를 널리

“한일병합, 한국민족 자긍심 깊이 상처”(종합2보)

2010년 2월 11일 428

“한일병합, 한국민족 자긍심 깊이 상처”(종합2보)(연합뉴스, 10.02.11)

‘다케시마의 날’ 독도 최초주민 전시회

2010년 2월 11일 539

‘다케시마의 날’ 독도 최초주민 전시회(연합뉴스, 10.02.11)

[보도자료] 야스쿠니 무단합사 철폐 제소

2007년 2월 21일 857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Korean Committee of Anti-Yasukuni Joint Counteraction 130-866,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38-29 금은빌딩 3층 전화 : 02-969-0226, FAX : 02-965-8879, 홈페이지 http://www.anti-yasukuni.org   수신 : 각 언론사 사회부, 국제부 기자 보 도 자 료 야스쿠니신사 합사철폐 재판 제소 일시 : 2007년 2월 26일(월) 오후 1시 제소, 도쿄지방재판소 일시 : 2007년 2월 26일(월) 오후 6시 재판보고회, 豊島구민센타 일시 : 2007년 2월 28일(수) 오전 10시 기자회견, 동북아역사재단 일시 : 2007년 2월 28일(수) 오후 6시 재판후원행사,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야스쿠니반대공동행 한국위원회(사무국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의 ‘No!합사’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사무국 민족문제연구소)는 생존자, 유족 원고 10명을 대표로 오는 2월 26일 도쿄지방재판소에 야스쿠니신사 무단합사 철폐를 요구하는 재판을 제소합니다.   이번의 소송은 2006년 5월 일본의 재판부가 야스쿠니신사 합사는 야스쿠니신사가 행한 것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후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한 재판으로 추진되어 왔습니다. 재판 준비과정에서 야스쿠니신사와 일본정부의 유착관계가 명백히 밝혀졌으며, 일본정부가 정교분리를 규정하고 있는 일본국 헌법을 무시하고 합사를 획책했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일본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공동의 피고로 하여 제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이번 소송에는 일본정부 기록에 군속으로 동원되었다 1944년 7월 8일 사이판에서 전사하여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다 귀환한 생존자 1명이 원고로 참여하여 야스쿠니신사의 기만성을 성토할 예정입니다.   한국위원회는 이번 재판 제소를 통해 야스쿠니신사의 반문명성과

파퐁, 무덤까지 따라간 나치부역

2007년 2월 20일 524

  한겨레신문 김순배 기자       » 프랑스 전 장관 파퐁     ‘나치 협력자’가 훈장과 함께 묻힐 자격이 있는가? 17일(현지시각) 숨진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모리스 파퐁(96)의 무덤에 그의 나치 협력 전력이 밝혀지기 전에 받은 훈장을 함께 묻는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논란은 ‘변절’로 점철된 그의 삶을 되짚어 보게 하고 있다. 파퐁의 나치 전력이 밝혀진 것은 그가 정부의 예산장관이었던 1981년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아버지를 잃은 한 학자가 프랑스 보르도 지방정부 창고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먼지 쌓인 서류를 발견했다. 서류에는 어린이 223명 등 유대인 1690명을 포로수용소로 보낸 파퐁의 서명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2차대전 당시 프랑스에서는 유대인 7만4천여명이 수용소로 이송돼 극소수만 살아남았다. 소르본대학 출신의 엘리트인 파퐁은 2차대전 때인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나치와 손을 잡았다. 그는 나치의 꼭두각시 정부인 비시 정부에서 1942~44년 보르도 지방의 한 도시 지롱드에서 시정의 2인자로 일했다. 그는 유대인을 포로수용소로 보내는 업무를 맡았고, “기꺼이 협력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처음에는 외국인 유대인, 그 다음에는 프랑스 유대인을 잡아들였다.  관련기사 독일검찰, 홀로코스트 부인자에 징역 5년 구형(한겨레신문, 07.01.27)홀로코스트 ‘진실과 신화’ 논란(한겨레신문, 06.12.13)미·일 ‘과거사 갈등’ 머지않다(한겨레신문, 06.09.19) 나치 부역자에서 관료로=독일의 패전이 눈에 보이자 그는 변신했다. 프랑스 저항세력인 레지스탕스에 나치의 활동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파퐁은 전후 철저하게 진행된 나치 부역자 척결에서 살아남았다. 보신에 성공한

[사설] 독도를 새로 발견한 섬이라고 한 일본의 억지

2010년 2월 11일 482

[사설] 독도를 새로 발견한 섬이라고 한 일본의 억지(매일신문, 10.02.11)

과거사보다 실리 공조 무게

2010년 2월 11일 524

과거사보다 실리 공조 무게(헤럴드경제, 10.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