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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가 장두석씨, 칠순 문집 출판기념회-뉴시스(07.12.15)
통일운동가 장두석씨, 칠순 문집 출판기념회
일제시대 보상금 사기 극성
일제시대 보상금 사기 극성(MBC, 09.09.29)
“교정에 백년설 노래비…‘매국’을 배우란 말이냐”
“교정에 백년설 노래비…‘매국’을 배우란 말이냐”(매일신문, 09.09.30)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15)광주의 식민도시화와 상처
김민수 서울대 교수 #광주우체국 앞에서어둠이 내리면 충장로 파출소(충파) 앞에서 광주우체국으로 이어지는 구도심에 젊은이들이 붐비기 시작한다. 유흥음식점과 주점, 이동통신과 패션 상점들의 간판이 현란하게 빛을 발한다. 신도심으로 활력이 많이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충장로 일대는 빛고을 광주를 상징하듯 번쩍거린다. 여기서 눈길을 팔다가 자칫 방향을 잃으면 이정표 구실을 하는 곳이 있다. 광주우체국이다. 이곳은 만남의 광장으로 활용될 만큼 인지도가 높아 늘 인파로 북적거린다. 광주우체국 앞. 옛 광주읍성의 동서와 남북 통행로가 교차하는 중심에 해당한다. 왼쪽 길로 가면 서문(광리문)과 광주천, 오른쪽 길은 북문(공북문)과 공북루로 이어진다. ⓒ 김민수 이렇듯 광주에서 광주우체국이 눈에 띄는 요지로 인지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이곳이 옛 광주읍성에서 동서와 남북을 잇는 4대문 통행로의 직교 교차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옛 광주읍성의 중심이 현재까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63년 지어진 현 건물은 원래 목포우체국 광주출장소로 1905년 개원해 1912년에 신축된 광주우편국을 개축한 것이다. 나는 충장로와 주변 거리 일대에서 희미한 근대 역사의 가닥들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에 옛 광주읍성이 해체되면서 어떻게 식민 도시화가 진행되었을까?#단발령으로 뒤바뀐 광주의 운명광주는 1895년까지만 해도 나주부에 속한 일개 군(郡)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도시의 운명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연이은 단발령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유독 심한 단발령을 시행한 나주에서 저항이 거세게 일자, 이를 계기로 나주 관찰부가 폐지된 것이다. 이와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15)광주의 식민도시화와 상처-경향신문(07.12.13)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15)광주의 식민도시화와 상처
뉴욕추석대잔치 브아걸, 리쌍 공연열기..손도장프로젝트 참여
뉴욕추석대잔치 브아걸, 리쌍 공연열기..손도장프로젝트 참여(뉴시스, 09.09.28)
‘블룸버그 시장, 안중근 손도장 아쉬운 불발’
<뉴욕추석대잔치> ‘블룸버그 시장, 안중근 손도장 아쉬운 불발’(뉴시스, 09.09.27)
유럽의회 위안부 결의안 채택(종합)
연합뉴스 이명조 특파원 (스트라스루브=연합뉴스) 이명조 특파원 = 유럽의회가 13일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의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 일본정부의 공식 시인과 사과, 보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유럽의회는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본회의의 최종 안건으로 차드 동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권리와 함께 ‘위안부를 위한 정의’를 표결에 부쳐 출석의원 57명 중 54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국제사회에서 일본 군의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된 것은 지난 7월 30일 미 하원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하원(11월8일), 캐나다 연방하원(11월28일)에 이어 이번이 4번째이다. 관련기사 유럽의회도 종군위안부 결의안 채택(뷰스앤뉴스, 07.12.14)유럽의회, 日 위안부 사과·배상 촉구(서울신문, 07.12.14)“일본이 사죄할 때 평화가 올 것”(일다, 07.12.14)"유럽의회 위안부 결의안 채택 환영"(연합뉴스, 07.12.14)유럽의회, 위안부 결의안 채택(한국일보, 07.12.14)유럽의회, "日 위안부 강제동원, 도덕적 책임 인정해야"(종합)(아시아경제신문, 07.12.14)캐나다, 네덜란드 의회도 위안부 결의안 채택(산케이신문外, 07.11.29)네덜란드 하원도 ”日위안부 결의안” 채택(세계일보, 07.11.12)‘日정부 위안부 사과·보상’ 결의안 네덜란드 하원 유럽서 첫 채택(서울신문, 07.11.12)[사설]네덜란드 의회도 채택한 위안부 결의안(세계일보, 07.11.12)네덜란드 의회, 위안부 결의안 만장일치 채택(연합뉴스, 07.11.11) 결의안은 2차대전 당시 일본 군이 20만명 이상의 아시아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해 저지른 만행을 일본정부가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는 한편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또한 결의안에는 일본 정부가 이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현재와 미래의 세대들에게 교육시킬 것과 일본 의회가 피해자 보상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도담겨
한국전 충혼탑 옆에 서있는 ‘친일파·폭정관리 공덕비’
노컷뉴스 박형주 기자 광양의 대표적인 전통 공원인 유당공원에 친일파와 폭정을 저지른 관리들을 기리는 공덕비가 그대로 남아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1528년 건축돼 5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광양시 유당공원. 풍수를 인위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이른바 ‘풍수설’을 반영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이러한 전통 공원에 친일파를 기리는 공적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1902년 전라남도 관찰사에 임명된 이근호는 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인 이근택의 아우이다. 일제는 한일병합에 공헌한 공을 사 그에게 남작의 지위를 내렸다.민족문제연구소는 그를 ‘친일인명사전’수록 예정자에 포함했다.1902년부터 2년 동안 광양군수를 지낸 조예석도 일제 강점기에 판사를 지내 친일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을 기리는 공덕비가 백년이 넘도록 유당공원에 버젓이 남아 있다.이 공원에는 또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 장군 김개남을 살해하고, 전봉준 장군을 체포해 서울로 압송한 인물인 전라관찰사 이도재를 기리는 비석이 유당공원에 자리하고 있다.또 1869년 광양현감의 폭정을 못 이겨 일어난 민란을 잘 진압했다며, 조정이 현감 윤영신에게 내린 업적비도 남아 있어 논란을 부르고 있다.더욱 큰 문제는 이같은 친일파나 폭정 관리들을 위한 공덕비가 전국에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민족문제연구소 이용창 연구원은 “구한말에는 의례적으로 마을을 떠난 원님이 큰 탈이 없었으면 공덕비를 세워줬다. 이 때문에 이처럼 친일행적을 보인 인물을 기리는 공덕비는 전국에 수천여 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광양시와 같은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들은 후손들의 눈치를 보느라 이런 공덕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설 자리 못 찾은 안중근 의사 동상
설 자리 못 찾은 안중근 의사 동상(시사인, 09.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