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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제2의 매국노가 되겠다고?

2023년 3월 27일 1033

강제동원 관련 대일본 ‘굴욕’외교가 결국 “대국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으로 치달았다. 그것도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언론과 가진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 말이다. 국민이 반대하는 ‘대국적 결단’을 지지하는 자들의 당당함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2023년 3·1혁명 104주년 기념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①)라고 하면서, “우리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②-①)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②-②)이 자명합니다.”라고 진단했다(괄호의 번호와 밑줄은 필자. 이하 같음). 이건 국민을 상대로 협박한 것이다. 과거에는 그랬다 치자. 그러면 지금이라도 세계사의 흐름을 잘 읽고 준비하면(②-①) 과거의 불행이 반복되지 않을 것(②-②) 아닌가. 또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는 건 누구의 판단인가. “파트너(partner)”는 영어사전에서 “협력자, 동반자, 상대, 짝”, 국어사전에서 “짝이 되어 함께 일하는 상대”이다. 일방이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 신뢰를 전제로 협력(동반)하는 짝(상대)을 말하는 것이다. 2023년 대한민국 정부는 작금의 대일본 ‘굴욕’외교가 정말 진정한 파트너십이라고 믿고 있나 보다. 그래서 대한민국과 과거사 피해자들에게 사죄하지 않는 일본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으니 받아달라고 호소하는 것인가. 조만간 지구촌에서 ‘상대방 없는 파트너’를 가능하게 한 유일한 나라로 대한민국이 소개될 날도 멀지 않았다. 3·1혁명 기념사의 핵심은 일본제국주의(나는 ‘일제’라는 두리뭉실한 줄임말보다, 또박또박 ‘일본제국주의’라고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가 한국인을 강제동원한

내가 아주 단판씨름 하러 왔소-김상옥 의사의 의열투쟁과 관련한 몇 가지 논점 정리(1)

2023년 3월 27일 2197

[김상옥의거 100주년 특집] 내가 아주 단판씨름 하러 왔소 -김상옥 의사의 의열투쟁과 관련한 몇 가지 논점 정리(1) 이순우 책임연구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있는 김상옥 의사의 동상(1998년 5월 28일 제막)이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김상옥 의사(정진주 합장)의 묘비석 후면 모습이다.   (1) 1890.1 서울 어의동에서 구한말의 군관인 김규현과 경주김씨 점순 여사 사이에 2남으로 출생 1923.1 종로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왜경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1월 17일 재등 총독 주살을 재차 계획한 채 삼판통에서 추격한 왜경과 총격전을 전개한 후 이곳저곳을 신출귀몰하다가 1월 22일 종로 효제동에서 왜경 500여 명에게 포위되어 4, 5채 가옥을 넘나들며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일기당천의 장렬한 격전을 전개, 수십 명의 왜경을 살상 후 마지막 한 발로 자결 순국 (2) 1889년 1월 5일 서울 효제동 출생 1923년 1월 22일 서울 효제동 최후 격전현장에서 순국                         배위 1895.10.20. 출생 1967.12.26. 별세 1923년 1월 3차례 서울시가전 전개/ 12일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17일 삼판통 총격전 4명 처단/ 22일 효제동 대격전, 일본군경 천명 4중 포위, 3시간 교전 16명 처단, 자결 순국   여기에 제시한 것들은 딱 100년 전 “경성 천지(京城 天地)를 진동(震動)하던 중대사건(重大事件)”의 주인공으로 “항복(降服)은 절대불응(絶對不應)”하며 “최후순간(最後瞬間)까지 대항(對抗)”했던 김상옥(金相玉, 1889~1923) 의사의 마지막 항거 상황을 약술한 구절이다. 우선 (1)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동숭동)에 서 있는

한일공동학술회의 〈일제시기 재일조선인 사회의 형성과 단체활동〉 개최

2023년 3월 27일 771

[초점] 한일공동학술회의 〈일제시기 재일조선인 사회의 형성과 단체활동〉 개최 • 편집부 1923년 9월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대학살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일제시기 재일조선인 사회의 형성과 단체활동〉을 주제로 한일공동학술회의가 3월 17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원홀에서 개최되었다. 서울시 강북구(구청장 이순희)와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가 공동주 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관장 윤경로)이 주관하는 이번 학술회의는 식민지시기 재일조선인들의 고난과 투쟁의 역사를 각종 단체의 조직활동을 통해 재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행사는 Ⅰ부 개회식과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명예교수의 기조강연에 이어, Ⅱ부 주제발표와 세션토론 Ⅲ부 종합토론(좌장 김광열 광운대명예교수)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학술발표는 한일 시민사회와 학계의 10여 년간에 걸친 공동작업 끝에 지난해 초 발간된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의 성과를 바탕으로 재일조선인 사회의 형성과 조직활동을 시기별 지역별 분야별로 분석, 재구성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먼저 <재일조선인단체사전> 편찬 때 히구치유이치 전 고려박물관장과 함께 일본 측 공동편찬위원장을 맡았던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 명예교수는 「식민지기 조선인의 도일과 커뮤니티의 형성」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식민지배 하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진 조선인 디아스포라의 배경과 양상, 일제 당국의 정책 변화 그리고 거기에 맞선 재일조선인의 대응을 <재일조선인단체사전> 수록 단체들의 조직활동을 통해 개관하였다. 세부 주제발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배영미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연구부장은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유학생-1920~1925」 논문에서 간토대지진을 직접 겪은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들의 경험담에 기초해, 대학살의 실상과 일제 당국의 협박과 감시, 유학생 사회의 대응과 내홍 등을 분석했다. 권시용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920년대 도쿄 지역

근현대사기념관 3·1절 체험행사

2023년 3월 27일 576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3·1절 체험행사 근현대사기념관은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기념관 안과 밖에서 다채로운 행사를 열었다. ‘근현대사기념관 3·1절 체험행사’는 방문한 어린이, 청소년 50여 명을 대상으로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였다.           체험은 상설 전시를 관람하고 3·1운동에 관련한 퀴즈를 풀고 3·1절 의미를 담은 글귀만들기, 그림으로 꾸며보는 ‘손거울 키링 만들기’로 구성하였다. 참여자들의 높은 만족도로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한편 ‘약산 김원봉과 함께’ 김언호 상임대표(한길사 사장), 서중석 교수(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등 회원 30여 명이 기념관을 방문해 심산 김창숙 서거 60주기 추모 특별전 ‘시대에 맞서 싸운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을 관람하고 여운형 묘소 등 인근 독립운동가 묘소를 답사하였다. 또한 강북구가 주최하는 제20회 강북구 3·1독립운동 기념행사 ‘그날의 함성이’에 참여하여 부스를 운영하였다. 우이동 만남의 광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압록강 행진곡 오르골’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여 3·1절의 의미와 근현대사기념관을 홍보하는 자리가 되었다. 강북구 어린이, 청소년 200여명이 참여하여 근현대사기념관 체험 부스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 정햇살 학예연구사

식민지역사박물관, 삼일절 104주년 기념 특별 행사 <독립선언서 배달꾼을 찾습니다!>

2023년 3월 27일 577

[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 삼일절 104주년 기념 특별 행사 <독립선언서 배달꾼을 찾습니다!> • 김선영 학예연구사 3월 1일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삼일절 104주년을 맞아 독립선언서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와 카드 뉴스 형태의 전시를 선보였다. 대형 크기로 제작된 독립선언서는 관람객에게 압도감과 몰입감을 주어 선언서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친일파를 그린 작품 「일제를 빛낸 사람들」과 마주보게 배치함으로써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삼일절 오전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 5층에서 대학생 연합 역사 동아리 ‘사다리’를 대상으로 김승은 학예실장이 삼일절 특강(강의명 ‘일본은 왜 사과하지 않을까’)을 개최하였다. 강의에 참석한 많은 학생들이 학예실장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또한 1층 관람객 휴게 공간에는 연구소가 자체 제작한 영상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 1-1편 -기록으로 보는 3·1운동」을 통해 3·1운동의 전개과정과 진압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박물관은 삼일절에 방문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특별 활동지를 제작, 배포하였다. 우리박물관이 특화해서 다루고 있는 친일 인물과 친일 기관에 집중해 만든 이 활동지는 식민지시기 독립운동을 저지하려 했던 인물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으며, 어떤 기관들이 있었는지 시야를 넓혀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어졌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제작된 활동지는 아이들이 전시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풀이를 완료하면 독립군가가 흘러나오는 오르골을 증정했다. 3월 1일 박물관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삼일절을 좀 더 의미있게 기리기 위해 자녀들의 손을 잡고 방문한 부모님들은 다소 어려울

해방 직전 일제의 블랙리스트 <조선인요시찰약명부> 출간

2023년 3월 27일 1057

[초점] 해방 직전 일제의 블랙리스트 <조선인요시찰약명부> 출간 • 편집부 연구소는 3·1절을 앞두고 일제의 사찰 관련문서철을 번역·분석한 <조선인요시찰약명부>을 펴냈다. 원본은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소장돼 있는 <쇼와20년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다. 1945년 3월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식민지 조선의 각 도에서 생산된 요시찰대상 인명부를 하나의 서류철로 묶은 것이다. 전남 206명, 전북 131명, 경남 44명, 충남 129명, 함북 280명 모두 790명의 인물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인물 정보는 이름, 창씨명, 별명(이명), 출생일, 본적, 거주지, 얼굴과 신체 특징, 시찰요점으로 구성됐다. 약명부에 수록된 요시찰대상은 주로 반일 성향을 지닌 인물로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노동운동가, 외국인 등이 포함됐다. 사상전향자나 밀정과 같은 협력자들도 그 대상에 올랐다. 이를 통해 조선 안(한반도)의 요시찰인물은 물론 일본에 건너갔거나 중국, 러시아에 망명한 조선인도 감시대상으로 삼아 관리했다. 명부에는 요시찰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담겼다. 조선공산당의 주역 박헌영은 “화요회계 공산주의자로서 러시아와 상하이에서 활약,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6년, 집요한 투쟁경력을 가진 자”로 기록됐다. 또한 건국훈장독립장을 받은 이규창(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들)은 이규호라는 이명으로 나오는데 “현재 주소는 광주형무소, 키 5척3촌. 머리카락은 5푼 길이로 짧게 깎음. 얼굴은 둥글고 희며 이마가 넓다. 오른쪽 눈 아래에서 윗입술까지 약 2촌 길이의 상흔이 있다”라는 등 상세한 인물묘사가 특징적이다. 연구소는 일제강점기 기초자료 연구와 발간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며,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를 바탕으로 독립유공자가 새로이 발굴되기를 기대한다.

연구소, 경기도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사업 적극 지원

2023년 3월 27일 571

[초점] 연구소, 경기도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사업 적극 지원 • 방학진 기획실장 연구소는 지난 2020년 경기도 의뢰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그 내용은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 포털서비스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moveforward.library.kr) 경기도의 친일문화잔재 청산사업을 위임받은 경기문화재단은 2021년부터 2022년까지 경기도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사업을 진행하여 우여곡절 끝에17개의 안내판를 제작, 설치하였다. 안내판 설치사업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우선 해당 안내판이 들어설 땅의 소유권자(개인이나 단체, 공공기관 등)의 허락이 필요했는데 친일청산 사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많은 곳에서 안내판 설치를 거부하였다. 어렵사리 설치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을 향후에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 연구소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와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들이 2월 23일 경기도 일대에 설치된 안내판을 함께 현장답사한데 이어, 3월 3일에는 경기상상캠퍼스 컨퍼런스홀에서 성과 공유회를 가졌다. 성과 공유회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17개 광역단체 중 가장 모범적이며 지속적으로 친일잔채 청산에 앞장서고 있는 경기도가 앞으로도 다크투어 코스 개발, 문화콘텐츠와 접목 등 교육적‧문화적 차원으로 친일청산 문제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당부하였다. 한편 연구소는 17개의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을 활용하여 교육용 영상자료를 제작 중이다.

식민지 조선을 장악한 헌병경찰

2023년 3월 27일 2805

[소장자료 톺아보기 47] 식민지 조선을 장악한 헌병경찰 – ‘병합기념 조선의 경무기관’ 속의 전국 경찰서 지난 민족사랑 2월호 ‘소장자료 톺아보기’에 소개된 사진 중 「반도의 명사」는 강제병합 당시 조선인 주요 관료들과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부분으로 친일 인사들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기 순사 온다”라는 말에 우는 아이의 울음도 뚝 그치게 만들었던 무단통치의 핵심인 일제의 헌병경찰. ‘순사’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악랄하고 무서운 이미지로 각인된 것은 칼 찬 제복 차림으로 민중들의 사소한 일상까지 감시, 탄압함으로써 가장 직접적이고 광범위하게 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병합기념 조선의 경무기관>은 무단통치를 실행한 식민지 조선의 경찰서 현황을 담은 사진첩이다. 항일 의병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헌병사령관 겸 경무총장 아카시 모토지로를 필두로 하여 본부의 직원과 경성, 광주, 대구, 평양, 신의주 등 13개 권역의 지방 경찰서와 그 직원들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마지막에는 조선의 경찰 연혁과 직원명단이 기록되어 있다.(민족사랑 2019년 6월호 참조)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해산 후 전국적으로 항일 의병투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한국주차군헌병대로 편성되어 있던 헌병을 증강하고 조선인 4천여 명을 헌병보조원으로 모집해 병력 규모가 2배 이상 확대되었다. 주차군헌병사령관, 즉 군대의 수장은 경찰 수장인 경무총장을 겸하도록하여 민간인까지 탄압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겸직은 1910년 9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그대로 이어져 악명 높은 헌병경찰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각 지방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경무부와 경찰서가 설치되어 도(道) 헌병대장이 경무부장을 겸직했다. 경찰서장은 재판절차

김상옥 의사 순국 100주년, 그의 발자취를 따라

2023년 2월 27일 3028

[김상옥의거 100주년 특집] 김상옥 의사 순국 100주년, 그의 발자취를 따라 이순우 책임연구원 17일 오전 5시 시내 〇〇통에서 종로경찰서 타무라(田村) 형사를 총살한 범인은 즉시 남산을 넘어서 왕십리(往十里) 방면으로 도주한 것을 알고 수색중이더니 범인은 다시 시내 효제동(孝悌洞) 73번지에 잠복한 것을 알고 어제 아침 7시반경에 수색대가 그 집을 에워싸고 범인을 체포코자 할 새 범인은 벌써 눈치를 채이고 두 손에 육혈포를 가지고 나와 대항하여 동대문서의 쿠리다 경부(栗田警部)는 뒷어깨에 탄환을 맞아 넘어지고 다시 격투를 계속하여 마침내 범인도 경관의 탄환을 맞고 넘어져 현장에서 죽었더라(경찰부발표). 작일 호외 재록. 중국 상하이 시절에 촬영한 김상옥 의사의 인물사진이다. (<동아일보> 1924년 4월 8일자)   이것은 딱 1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동아일보> 1923년 1월 23일자에 등장한 「순사총살범(巡査銃殺犯), 작효(昨曉) 효제동(孝悌洞)에서, 수색대(搜索隊)와 격투후 피살(格鬪後 被殺), 어제 아침 일곱시 반 수색대에게 싸여서, 효제동에서 격투한 후에 총에 맞아 죽어, 동대문서(東大門暑) 쿠리다 경부(栗田 警部) 중상(重傷)」 제하의 신문기사이다. 여기에는 이 내용이 그 전날에 호외(號外)로 발행된 것을 재수록한 것이라는 표시가 들어 있다. 그런데 정작 이 기사에는 ‘범인’의 정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에 관해서는 일제 경찰의 철저한 보도제한조치가 내려져 있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신문기사의 한쪽에는 이러한 구절이 함께 인쇄되어 있다.   [근고(謹告)] 이 사건에 대하여는 경찰당국에서 일부만 발표하였으므로 범인의 성명과 기타에 대하여는 도저히 발표할 자유가 없기로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손해배상 판결을 환영한다

2023년 2월 27일 835

[시론]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손해배상 판결을 환영한다 장완익 변호사·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1.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이 열렸다. 개별 전범들에 대한 형사책임과 일본의 국가책임을 묻는 법정이었다. 1946년 4월부터 1948년 11월까지 도쿄에서 열렸던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일본군 성노예 전범에 대한 역사의 법정이 열렸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제소한 현실의 법정에서는 일본군‘위안부’를 포함한 모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졌다. 한국에서는 2000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으로 2005년에는 일본제철(당시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 등이 제기되었고, 마침내 2016년에는 일본군‘위안부’의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제기되었으며 일부는 승소, 일부는 각하 내지 패소라는 결과를 낳았다. 극히 일부 피해자만이 한국법원에서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소하여 승소한 것이다. 그나마 확정판결에 따라 강제집행까지 마친 소송은 단 한 건도 없다. 2004년 설립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과가 나오면서 피해자들이나 유족들은 한국전쟁 전후시기의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였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판결도 일부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다수의 판결이 쏟아져 나왔다. 필자도 여수·순천 10·19사건이나 한국전쟁시기 보도연맹 사건의 유족들을 대리하여 한국정부의 책임을 묻는 몇 건의 소송을 담당하였다. 대부분 승소하였고,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패소한 소송도 몇 건 있었지만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하고 다시 재심 소송을 통하여 최종 승소하였다. 2017년에는 제주4·3 수형인 재판이 진행되었고, 2019년 1월에 제주4·3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