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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활동

민문연 “국립묘지 민족 반역자 묘 이장하라”

2014년 6월 7일 1242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지역 시민단체들이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교 입구에서 국립묘지법 개정과 반민족, 반민주행위자 김창룡,안현태 묘 이장 촉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지난 2002년부터 집회를 이어오고 있고, 매년 현충일마다 같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창룡씨는 1941년 일본 관동군 헌병대에 입대해 1947년 육군사관학교 3기생으로 졸업,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국군 특무대장을 지냈고, 안현태씨는 1968년 청와대 침투 무장공비를 사살한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전역 후 전두환 대통령 경호실장을 역임한 바 있다. 김씨는 1956년 부하에게 암살당한 뒤 1998년 2월 13일 대전현충원 장군 1묘역에 안장됐고, 안씨는 2011년 6월 지병으로 사망하며 국립묘지 안장 논란이 일었으나 국가보훈처 심의를 통과해 장군 2묘역에 안장됐다.?   ※고발뉴스 <2014-06-06> 기사원문: ☞ 민문연 “국립묘지 민족 반역자 묘 이장하라”   ※관련기사 ◎금강일보: 숨어있는 친일파…국립묘지의 눈물

죽산, ‘강화의 저항정신을 이은 인물’

2014년 3월 24일 775

23일(일) 죽산 조봉암의 유년시절을 보낸 강화도에서 그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죽산 조봉암 선생 발자취를 따라 걷는 답사기행”이 인천민주평화인권센터와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의 공동 주최로 진행됐다. 이날 답사기행에는 130여명이 부평역에서 모여 세 대의 대형버스에 몸을 실고 죽산 조봉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강화도 기행길에 올랐다. 이 답사길에는 청소년 22명도 부모님들과 함께 해 그 의미가 남달랐다. 죽산 조봉암 선생 답사 기행에 자녀와 함께 온 주부는 “아이들이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고 해서, 이번 기행을 통해서 죽산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는 장소도 알려줄 기회가 생겨 이번 답사길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한다.   먼저 답사팀은 현재 강화면사무소 옆에 2001년에 세워진 “죽산조봉암선생생가터” 앞에서 이곳에서 표지석이 세워진 근거와 그 뒤에 이 곳 생가터 표지석이 세워진 관청리 500번지는 죽산이 태어난 곳이 아니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생가터 표지석이 면사무소 주차장 공사로 다시 정면에서 옆으로 이동한 사실 앞에서 답사 기행팀은 죽산 선생에 대한 역사 홀대가 여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답사팀은 곧이어 죽산이 1907년 입학해서 다녔단 강화초등학교를 거쳐, 1910년 세례를 받은 강화 잠두교회(현 강화중앙교회)을 방문해서 죽산의 삶의 행보에서 기독교가 그에게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화중앙교회100년사 집필자 이은용 씨는 “죽산의 정신적 뿌리는 강화에서 피어난 정재두, 이건창으로 대표되는 양명학의 강화학파와 강화진위대장 이동휘 선생으로부터

‘기미년 만세운동 길’ 걸어보자

2014년 3월 17일 650

95년전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 이날 진주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지역의 선각자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독립을 이뤄내야겠다는 의지를 불살랐다. 하지만 진주에서 이처럼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의 혼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는 진주지역 애국선열들을 추모하고 염원을 표현한다는 차원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난 16일 ‘진주 기미년 만세운동 길 걷기’행사를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는 모두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최초의 회합을 가진 하촌동 마을회관 앞에서 진주만세운동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개최한 뒤 만세삼창과 함께 비봉산 고개, 의곡사, 진주교회, 진주목 터, 구 진주극장 앞, 교육지원청 등 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현장을 순례했다. 진주 삼일운동은 1919년 3월 10일부터 5월까지 계속됐다. 연 인원 3만명이 참가했다고 추정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미약하다. 또 기생만세운동이나 걸인들의 만세운동 등 만세운동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특징들은 알려져 있지만 그 전모를 명확하기 파악하는 것 또한 힘든 실정이다. 이에딸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는 역사적 사실들을 모아 진주 삼일운동을 지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이 행사를 준비했다. 진주지회 관계자는 “내년 3회때부터는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을 위한 추모제를 마련하고 참석인원도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가 16일 개최한 ‘진주 기미년 만세운동 길 걷기’행사에 참석한 참석자들이 하촌동 마을회관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경남일보> 2014-03-16 ☞기사원문: ‘기미년 만세운동 길’ 걸어보자 ※관련기사 ◎서경방송: 진주 3.18 만세운동 정신 계승

민족문제연구소 “제천 반야월기념관 백번 철회 마땅”

2014년 3월 4일 1431

【제천=뉴시스】이성기 기자 = 충북 제천시가 박달재에 건립하려던 ‘반야월 기념관’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것과 관련,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가 일단 환영의 뜻을 밝히고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뉴시스 3월2일, 3월3일 보도>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는 4일 성명을 내고 “제천시는 8일로 예정했던 ‘반야월 추모음악회’와 박달재에 세울 예정이던 ‘반야월 기념관’ 건립 기공식을 모두 취소한다고 발표했다”며 “제천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박달재에 친일인사를 기리는 행사가 제천시의 이름으로 거행되지 않은 일은 전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러나 “제천시는 ‘반야월 선생의 과거 친일행적과 관련해 기념관 건립과 명칭 사용이 부적절하다는 지역 여론이 제기됨에 따른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며 “단지 명칭만 바꿀 계획일 뿐 기념관 건립계획의 기본취지를 바꿀 의사가 없음을 시사한 것으로 읽혀 우려한다”고 했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도발을 거듭하는 이때 제천시는 지역 여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다”며 “친일행각을 벌였던 어떠한 음악가의 어떠한 작은 자취도 기념관의 이름으로 우리의 역사와 정서가 배어 있는 박달재에 건립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어 “제천은 의병의 고향으로 항일독립운동의 모태가 됐던 곳이며, 더구나 자양영당과 의병기념관이 굽어 보이는 박달재에 어찌 시대와 역사를 망각한 채 친일음악인의 기념관을 지을 계획을 세웠단 말이냐”며 “백번 철회해야 마땅하고 단순히 이름 바꾸기 차원을 넘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시스>2014-03-04 ☞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제천 반야월기념관 백번 철회 마땅” ※관련기사 ◎ 대전일보: 제천시 반야월 기념관 건립 전면 재검토 ◎ 경향신문: 제천시, ‘울고넘는 박달재’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건립 결의대회

2014년 3월 3일 871

[수원인터넷뉴스] 수원시는 1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수원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창립행사를 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 건립 결의를 다졌다. 이날 열린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건립 결의대회에는 수요집회 등을 통해 줄기차게 일본정부의 공식사과 요구와 국내외에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해 온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를 비롯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 정진숙 수원여성단체협의회 회장, 박은순 수원여성회 대표, 이성호 수원시민사회단체협의회 대표, 이완모 수원새마을단체협의회 회장, 이호헌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장, 이규선 수원YWCA 사무총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수원 평화의 소녀상 건립취지문은 미래세대를 대표해 이민주 화홍중학교 학생이 낭독해 주목을 끌었다. 건립취지문에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인권과 명예회복 뿐만 아니라 인권을 보호하자는 평화 정신을 담고 있다”며 “일본군 위안부 존재와 그들의 아픔을 시민들과 후세들에게 진실하게 알리는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수원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이날 창립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건립추진위원회는 앞으로 시민단체 등과 연계해 추모건립 재원마련을 위해 시민모금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수원시는 일본군 위안부 존재와 그들의 아픔을 시민과 후세에게 알리는 역사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 니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소녀상 건립을 추진했다.  염태영 시장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추모비 건립 부지를 무상제공하고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염 시장은 “시민들이 즐겨찾는 곳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게 될 것”이라면서 “매년 기념식을 열고 사람들이 이 문제에

친일파 민영은 토지환수 청주시민 자긍심 높인다.

2014년 3월 2일 752

충북의 대표적인 친일파 민영은의 일부 후손들이 청주시를 상대로 민영은의 토지를 돌려달라는 재판에서 청주시의 승소를 이끌어낸 청주시민들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동판이 3.1절인 1일 청주 상당공원 인근 등 2곳에 설치된다. 28일 청주시와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 관계자들은 상당공원 옆 지하차로 입구에서 실측을 하는 등 기념동판 설치를 위한 준비작업을 했다. 기념동판이 설치될 장소는 민영은의 후손들이 환수대상 토지로 제기한 청주시내 12곳(1894.4㎡, 공시지가 3억700여만원) 중 이 곳과 홈플러스 성안점 뒤 인도이다.  이날 공개된 기념동판은 가로 40cm, 세로 40cm 규격으로‘이곳은 친일파 민영은의 일부 후손들로부터 시민 여러분이 지켜낸 우리의 땅입니다 ’라는 시민대책위원회 명의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제작비는 1개당 40만원이다. 이에따라 기념동판은 민영은 토지환수 소송 승리에 따른 청주시민의 자긍심 함양을 기념하고 학생 교육용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민영은 후손이 제기했던 해당 토지에 대한 국가의 환수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청주지법에 민영은의 후손을 상대로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 확인 등 소송 및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김성진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 사무국장은 “그동안 청주시민들이 보여준 정의감을 기념동판에 담음으로써 민족자긍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충청타임즈> 2014-02-27 ☞ 기사원문: 친일파 민영은 토지환수 청주시민 자긍심 높인다 ※ 관련기사 ◎ YTN: 친일파 민영은 땅찾기 승소 기념 동판 설치 ◎ 연합뉴스: “이곳은 친일파 민영은에게서 지켜낸 우리 땅입니다” ◎ 뉴스1: 친일파 민영은 땅 되찾기 승소 기념동판 설치

경남高에 5년째 친일파 안용백 동상…”철거해야”

2014년 3월 2일 861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부산의 대표적인 명문고로 꼽히던 경남고에 친일파 ‘안용백’ 동상이 5년 전부터 설립돼 있어 민족문제연구소가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1일 경남 중·고등학교에 따르면 안용백 동상은 2009년 4월 30일 개교기념일을 맞아 학교 동문의 기증으로 교정에 설립됐다. 경남고는 당시 동상을 기부했던 재일교포 강모(80)씨가 “초대 안용백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말과 격려가 일본에서 힘들게 생활할 때마다 떠올랐다. 교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학생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며 기부목적을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민족문제 연구소에서는 친일파의 동상이 학교 교정에 설치된 것은 교육 목적에서 부적절하다며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박기호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부장은 “안용백이 학교에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친일을 한 사람의 흉상이 교정에 설치되고 졸업생이나 앞으로 배우는 학생에게 존경할 분으로 알려질 우려가 있다”면서 “안용백은 교장이 돼서도 안 되는 사람이지만 시대상황에 따라 됐다고 하더라고 이러한 반성 없이 지어진 흉상은 철거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달중으로 경남고에 항의방문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안용백은 조선총독부에서 관료료 일하며 1941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일본 정신을 체득함으로써 내선일체를 이루자고 주장하는 내용의 글을 기고하는 등 각종 황국신민화 정책을 선전하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해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이후 안용백은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전남도 교육감 등을 역임했고 경남고의 교장을 맡기도 했다. 한편 1982년 광주 중외공원에 안중근 동상 등과 나란히 설치됐던 양용백의 동상도 지난해 시민단체의 거센

군포(산본)정모/안양(만안동안)정모 안내

2013년 4월 30일 635

경기중부지부 카페로 오시면 됩니다. 군포(산본)정모 : 5월2일 안양(만안 동안)정모 : 5월11일   문의 :  군포 이병진부지부장 010~3912~4103           안양 허창렬부지부장 011~9071~8649          

‘친일’ 논란 인물들, 어린이의 우상이 되다

2012년 8월 16일 955

경기 과천에 살고 있는 ㄱ씨는 집 근처 서울대공원 주변을 산책할 때마다 한 쌍의 동상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불편하다. 두 개의 동상 중 하나는 일제시대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를 척살한 조명하 선생의 동상, 또 하나는 친일파 논란에 휩싸인 인촌(仁寸)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의 동상이다.ㄱ씨는 “어떤 사연으로 이 두 사람의 동상이 함께 자리를 하게 됐는지 자세한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봄·가을 소풍이나 수학여행 기간 동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많이 오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동상을 철거하든가, 철거가 불가능하다면 어디 안보이는 구석으로 옮겨야 하는게 아니냐”고 말했다.67주년 광복절인 15일, 친일 논란을 빚고 있는 인물들의 동상은 주요 공공시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이들 동상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세워져 있어 교육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공원 내 세워진 인촌 김성수 동상 서울대공원의 인촌 김성수 동상은 인촌기념회가 1991년 11월 인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했다. 인촌 김성수는 일제시대 전국 일간지에 일제의 징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글을 여러 편 기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인사로 지목됐다. 유족들은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법원은 인촌의 친일행적을 일부 인정했다.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서울 광진구의 어린이대공원에도 친일 논란 인물의 동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곳에는 유관순, 조만식 등 애국지사 동상과 함께 소설가 김동인 등의 동상도 있다. 김동인은 일제시대 ‘매일신보’에 글을

친일파 불망비, 친일행적 안내 현판의 불편한 동거

2012년 8월 16일 1018

  전북 진안군 부귀초등학교 인근 도로에는 일제강점기 친일파 중 한 명인 윤치호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과 친일행적을 비판하는 안내현판이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윤치호의 논밭을 가꾼 소작인들이 세운 시혜 불망비와 당시 학교 건립 부지를 제공했다며 면장이 세운 흥학 불망비.그 옆에 서 있는 친일행적 안내현판은 지난 13일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가 세웠다. 현판은 애국계몽 활동을 하다 투옥된 뒤 변절의 길을 걸으며 식민지 통치를 당연시하는 독립무용론 등을 주장한 윤치호의 행적을 알리고 있다.불망비 2기는 애초 부귀초등학교 안에 서 있었다. 2009년 7월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의 요람에 친일파를 기리는 비석이 서 있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치라며 불망비 2기를 철거했다. (노컷뉴스, 12.08.14)그러나 ‘친일이라도 진안군의 역사를 담은 문화재’라는 일부의 주장과 윤치호의 종중 후손들의 끈질긴 요구로 불망비는 최근 반환됐다. 반환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고, 그에 따라 비석과 안내현판이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 것이다.일제로부터 해방은 됐지만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오늘날의 현실과 어딘가 닮은 모양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의 잔재는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 아직도 현재를 옥죄는 멍에라고 말한다.김재호 전북지부장은 “그때 청산해야 할 과제나 인물들이 버젓이 우리 사회의 기둥으로 커 오면서 지금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전주초등학교 내 황국신민의 덕목을 담은 표지석과 진안 정천의 친일관료 고원훈 선덕비, 전주종합경기장의 김연수 현판 등 전북지역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