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광복70년] 교육현장 ‘애국주의’ 탈 쓴 ‘일제 잔재’ 여전
‘국민의례, 애국조회, 훈화’ 등 대표적 일제 잔재 군사정권 민족주의·반공주의 등 애국 의식 함양 도구로 쓰여 뉴스1 News1 손형주 기자 올해로 우리 민족이 해방 70년을 맞는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위한 각종 문화나 제도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히 뿌리내린 상태다. 특히 이런 모습이 교육제도 안에 오랫 동안 무비판적으로 남아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아직 일부 학교에서는 매주 애국조회를 열고 학생들에게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도록 한다. 복장과 소지품, 두발검사를 하는 등 정해진 규율 안에서 학생들을 엄격하게 지도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등 주요 행사에서 빠짐없이 하는 ‘국민의례’가 일본 제국주의 시대 궁성요배와 기미가요 제창, 신사참배 등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학교에서 구령에 맞춰 단체로 인사하는 문화도 일제 잔재의 영향으로 꼽힌다. 이러한 모습 자체가 결국 조선인을 일왕의 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일제가 택한 ‘황국신민화 정책’과 비교해 추구하는 목적만 다를 뿐 그대로 답습한 결과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통치를 위해 강제한 각종 문화나 제도가 특히 교육 현장에 많이 남아있다”며 “애국조회나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제창 등 국가주의적 시스템이 애국주의의 함양이라는 미명 아래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화가 비판 없이 부활할 수 있었던 데는 군사 독재 정권이 반공주의·민족주의적 의식을 국민에게 심어주기 위한 도구로 받아들인 영향이 컸던
[재판으로 본 현대사](44)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中)
ㆍ“노 대통령은 볼셰비키” 색깔론, “국회 표결 절차상 하자” 맞서 ■ 노 대통령 탄핵의 정치심리학 분명히 이긴다고 자신했던 대통령 선거에서 뜻밖에 역전패한 한나라당의 낭패감, 당이 공천한 대선 후보(노무현 대통령)가 당선 후 새로운 여당(열린우리당)을 만든 데 대한 새천년민주당의 배신감, 이런 요소들이 복합되어 야당은 새로 등장한 노무현 정권을 그 출범 초부터 백안시했다. 노 대통령 취임 열흘쯤 되었을 때부터 ‘탄핵’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는가 하면, 취임 반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제1야당 대표가 “이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인가? 나는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대통령 잘못 뽑았다”고 그야말로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들의 탄핵 의도는 노 대통령의 ‘실정(失政)’ 이전부터 점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야당 측의 이런 저의와는 별개로, 노 대통령의 탄핵사태 대응에 아쉬움을 보이는 의견도 있었다. 즉 그의 실언이나 과오가 과연 탄핵을 받을 정도의 사안이었나 하는 것과는 별개로, 탄핵 시비가 벌어졌을 때 노 대통령이 이를 진화하려는 노력을 왜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홍서여, <미추의 말과 글로 본 대한민국 근현대사>, 팝샷, 2015). 국민 여론의 역풍에 놀란 야당에서는 탄핵안을 둘러싸고 사과, 철회 등 후퇴론이 나와 자중지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두 번 죽는다’는 의견이 강세여서 기존의 밀어붙이기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런 양측의 불퇴전의 한판 대결 속에서 4·15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결과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전체 의석 299석 중 152석을 차지함으로써 원내 제1당으로 약진했다.
영화 배우 조진웅,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홍보대사 위촉
[보도자료] [다운로드] 영화 <암살> 배우 조진웅,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홍보대사 위촉 ▲ 영화 <암살>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 추상옥(일명: 속사포)으로 열연하는 조진웅 ⓒ 케이퍼필름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까지 이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영화 <암살>이 천만 관객 동원을 앞둔 가운데 영화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 추상옥 역을 맡은 배우 조진웅이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위촉된다.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무장투쟁 기지로서 3,500여 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 이상룡 이동녕 김동삼 김대락 등 항일애국지사들이 경술국치를 당한지 1년도 안된 1911년 6월 10일 중국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 마을의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 신흥강습소로 시작했다. 일제와 중국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강습소’란 이름을 달았지만 명실상부한 독립운동의 요람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신흥무관학교는 갖은 역경을 뚫고 10여 년에 걸쳐 수많은 전사들을 길러냄으로써 항일운동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겼다. 신흥무관학교가 배출한 인재들은 청산리대첩을 비롯한 독립전쟁에서 기간요원으로 참전하여 혁혁한 무훈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비롯해 조선혁명군·의열단·한국독립군·고려혁명군·한국광복군 등 독립전선 각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해방 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유지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1945. 9. 17 중경 연화지청사 앞에서) ⓒ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신흥무관학교 관련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독립운동 전공 연구자들 그리고 역사에 관심이 높은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2011년도 설립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상임대표 윤경로 www.sh100th.org)는 최근 조진웅 씨가 영화 <암살>에서 혼신의 연기를 통해
‘암살’이 상기시켜준 친일영화 이야기
“해방될 줄 몰랐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대사였다. 어떻게 변절할 수 있냐는 질문에 해방될 줄 몰랐으니 그랬다는 대답이었다. 사실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어르신들에게 비슷한 말씀을 들어본 적 있다. 일본이 전쟁에서 이길 줄 알았다고. 패전 소식은 충격이었다고. 물론 이러한 상황 판단이 반드시 영화 속 인물처럼 친일적 행보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필자가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어르신들은 1920년대 이후에 태어나신 분들인데, 대부분 해방 직전 시기에 학생이었다. 그분들의 기억에 따르면 학교에서 늘 틀어주는 뉴스영화, 문화영화 등을 통해 전쟁 소식을 접했고, 뉴스 내용대로 당연히 이기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해외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통제 하에 제작되는 신문과 라디오 뉴스, 뉴스영화 등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일본의 승전을 예상하고, 동시에 해방은 점점 가망 없는 일로 보이게 했을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 중인 영화들 중에는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뉴스영화와 문화영화들도 있다. VOD 서비스로도 볼 수 있는 이 영화들을 보면, 일본군은 전쟁에서 점령지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고, 온 국민들은 기꺼이 참전하거나 허리띠를 졸라 매며 동참하고 있다. 쌀과 금비녀 등을 기꺼이 내놓으면서. 오늘은 당시 영화, 영화인들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하며 ‘친일 영화인’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한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1941년 일본이 제2차
영화 “암살” 설민석의 스페셜 인강
☞2015. 8. 4. 영화 [암살] 설민석의 스페셜 인강 ☞2015. 8. 1 접속! 무비월드_기획: 〈암살〉 그 역사 속으로
“친일청산은 현재 진행형…광복은 통일로 완성해야”
[파워인터뷰]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 권: 교수님 반갑습니다. 혹시 영화 <암살>을 보셨나요? 윤: 예. 봤습니다. 아주 잘 만들었더라고요. 최근에 자주 영화를 보진 못하지만 마침, <암살> 내용이 신흥무관학교와 관련 있다고 해서 그쪽에서 시사회에 참석을 청을 받아서 우리 같이 역사를 공부하는 분들, 신흥무관학교와 관련된 분들, 독립 유공자 분들, 후손들이죠. 이렇게 같이 봤습니다. 신흥무관학교, 3천여명의 독립군 양성 권: 지금 말씀하셨는데, 교수님께서는 신흥무관학교 기념 사업회 상임대표신데요, 영화 암살덕분에 이 학교가 유명해졌습니다. 신흥무관학교, 간단하게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윤: 우리가 1910년 8월에 일본에 병합당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니깐 거기에 울분을 분개한 뜻 있는 애국자들이 중국으로 망명을 떠납니다. 특별히 이회영 6형제, 이 분들은 서울에서 많은 재산들을 다 처분하고 만주로 독립운동 양성을 위해 갔고. 또 하나는 경상도 안동에 석주 이상룡선생을 중심으로 일가족, 친척들이 대거 망명을 합니다. 그래서 길림성 삼원보라는 곳에서 향후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한 독립군 양성을 위해서 학교를 세우는데, 처음에는 경학사라고 했다가 왜냐면 중국에서 처음부터 무장 독립군을 세운다고 하면 그게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이 나중에 신흥 학교, 신흥 중학교 그랬다가 1919년 3·1운동이후 본격적으로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꿔서 당시 기록에 보면 3000-3500명의 항일 독립군을 양성을 했죠. 그 짧은 기간이었지만은 3개월, 6개월짜리 단기간으로. 그래서 그분들이 잘 아시듯이 1920년 봉오동 전투, 청산리 싸움. 이런데 일본 대군을 상대로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신흥무관학교에서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1부 ‘친일후손 1177′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1부 ‘친일 후손 1177’ 뉴스타파는 해방 70주년을 맞아,1948년 반민특위의 좌절 이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친일청산의 문제 등을 집중 조명하는 6편의 특집 프로그램을 기획 편성 방송합니다. ‘친일과 망각’ 4부작은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을 추적해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고 직업은 무엇인지, 특히 친일문제와 친일파로 공인된 선대에 대한 의식은 어떤지 조사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막연하게 추정해왔던 친일파 후손들의 현재 모습을 인구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기사 보기 ※ 함께보기 –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간의 대장정
충북 음성지역 “1급 친일 작가 이무영 생가터.작품비 철거” 여론 확산
충북 음성군이 관리하고 있는 음성읍 석인리 1급 친일작가 이무영(1908년~1960년) 생가터 및 작품비, 유품 등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역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 생가터는 지난 2006년 음성군이 매입해 문화관광시설로 관리했다. 군은 다양하게 이무영 기념사업(무영제)을 지원하다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1급 친일 작가로 그의 적나라한 친일행적이 공개된 이후 2012년부터 예산지원을 중단하고 그의 이름을 붙였던 도로(무영로) 이름을 바꿨다. 이무영은 대표적 농민문학가로만 널리 알려져 음성지역 문학인들의 지지를 받아 1985년 이무영 작품비가 건립되기도 했다. 또 1994년부터 2012년까지 군의 예산 지원을 받아 충북의 일간지 A사와 음성예총이 해마다 무영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생가터에 이무영 흉상이 세웠졌고 2007년엔 이무영 작품비가 건립됐으며 2010년에는 음성읍의 지원으로 음성읍 석인2리 생가마을(오리골) 입구에 ‘농민문학가 이무영선생 생가마을’ 표지석이 들어섰다. 지난 2012년 이후 군에서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한 무영제는 이무영의 유족들이 수년째 자비를 들여 해마다 A언론사와 농민 문학인들이 생가터에서 개최하고 있고 무영문학상도 16회 동안 시상하고 있다. 당시 이광수나 최남선처럼 민족진영 작가였지만 일제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해서 친일로 변절한 것이 아니라 이무영은 성장과정부터 ‘철저한 친일’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꾸준한 문학 활동을 통해 일본의 식민정책을 선전하면서 일제에 적극 협조.가담했다. 특히 이무영은 조선에서 최초로 일본어로 쓴 소설 ‘청기와집’을 발표해 조선예술상 총독상을 수상했다. 이무영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기 전까지 추앙받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성군 출신 농민문학가였다. 이상정 음성군의원은 “대표적인 친일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1부 ‘친일후손 1177′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1부 ‘친일 후손 1177’ 뉴스타파는 해방 70주년을 맞아,1948년 반민특위의 좌절 이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친일청산의 문제 등을 집중 조명하는 6편의 특집 프로그램을 기획 편성 방송합니다. ‘친일과 망각’ 4부작은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을 추적해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고 직업은 무엇인지, 특히 친일문제와 친일파로 공인된 선대에 대한 의식은 어떤지 조사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막연하게 추정해왔던 친일파 후손들의 현재 모습을 인구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기사 보기 ※ 함께보기 –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의 역사
분단 70년 극복과 새로운 동아시아를 위하여
[알림] ‘광복 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 토론회 개최 광복 70돌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남북을 둘러싼 한반도는 갈등과 대립의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여기에 2차대전 패전국이자 한국을 식민지배했던 일본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틈타 ‘전쟁범죄국가’라는 꼬리표를 떼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의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광복 70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찾아보기 힘든 현실 속에서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 방안을 모색하고자 ‘광복 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에서는 오는 10일(월)부터 12일(수)까지 총 세 차례에 걸친 연속 토론회를 마련했습니다. 첫날인 10일 오후 3시에는 ‘남북관계 언론보도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언론학 박사인 김춘효 언론노조 정책위원과 정치학 박사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대표 발표를 맡았습니다. 이외에 심영섭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 김정환 KBS 기자, 장용훈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 추혜선 언론연대 정책위원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합니다. 둘째 날인 11일 오후 2시에는 ‘일본의 역사 왜곡, 군국주의 부활과 대응 방안’을 주제로 한국노총, 민주노총, 민족문제연구소, (사)평화디딤돌이 함께하는 광복 70돌 기념 합동토론회를 가집니다. 이 토론회에서는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일본역사왜곡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점’을, 장완익 태평양전쟁피해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가 ‘한일협정 50년 체제의 반성과 새로운 관계설정’을,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이 ‘정부 대일정책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각각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후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강제노동 배상에 대한 ILO 권고안과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윤명숙 충남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 전임연구원이 ‘일본군 위안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