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오마이뉴스] 함안군, 친일 문인 조연현 ‘시판’ 없앤다
아라길 산책로에 설치 … 사업소 “문협에 다른 문인 작품 추천 요구, 없으면 철거” <관련기사> “친일 문인 조연현 시판, 부끄럽다” 철거 요구 http://omn.kr/1v4ci (9월 8일자) 경남 함안군 아라길 산책로에 세워진 친일문인 조연현(趙演鉉, 1920~1981)의 ‘시판(詩版)’이 철거된다. 함안군 공원관리사업소 관계자는 24일 “군민 정서를 반영해 시판을 철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함안군은 시를 추천했던 한국문인협회 함안지회에 오는 29일까지 다른 문인의 시를 추천해 달라 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철거하기로 했다. 공원관리사업소 관계자는 “한국문인협회 함안지회에서 추천을 받아 시판을 세웠고, 조연현이 아닌 다른 문인의 시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며 “기한 내에 추천이 없으면 다음 주에 조연현 시판을 철거할 것”이라고 했다. 함안군은 지난 7월 가야읍 산책로 ‘아라길’에 지역 출신 문인들의 시판을 설치하면서 조연현이 쓴 시 <진달래>를 새겨 놓았다. 이후 참여와연대를위한함안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은 “함안군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며 “함안군은 당장 아라길 조연현 시판을 철거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함안 출신인 문학평론가 조연현은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하고, <동양지광>에 1942년 5월 “동양에의 향수”, 1942년 6월 “아세아부흥론서설”, 1943년 1월 “문학자의 입장”, 1943년 8월 <국민문학>에 “자기의 문제로부터”, 1943년 12월 <신시대>에 “평단의 일년” 등 친일 글을 발표했다. 그의 친일행적에 대해 시민모임은 “한마디로 당시 일본이 벌이는 전쟁에 전국의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선동한 것”이라며 “이것이 친일이 아니고 무엇이 친일인가?”라고 했던 것이다. 조연현은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실천문학, 민족정기를세우는국회의원모임, 나라와문화를생각하는국회의원모임이 2002년, 광복 57주년을 맞아 ‘친일문학인 42인’을 선정했을
[인천일보]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인천상륙작전의 역사현장 탐방’ 행사 개최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지부장·김재용)는 25일 오전 인천역과 자유공원, 월미도 일원에서 ‘인천지역의 6.25 전쟁-인천상륙작전의 역사현장’ 탐방 행사를 가졌다. ‘2021년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의 세 번째 순서로 개최된 이 날 행사는 인천광역시 지원 사업으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인천역 앞에서 출발한 탐방단은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된 북성포구와 월미공원, 월미 전통정원, 그린비치, 월미도 정상 등을 두 그룹으로 나눠 2시간여에 걸쳐 돌아봤다. 해설은 최태육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장과 이희환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가 각각 맡았다. 이 연구교수는 “1950년 9월 15일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빛나는 승리로 회자되고 있지만, 그 뒤에 가려진 월미도 원주민의 아픔은 조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는 인천상륙작전 과정에서 벌어진 항공기 폭격과 함포 사격으로 인해 월미도 주민 100여 명의 희생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륙작전을 감행한 미군은 ‘불필요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국제인도법상의 전쟁 규범을 외면한 채 군사적 목표물과 비군사적 목표물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 집중 포격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런 희생을 치른 월미도 원주민들은 전쟁이 끝난 뒤 자신들의 거주지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지금까지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월미도 원주민들은 지난 2006년부터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공동으로 ‘월미도미군폭격희생자위령제’를 거행하는 한편, 귀향대책위원회를 꾸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연구교수는 “인천시와 국방부는 화해와 평화를 얘기하면서도 원주민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채 인천상륙작전을 전쟁축제로 재생하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면서
[한국타임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고려인의 아픈 역사’ 민주인권 포럼 개최
10월2일 오후 2시 광주고려인마을에서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국가가 지키지 못한 백성 ‘고려인의 아픈 역사’ 민주인권 포럼이 오는 10월2일 오후 2시 ‘역사마을 1번지’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에서 개최된다. 고려인마을 내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개최되는 이번 포럼은 한국 근현대사에 나타나는 ‘국가폭력과 민주인권’ 주제의 제12강으로 광주광역시와 광주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하고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지부장 김순흥)가 운영한다. 강사로는 김병학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장이자 전)카자흐스탄한국문화센터소장과 김올가 백마탄장군 김경천 장군 후손, 한동건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이자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이자 전)광주대학교 교수가 발제에 나선다. 고려인들의 마음의 고향 ‘연해주(원동)’는 역사적으로 우리 배달민족의 혼과 얼이 사무쳐 있는 곳이다. 먼 옛날, 고구려, 발해로 이어진 우리 조상의 발자취는 1000여 년의 단절 끝에 19세기 후반, 기아와 곤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넌 조선인을 시작으로 연해주는 다시금, 우리 한인들의 역사에 중요한 장이 되었다. 나라를 강탈당하자 국권회복의 희망을 품은 애국지사들이 연해주로 모여들자, 연해주는 항일 독립투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최재형, 김경천, 홍범도, 윤봉길, 신채호, 이상설, 이종호, 이동녕, 이동휘, 안중근 등 우리 역사에 길이 빛나는 애국지사들은 국권회복을 위해 피어린 투쟁을 연해주를 중심으로 벌였다. 하지만 1937년, 연해주에 거주하던 17만여 명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면서 역사의 흔적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려인은 한국역사에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구 소련이 붕괴되자 또다시 유랑민으로 전락한 고려인 후손들이 새로운 이주지를 찾아 낯선 조상의 땅에 살며시 들어와 ‘곁방살이라도 좋으니 살게만 해달라’고 애걸 복걸했지만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한겨레21] 울산-100년 만에 부활하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울산박물관 12월까지 특별전시회…서훈 등급 상향 촉구 10만 서명운동도 “그런데 때마침 대한광복단에서 저지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대구의 소문난 부자 장승원을 광복단원들이 사살한 것이었다. 지난날 관찰사를 지내면서 임금의 토지까지 착복해가며 재산을 모은 장승원은 대한광복단에서 추진하는 군자금 조달에 불응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상도 지부장 채기중을 비롯한 광복단원들을 경찰에 밀고하려고 했던 것이다. 광복단에서는 통고문을 보낸 전국의 부자들에게 시범을 보일 겸해서 장승원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 것이었다.”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6권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일제강점기 1917년에 실제 있었던 대한광복회(대한광복단으로도 불렸다 합니다)의 활동 모습을 서술한 겁니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기존 의병투쟁과 계몽운동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통합해 결성한 전국 규모의 비밀결사조직이었습니다. 그 중심에 광복회 결성과 함께 총사령을 맡은 고헌 박상진 의사가 있었습니다. 판사 발령 포기하고 독립운동 나서 소설 <아리랑>은 박상진 의사와 대한광복회에 대해 이같이 설명합니다. “박상진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왜놈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보다 굳게 가진 인물이었다. 왜놈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군대를 양성해야 하고, 군대를 양성하려면 막대한 군자금이 있어야 했다. 그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박상진이 전국적으로 조직한 것이 대한광복단이었다.” 박 의사는 일제 군경에게 붙잡혀 조사받을 때 광복회라는 조직 이름과 관련해 “일본에 빼앗긴 국권을 본래대로 돌이키고 사물을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다는 뜻으로 ‘광복’이란 말이 이때부터 쓰였던 것입니다. 박상진 의사는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 12월7일 현재의 울산 북구 송정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양정의숙에서
[YTN] “더 늦기 전에”…생존 독립운동가 손발까지 영원히 남긴다
[앵커] 광복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요. 광복 80주년까지 4년 남은 지금, 더 늦기 전에 생존 애국지사의 모습을 남기는 작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철희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독립을 위해 싸웠던 김영관 애국지사. 어느덧 올해 98살이지만 또렷한 말투에선 자긍심이 넘칩니다. 1944년, 만 20살에 경성사범대를 다니다 일본군에 징집돼 중국 저장성으로 끌려갔습니다. 일본을 위해 싸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목숨 걸고 부대를 탈출해 가까스로 광복군에 합류했습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태극기를 앞세우고 우리를 마중을 왔더라고요. 저는 그 태극기를 보고 하염없이 그냥 눈물 흘리고 감격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저 태극기를 위해서 여기까지 목숨 걸고 왔구나.’] 그로부터 2년 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여생은 후대에 올곧은 저항 정신을 남기는 데 쏟자고 다짐하고 기념사업회를 세워 일하고 있지만, 갈수록 독립의 정신이 흐려지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지사로서의 삶 역시 쓸쓸히 잊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역사를 잊은 민족이나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또 역사적 사실, 역사적 팩트를 잊어버리면, 외면하면 똑같은 일이 또 되풀이된다. 이런 엄혹한 현실을 잊지 말고….] 김 지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들이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으로 유명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생존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남기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3D 프린터 등을 이용해
[오마이뉴스] ‘조선’은 어떻게 ‘2조 5천억’ 부동산 부자가 되었나
[김종성의 히,스토리] 조선일보의 성장 비결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조선일보> 사주 일가의 부동산 규모를 16일 공개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 45%에 해당하는 40만여 평으로, 공시지가로는 4800억 정도, 시가로는 2조 5천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속초·양양·의정부·인천·서울·화성·대전·부산 등에 부동산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 김 의원의 설명이다. 앞으로 언론사 및 사주의 재산을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그는 예고했다. <조선일보>는 초창기에도 재산 문제로 주목을 받았다. 방상훈 현 대표이사의 증조부인 방응모가 1933년 인수한 뒤에 이 신문사는 금(金) 문제로 주목을 받았다. 방응모가 평안북도 삭주군에서 금광 사업으로 큰돈을 번 뒤였을 뿐 아니라 그의 경영 방식이 언론기관보다는 일반 기업에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방응모의 경영방식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에 평안북도 서부인 정주군에서 태어나 10대 중반까지 한학을 공부한 방응모는 국권 침탈(경술국치) 1년 뒤인 1911년(만 27세)에 잠시 교편을 잡았다가 변호사 사무소에서 대서업을 경영했다. 3년 뒤 그만둔 그는 31세 때인 1915년부터는 자택을 이용해 여관사업을 경영했다. 그가 신문 사업에 손댄 것은 38세 때인 1922년이다. 이때는 <조선일보>가 아니라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 정주분국을 인수했던 것이다. 뒤이어 정주지국장이 됐고, 1924년부터는 삭주군의 교동광업소를 겸영하면서 굴지의 광산업자로 떠올랐다. 그는 식민지배에 참여할 의향도 있었다. 1927년 정주지국장에서 정주지국 고문으로 물러난 그는 46세 때인 1930년에 광역의원 선거인 도평의회(도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조선일보>와의 인연은 그로부터 얼마 뒤 맺어졌다. 48세 때인 1932년에 <조선일보> 영업국장이 됐다가 1933년에 아예 인수했다.
[오마이뉴스] 광복군 창립일, 광복군 창설 이끈 남산 김구 동상 직접 가보니
[현장] 친일파 김경승이 조각, 만주군 출신 박정희 대통령 건립기념글 그대로 있어 ‘조각 김경승 민복진 / 1969년 8월 23일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세움’ 서울 남산공원에 세워진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 뒤쪽에 붙은 머릿돌 내용 중 일부다.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는 대표적 친일 작가 김경승이 조각했다고 새겨졌다. 그리고 백범 동상 우측 하단부에는 김경승과 마찬가지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만주군 출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건립기념글도 새겨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친필로 새겨진 건립기념글에는 “위국성충은 일월과 같이 천추만대에 기리 빛나리”라는 글과 함께 “서울 백범김구선생동상건립에 즈음하여 일천구백육십구년 팔월 대통령 박정희”라고 적혔다. 잘 알려졌듯 백범 김구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항거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1919년 3.1운동 후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인물이다. 무엇보다 1940년 오늘(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이 창설될 수 있도록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자 한국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주도적인 역할했다. 실제로 1940년 9월 15일 백범은 자신의 명의로 한국광복군선언문을 발표하는데, 선언문에는 “중화민국 영토 내에서 광복군은 중화민국 국민과 합작하여 우리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연합국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라고 적혔다. 그리고 이틀 뒤인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군행사가 중국 충칭 가릉빈관에서 열린다. 남산 백범 동상 뒤쪽 우측에 새겨진 백범 김구 선생 약전에도 “1940년에 임시정부를 중경(충칭)으로 옮기고 한국광복군을 조직해 (1941년)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도 독립보장을 받았다”라고 강조됐다. 한 마디로
[오마이뉴스] ‘최재형 캠프’ 조해진 “민족문제연구소가 국가 공인 ‘친일감별사’냐”
[대정부질문-정치] 독립유공자 후손 논란 관련 질의로 풀이… 전해철 “친일 문제에 상당히 기여”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오후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를 문제 삼았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의 ‘공적 권위’를 정부에서 만들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8월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경선 후보의 증조부·조부의 독립유공자 논란 때 “최 후보 조부와 증조부의 행적은 독립운동가의 삶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최 후보 측은 “일개 시민단체에 불과한 민족문제연구소가 아니라고 하면 독립운동이 아닌 건가. 100년 전 있었던 일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는 건가”라고 반박했다. 참고로, 조 의원은 최재형 캠프의 기획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날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민족문제연구소가 국가기관인가, 정부가 친일문제에 대해 유권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전 장관은 “(국가기관이) 아닌 걸로 안다. (유권해석 권한을) 정부가 부여한 건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로 안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 의원은 재차 “국가기관도 아니고, 유권해석 권한을 부여받은 적도 없는데 정부 기관들이 친일파 판정 관련해서 민족문제연구소의 판단을 금과옥조로 받들고 있나”며 “왜 정부가 민족문제연구소를 국가가 공인한 ‘친일감별사’처럼 대하나”라고 물었다. “정부 기관이 연구소 판단 받들어”… “친일 문제에 상당히 기여한 것은 사실” 이에 전 장관은 “(조 의원이) 어떤 사안으로 질문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문제에 대해 상당한 사회적 합의 내지, 사회적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6. 13화 “쌀로 보는 근현대사 2부”
☞ (9.14) ‘내역사’ 시즌 6: 13화: “쌀로 보는 근현대사 2부” ☞ (9.07) ‘내역사’ 시즌 6: 13화: “쌀로 보는 근현대사 1부” ☞ (8.11) ‘내역사’ 시즌 6: 12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별기획_만화 친일파 열전_박시백 화백과 함께” ☞ (8.11) ‘내역사’ 시즌 6: 11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 순국100주기 특집 _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2부” ☞ (8.10) ‘내역사’ 시즌 6: 11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 순국100주기 특집 _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1부” ☞ (7.06) ‘내역사’ 시즌 6: 10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집_대전지부 후원회원들과 함께” ☞ (6.29) ‘내역사’ 시즌 6: 9화: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 (6.22) ‘내역사’ 시즌 6: 8화: “비핵화 프레임을 넘어 종전선언으로(2) ☞ (6.15) ‘내역사’ 시즌 6: 8화: “비핵화 프레임을 넘어 종전선언으로(1) ☞ (6.14) ‘내역사’ 시즌 6: 7화: 긴급편성 “역사부정주의 논리를 담고 있는 6월 7일 강제동원 판결”에 대해 말하다 ☞ (6.08) ‘내역사’ 시즌 6: 6화: ‘사랑도 발명이 되나요?”의 저자 김형민피디와 함께 ☞ (6.01) ‘내역사’ 시즌 6: 5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집_광주지부 후원회원들과 함께 ☞ (5.25) ‘내역사’ 시즌 6: 4화: “91년 5월투쟁 30주년 특집_기억을 넘어 실천으로” ☞ (5.18) ‘내역사’ 시즌 6: 3화: “5.18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식” 영화 김군의 강상우 감독과 함께 ☞ (5.11) ‘내역사’ 시즌 6: 2화: “미얀마 민주화 투쟁과 연대하다” ☞ (5.04) ‘내역사’ 시즌 6: 1화: 새로운 시즌을 시작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집 준비”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신흥무관학교 제2편 망명로드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신흥무관학교 제2편 : 망명로드 ☞ 신흥무관학교 제1편 : 신민회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