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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6개월 만에 재개된 수요시위… 일장기 흔든 『반일종족주의』 저자
[현장] 1516차 수요시위, 보수단체 선점으로 연합뉴스 앞에서 진행 ‘위드코로나’ 후 수요시위가 정확히 16개월 만에 다시 오프라인 집회로 전환됐다. 그러나 현장에는 일장기를 흔드는 보수단체 회원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이 이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3일 ‘반일동상 진상규명 공대위’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 평화의 소녀상 부근 연합뉴스 앞에서 열린 1516차 정기 수요시위에 모여들어 일장기와 성조기, 태극기 등을 흔들며 “위안부 성노예설은 거짓이다”, “위안부 동상 철거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섰다. 그 자리에는 <반일종족주의> 공동저자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있었다. <반일종족주의> 저자가 일장기 흔든 이유 그는 <오마이뉴스>의 ‘수요시위 현장에서 일장기를 흔드는 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무례한 일 아니냐’라는 질문에 대해 “다수가 옳다고 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 않냐”며 “수요시위가 옳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일장기를 흔드는 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수요시위에 참석한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극우주의자들이) 먹고살려고 저런 행위를 하는 것”이라면서 “안타까운 건 저들의 뻔뻔함이 어느새 수요시위에 와서 히노마루(일장기)를 흔드는 단계까지 왔다. 갈 때까지 갔다”고 비판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도 일장기를 흔든 이 위원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라고 되묻기도 했다. 수요시위는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에 앞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회원들이 그해 1월 8일 정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연 이후 매주 수요일 12시에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앞서 1991년 8월 14일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6. 15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집_전북지부 후원회원과 함께”
☞ (11.02) ‘내역사’ 시즌 6: 15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집_전북지부 후원회원과 함께” ☞ (10.26)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4부 “4월 혁명의 노래” ☞ (10.19)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3부 “노래에 담긴 전쟁과 상흔” 2편 ☞ (10.12)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3부 “노래에 담긴 전쟁과 상흔” 1편 ☞ (10.5)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2부 “해방과 분단의 노래” ☞ (9.28)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_1부 “식민지시대 금지곡” ☞ (9.14) ‘내역사’ 시즌 6: 13화: “쌀로 보는 근현대사 2부” ☞ (9.07) ‘내역사’ 시즌 6: 13화: “쌀로 보는 근현대사 1부” ☞ (8.11) ‘내역사’ 시즌 6: 12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별기획_만화 친일파 열전_박시백 화백과 함께” ☞ (8.11) ‘내역사’ 시즌 6: 11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 순국100주기 특집 _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2부” ☞ (8.10) ‘내역사’ 시즌 6: 11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 순국100주기 특집 _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1부” ☞ (7.06) ‘내역사’ 시즌 6: 10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집_대전지부 후원회원들과 함께” ☞ (6.29) ‘내역사’ 시즌 6: 9화: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 (6.22) ‘내역사’ 시즌 6: 8화: “비핵화 프레임을 넘어 종전선언으로(2) ☞ (6.15) ‘내역사’ 시즌 6: 8화: “비핵화 프레임을 넘어 종전선언으로(1) ☞ (6.14) ‘내역사’ 시즌
[미디어오늘] 장지연 언론상에 김순덕 동아일보 대기자
2012년 수상자 이후로 9년 만 장지연 친일 논란에 휩싸이기도 김순덕(59) 동아일보 대기자가 지난 1일 제24회 위암 장지연 언론상을 수상했다. 위암 장지연기념회(회장 조강환)는 장지연 선생 서거 100주기 맞아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학술토론회(‘장지연 명(名) 논설과 사실 보도 토론회’)와 언론상 시상식을 열었다. 위암 장지연 언론상은 9년 만이다. 2012년 제23회 수상자는 김세형 매일경제 고문이었다. 을사늑약 후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싣는 등 독립운동가로 알려졌던 장지연 선생은 2000년대 들어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환영 하세가와 총독’이라는 한시를 싣는 등 그에 관한 사료를 보면 독립유공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을 수록했다. 2011년 4월 정부는 1962년에 수여했던 장지연의 건국훈장을 박탈했다. 언론재단은 1999년부터 15년 동안 위암 장지연기념회와 장지연상을 공동 주최하고 매해 4500여만 원의 재정을 지원했지만 친일 논란이 제기된 2005년 지원을 중단했다. 반면 김진경 동아일보 지식서비스센터장 겸 사료연구실장은 지난 9월 관훈저널 가을호에서 장지연을 둘러싼 논쟁과 논란을 정리했다. 김 실장은 장지연의 저서 ‘일사유사’를 번역·출간한 김석회 인하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와 제자들의 주장을 빌려 “장지연 저작 전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더욱이 친일 행위 일색으로 비끄러매어 재단하는 것은 온당한 이해의 관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편 수상자인 김순덕 대기자는 보수진영을 대변해온 언론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3·1절 기념식에서 친일 잔재로 ‘빨갱이 낙인’을 꼽고 청산을 선언하자 그는 칼럼을 통해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슬픈 죽음
고인의 마지막은 외롭고 서글펐다. 지난달 23일 숨을 거뒀는데 유족은 빈소조차 차리지 못했다. 돈이 없었다. 차렸다 한들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친척 몇 분이 조문을 왔지만 눈시울을 붉히며 슬퍼할 뿐 주변을 서성이다 하릴없이 발길을 돌렸다. 시신은 병원 영안실 차가운 냉동고에 3일간 보관됐다. 찾아오는 이도, 그리고 이들이 함께 슬픔을 나눌 공간도 없는 쓸쓸한 이별이었다. 발인도 쉽지 않았다. 운구할 사람이 없었다. 보다 못한 상조회사 직원들이 관을 짊어지고서야 시신은 영안실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경기도 용인 모처에 안장됐다. 고 박태정 여사의 이야기다.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안중근 의사의 조카며느리라고 하면 좀 알아볼까. 박 여사의 시아버지는 안 의사의 친동생인 안정근 지사다. 안 지사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은 독립운동가로 안 의사와 함께 삼흥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양성했다. 1918년 길림에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9인의 대표 중 한 명이었던 안 지사는 친형이 순국하자 연해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황해도 신천에서 만석꾼으로 유명한 처가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셈이다. 안 지사의 아들이자 박 여사의 남편인 안진생씨는 선박 제조 기술을 배워 조국 독립에 이바지하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이탈리아로 유학해 한국 최초로 공학박사 학위를 딴 엘리트였다. 서울대 출신인 박 여사와 결혼하고 1960년대부터 외교관으로 일했다. 시련은 80년에 시작됐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외교안보연구원 본부 대사였던 안씨는 전두환 정권에
[환경일보] 제2회 오체투지환경상, ‘경주환경운동연합’ 대상 선정
환경상에 제주2공항백지화전국행동, 특별상에 탈핵신문‧김익중‧임순례 [환경일보] 사단법인 세상과함께(이사장 유연스님)는 2021년 제2회 삼보일배오체투지 환경상(이하 오체투지 환경상) ‘대상’으로 경주환경운동연합, ‘환경상’으로 제주 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제주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를 선정했다. 이밖에도 공로상, 특별상, 환경연구·활동기금, 풀뿌리활동지원 기금 등 총 6개 부분에 걸쳐 19개의 개인 및 단체를 올해 환경상 수상·기금 지원 대상자로 선정했다. 2015년 창립한 (사)세상과함께는 그동안 국내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들을 돕고 해외 빈곤층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미얀마 학교 건립 및 어린이 돕기, 국내 장애인 돕기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세상과함께가 지난해에 오체투지 환경상을 제정한 이유는 2003년 갯벌에 깃들어 사는 저서생물을 위한 삼보일배와 2008년 4대강사업을 막아내려고 아스팔트 위에서 뜨겁게 온몸을 던지며 생명, 평화, 사람의 길을 걸었던 오체투지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무분별한 환경파괴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실천적 노고를 응원하고 연대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 이어 2021년 9월 1일부터 10월 1일까지 제2회 오체투지 환경상을 공모한 결과, 전국에서 총 64건의 개인과 단체가 공모에 참여했다. 부문별로는 환경상 22건, 특별상 26건, 환경연구지원기금 4건, 환경활동지원 기금 4건, 풀뿌리 환경활동지원기금 5건, 공모전 3건이었다. 이철수 오체투지환경상 심사위원장과 (사)세상과함께 송옥규 환경위원장 등 환경, 인권, 언론 등의 영역에서 활동해 온 8명의 심사위원들은 ①현장성(활동현안의 구체성) ②지속성(활동기간) ③독립성(재정운영의 건전성) ④확장성(활동의제의 사회적 파급력) ⑤대안성(환경운동의 질적 성장 도모) ⑥시민성(시민참여와 소통) ⑦민주성(활동의 투명성과 연대활동) ⑧시의성(사회적 관심) 등의 심사 기준에 따라 심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총
[경향신문] 남과 북 백두대간 앵글에 담은 이방인…“여긴 하나의 나라”
첫 종주 뉴질랜드인 로저 셰퍼드 31일까지 전주서 사진전 열어 북한엔 4번 찾아 대장정 마무리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그 길이가 1400㎞에 달한다.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남과 북의 백두대간을 최초로 종주한 이가 있다. 뉴질랜드 국적의 로저 셰퍼드(55)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남과 북 백두대간을 섭렵하기까지 꼬박 11년이 걸렸다. 그는 한반도의 산에 빠져 지리산 중턱인 전남 구례면 산동면에 아예 터를 잡고 산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뒤에는 전국을 순회하며 백두대간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애쓰고 있다. 그는 이달 31일까지 전북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백두대간 사진전을 열고 있다. “백두대간을 알게 된 때는 2006년이었어요. 그 전에 잠시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고국으로 돌아가 경찰관이 됐는데 휴가를 받아 다시 왔어요. 우연히 지리산에 올랐는데 장엄하게 뻗어나가는 산맥이 황홀하더군요. 한국 친구가 빨간 줄이 꼬불꼬불 쳐진 작은 지도 한 장을 보여주며 백두대간이라고 설명해 주더군요.” 그는 뉴질랜드에서 경호경찰로 8년간 근무했다. 외교관 경호를 전담하고 전략문제 연구로 석사학위도 받았다. 하지만 머릿속을 맴도는 백두대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2007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70일간 남한 내 백두대간 740㎞를 탔다. “남측의 백두대간은 설악산 향로봉이 종점이었죠. 민통선을 넘어 군사도로를 걸어가 산에 오르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어요. 비무장지대(DMZ)에서 불과 2㎞ 떨어진 곳이었지요. 이곳에서 북한의 장대한 백두대간을 언뜻 볼 수 있었어요. 북으로 가보자는 생각이 여기서 움텄습니다.” 북한 정부의 공식 홈페이지에 e메일을 보냈다. 답장은 ‘불가’였다. 백방으로
[노동과세계] 변화 없는 일제 강제동원 대법 판결 3년… “일본정부, 전범기업은 사과하라”
강제동원문제해결 공동행동, 28일 기자회견 열고 일본정부, 전범기업 규탄 한국정부에 당당한 외교적 노력 다할 것 주문 “피해자가 사라진다고 강제동원 문제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노총(위원장 직무대행 윤택근)을 비롯해 민족문제연구소,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 등 시민사회단체가 28일 오전 서울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 3년을 앞두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다.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8년 10월 30일 미쯔비시중공업 등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피고인 일본기업은 1인당 1억~1억5천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라는 판결을 내렸다. 오는 30일 판결이 내려진 지 3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의 사과, 위자료 지급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단체들은 3년 전 판결에 대해 “1997년부터 일본과 한국 법정에서 인권회복을 위해 투쟁해 온 피해자들과 한일시민사회가 쟁취한 역사적인 승리는 식민주의 청산을 향한 세계사적인 판결로 자리매김됐으며, ‘656년 체제’ 극복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됐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 과거청산에 대한 진정한 노력은커녕 시대착오적인 역사왜곡을 되풀이하는 일본정부는 판결 이행을 방해한다. 전범기업은 일본정부 뒤에 숨어 피해자들이 돌아가기만을 기다린다”라고 규탄하며 “그들이 숨기는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고 인권회복과 역사정의를 바로 세우는 우리의 투쟁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대리인을 맡은 임재성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는 “(판결 이후) 3년 동안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는 건 일본기업에게도
[한겨레21] 통의동 백송은 뉘집 나무였나?
서울 종로구 옛 천연기념물 백송 터 둘러싼 논란 김정희 옛집으로 알려졌으나, 영조 사저로 확인 창의궁은 그 어떤 곳인가/ 어의궁과 같다고 어찌 감히 견줄까/ 용흥궁이라고 부르기엔 덕이 부족하다/ 어필을 걸었으니 만에 하나 감당할까/ 동네는 장의동으로(장한 뜻으로) 다섯 사당을 품고 있다/ 양성헌 일한재는 부왕이 하사한 이름이자 내 이름/ 일청헌 거려사는 몇 년을 받들었나/ 이안와 함일재는 마음을 다스리는 이름/ 옛날부터 있었고 또한 나의 운명이다.(영조 이금, ‘창의궁’ 1774년 7월 하순) 김정희 후손, “월성위궁에 있던 나무” 서울 종로구 통의동 35-15번지에는 거대한 백송의 밑동이 남아 있다. 이 백송은 한국에서 가장 크고 나이 많은 백송으로 1962년 천연기념물 4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1990년 큰비와 강풍에 쓰러져 죽었고, 1993년 천연기념물 지정도 해제됐다. 오랫동안 이 백송은 이 일대의 수호신처럼 여겨졌고, 1955~1970년엔 이 백송이 있는 통의동에 ‘백송동’이란 행정동 이름이 붙기도 했다. 이 백송은 오랫동안 추사 김정희의 집에 있던 백송으로 여겨졌다. 김정희 연구자인 김영호 경북대 교수는 1976년 쓴 답사기 ‘추사의 붓을 따라 천 리를’에서 이 백송이 김정희의 집인 월성위궁에 있던 나무라는 김정희 방계 후손의 증언을 인용했다. “최근 김익환 옹(완당 김정희 선생의 친동생 김상희의 5대 혈손이며 일제 때 <완당선생문집>을 편찬한 분)을 찾아가 뵙고 완당 선생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완당 선생의 서울 고택 월성(위)궁의 위치를 물었더니 통의동의 백송 고목이 있는 곳이 완당 선생
[새책소개]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 문학가 임헌영과의 대화 / 대담 유성호
■ 책 소개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은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유성호가 치열한 민족의식의 언어로 풀어낸 대화록이다. 이 책은 임헌영의 유년 시절부터 두 번의 수감생활을 거쳐 민족문제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현재의 생애까지를 집약한 자전적 기록이기도 하다. 임헌영은 우리 문학사와 민족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문학평론가다. 그는 『친일인명사전』(2009) 출간에 앞장서며 근현대사의 반성적 자료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문인간첩단 사건과 남민전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두운 시대를 앞장서서 걸어간 현대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유성호가 대담을 이끌어가며 조명한 임헌영의 생애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한줄기 빛과 같다. 광기와 야만의 세월을 살아낸 임헌영은 살아 있는 역사이자 역동적인 정치적 산물로서 문학작품을 바라본다. 그가 읽고 섭렵한 문학작품들에 대한 기억은 그 시대를 증언해주는 기록이다. 한평생 문학의 길을 걸어온 그가 말하는 문학은 역사 그 자체다. 낙관과 비관이 공존하는 우리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저명한 두 평론가의 대화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문학과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역사 격랑 속에서 꽃피워낸 문학의 길 “문학은 아주 먼 곳을 그리워하는 연정 같은 것” 임헌영은 아주 독특한 이력을 지닌 문학평론가다. 그는 80년의 세월 동안 식민지 시대, 해방과 분단, 독재와 항쟁을 끝없이 경험하며 역사의 격랑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다섯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4부 “4월 혁명의 노래”
☞ (10.26)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4부 “4월 혁명의 노래” ☞ (10.19)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3부 “노래에 담긴 전쟁과 상흔” 2편 ☞ (10.12)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3부 “노래에 담긴 전쟁과 상흔” 1편 ☞ (10.5)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2부 “해방과 분단의 노래” ☞ (9.28) ‘내역사’ 시즌 6: 14화: 가요로 듣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 시리즈_1부 “식민지시대 금지곡” ☞ (9.14) ‘내역사’ 시즌 6: 13화: “쌀로 보는 근현대사 2부” ☞ (9.07) ‘내역사’ 시즌 6: 13화: “쌀로 보는 근현대사 1부” ☞ (8.11) ‘내역사’ 시즌 6: 12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별기획_만화 친일파 열전_박시백 화백과 함께” ☞ (8.11) ‘내역사’ 시즌 6: 11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 순국100주기 특집 _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2부” ☞ (8.10) ‘내역사’ 시즌 6: 11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 순국100주기 특집 _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1부” ☞ (7.06) ‘내역사’ 시즌 6: 10화: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특집_대전지부 후원회원들과 함께” ☞ (6.29) ‘내역사’ 시즌 6: 9화: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 (6.22) ‘내역사’ 시즌 6: 8화: “비핵화 프레임을 넘어 종전선언으로(2) ☞ (6.15) ‘내역사’ 시즌 6: 8화: “비핵화 프레임을 넘어 종전선언으로(1) ☞ (6.14) ‘내역사’ 시즌 6: 7화: 긴급편성 “역사부정주의 논리를 담고 있는 6월 7일 강제동원 판결”에








